[Review] 겨울궁전의 따듯한 작품들_예르미타시 박물관 展
글 입력 2018.01.29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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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직 러시아가 아니다. 이 도시는 푸시킨, 또는 아마도 표트르 1세가 말했듯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1859년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후 한 말이다. 이번 전시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는 말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이번 전시에서는 예카타리나 2세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들과 러시아 귀족들이 수집했던 프랑스 미술품을 볼 수 있었는데, 17세기 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개인적으로 색감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를테면 프랑수아마리우스 그라네의 <로마 바르베리니 광장의 카푸친 교회 성가대석 내부>라던지, 폴 세잔의 <마른 강 기슭>, 카롤루스 뒤랑의 <안나 오볼렌스카야의 초상>이 그러했다.취미로 유화그림을 그리시는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림 그릴 때 색을 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말씀을 몇 번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을 후 나는 그림을 볼 때마다 그 색을 내기 위해 화가들이 겪었을 좌절들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이번 전시 광고에 등장하는 <안나 오볼렌스카야의 초상>은 그 색감이 가히 대단했다. 벨벳으로 느껴지는 소재감에 핏빛 빨강이 대단히 강렬했다. 핸드폰으로 찾아 본 그 그림은 액정이 미처 그 색감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림의 뚜렷함과 옷의 재질감, 생생한 표정 등이 마치 사진과 같았다.폴 세잔 <마른 강 기슭><로마 바르베리니 광장의 카푸친 교회 성가대석 내부>는 색감도 색감이지만 그림의 구도가 나를 매혹시켰다. 교회의 장엄함과 인간의 사소함을 대비시키는 듯한 이 그림은 얼핏 보고 넘어가면 교회의 천장부분만 보게 될 정도로 바닥보다 공중에 신경을 쓴 듯하다. 자연스레 이 작품의 관심사는 사람이 아니다. 사제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보다 그 사제들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고딕 건축, 그 종교의 고요한 성스러움을 묵직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이 작품을 처음 볼 때의 나의 시선은 아래에서 위로 향했는데, 예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느꼈던 높은 천장이 떠오르면서 그 때 들었던 그레고리 성가가 들리는 듯했다.프랑수아마리우스 그라네, <로마 바르베리니 광장의 카푸친 교회 성가대석 내부>겨울궁전하면 떠오르는 것은 ‘피의 일요일’ 뿐이었다. 귀족들과 황제들이 미술품을 수집하고 궁전에서 작품을 감상하던 1905년 1월 9일 일요일, 페테르부르크에서 하루동안 1,000여 명이 죽고 3,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작품들이 그런 겨울궁전으로 부터 넘어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이 곳은 반미치광이들의 도시입니다. (...) 페테르부르크만큼 인간의 영혼에 음울하고 날카롭고 기이한 영향을 주는 곳을 찾기는 힘들죠.” 도스토예프스키 ‘죄와벌’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그 곳에 있었던 미술품들을 눈에 담아보면 좋겠다.[이정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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