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랜드성과 마이너, 한계 극복 [시각예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展
글 입력 2018.01.06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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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의무적인 발길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 찾아가게 된 지는 꽤 되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존재를 알고 방문했을 때 충격과 벅참은 잊어버린 지 오래. 처음 서울에 올라온 후 4년의 시간은 짧지만, 미세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시기다. 내 머리가 자라나는 시간에 미약한 퇴보가 더해졌다면 더 이상 시골에서 올라온 촌구석 여자아이로서 나를 놀래키는 것 이외의 새로운 요소가 필요 할텐데 그런 걸 찾아볼 수 없었다. 준비 중인 전시와 겹쳐 더더욱 국현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들을 외면하고 나의 일에 몰두했다. 그리고 선별적인 태도로 전시들을 대했다. 어느 시기건 시간은 지나기 마련이고 전시는 끝이 났다. 급하고 중요했던 여러 가지 일들도 끝이 났다.

하지만, 내 몸은 1년 시간에 맞춰져 있어 전시에 친숙하지 않았고, 내 작품에만 갇혀있었던 만큼 이전의 암울하고 편견 가득한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전시에 대한 내 생각 역시 그대로, 나는 1년 전의 상태에 정체되어 있었다. 무언가에 질린 5살 꼬마의 마음으로 선별적인 태도로 작가, 작품을 보게 되니 연장선으로 나는 내 속에서 가라앉게 되었다. 복수가 찬 듯 끈적끈적한 고인 물을 뚫어줄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인지 분한 마음이 약간 있지만, 내게 첫 충격에 침잠까지 경험시켜준 국현은 그 답답함을 부숴주기까지 했다.

 
오늘의 작가展은 관심 있게 살펴보는 전시다. 미술시장의 트랜드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 가능한 전시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정부체계변화에 더불어 공공 미술적 성향이 강한 믹스라이스. 2015년도에는 사회 속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의 관계, 차이, 소통 등의 문화적 키워드들을 현대 미술적 키워드로 가져와 다시 풀어냄으로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말하기 방법을 사용한 오경환 작가. 이 두 작가로 나는 당시 트랜드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트렌드를 인지하는 것과 나의 작업을 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사실 나는 트랜드에 아주 멀리 떨어진 부류의 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종종 트랜디한 그들이 방식으로서 나와 같은 성향을 화두로 올릴 때가 있다 보니 나 역시 스스로가 마이너 성향임을 인지하기 어려웠지만, 결론적으론 그런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드를 보기위해 올해의 작가상을 챙긴다. 그것을 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정 반대에 있는 무언가를 인지하고, 나를 정의하는 데에 도움받기 위해. 마치 우리가 옳다고 추앙받는 자기 개발서를 읽고 오히려 본인은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종종 정의받기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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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송상희 작가의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는 충격이자 희망이자 감사함이자 질투였다. 나는 애니메이션이 전시 중앙에 주인공으로 여겨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고, 못 봤다 느껴 내가 해 보자는 용기를 냈었다. 하지만 또 미술계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이 소재를 가지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갑갑함도 같이 느꼈었다. 송상해 작가는 이 모든 고민과 생각이 부질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다른 어느 요인에서가 아니라 본인의 힘으로 작품을 주인공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던 요소를 분석 해 보았다.

애니메이션과 촬영 분으로 구성된 3채널은 급격한 이미지 변화를 통해 전시관 내에서 지루하게 넘겨질 수도 있는 영상 작품의 한계를 극복했다. 또한 사운드 역시 머리 좋게 사용했다. 비디오 작업을 평가할 때 시각적 요소에 집중된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그보다 청각적 요소를 다루는 기술이 첫인상을 결정한다. 심지어 묵음 처리를 할 때에도 그 묵음에는 힘이 있다. 작품 초반 흰 화면에 사이키델릭한 음악이 나오다 화면이 어두워지며 나오는 비트의 변화는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목은 집중되었고, 아기장수 우투리 이야기로 사전 정보도 제시하였으니 영상은 작가가 본래 하고팠던 이야기로 전환된다. 스토리 적으로도 작가 본인은 희망적인 결말을 의도했지만, 그 자체를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제목과 스토리 라인의 대사 곳곳에 작가의 의도가 묻어있긴 해도 열린 결말로 남겨두고 관객들에게 나름 선택의 기회를 준다. 이 3요소가 잘 버무러져 현대미술계에서 비주류로 남아있는 애니메이션을 메이져로 끌고 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느낀다.

 
작품을 벗어나 문제의식을 다루는 그녀의 태도에도 요인은 있다. <컬렉티드 스토리즈>라는 연극에서 스승인 루스는 리사에게 작가(창작자)에게 있어 주변의 모든 것은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소재화 시켜 이야기를 할 때 본인이 얼마나 고려했던 지간에 상처받는 사람은 나올 것이고 만약 창작자가 그것을 과도하게 신경 쓰기 시작한다면 창작의 고유 산물인 자유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작가 송상희는 본인이 소재로 가져온 요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그것을 작품에서도 표현한다.

앞서 말한 연극에서 루스는 그 자유로움이 예술가의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말하지만, 오히려 송상희 작가에게 있어서 힘이란 그 책임감에서 나온 두 세번의 검토와 성찰에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이 현대 예술가에게 필요한 덕성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사례로 접근 방식은 유쾌하지만, 사회적 이슈들을 단순 본인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을 받고 있는 타 작가들도 많다. 정보가 범람하는 세계 속 알고 싶지 않았던 사건사고, 정보들이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지금, 더 이상 얕은 무언가는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 결정부터 가공, 작품화까지 일련의 과정 곳곳에 묻어나는 작가의 사려 깊은 태도에 이것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고 싶다.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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