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드레스덴을 바로크 예술 중심지로 이끈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王이 사랑한 보물' 展
글 입력 2017.10.27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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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에 '王이 사랑한 보물' 전시회에 다녀왔다. 보는 내내 웅장함과 우월함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전시회였다. 처음엔 바로크 예술이 무엇인지 사전지식이 전혀 없어 혹시 이해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이 있진 않을까 우려가 됐다. 그러나 관람하고 나니 예술에 대해 하나도 모르더라도 꼭 방문해보길 권유해주고 싶은 최고의 전시회였다.바로크 시대에도 고귀하고, 아우라가 드러나는 예술품들이 다량 존재했다는 것에 새삼 깨달았다. 그 당시의 예술가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냈을까. 게다가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빠른 시간 내에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작업을 걸쳐 오랜 시간을 공들였을 터인데, 이러한 작품이 오랜 기간동안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아우구스투스가 지닌 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섬세함과 상상력, 창작력, 내구성까지 하나하나 다 신경쓰고 만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왜 아우구스투스가 그토록 보물들을 탐닉했는지 이젠 알 것만 같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최고의 명품이 아닐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들의 솜씨와 아우라. 그리고 재현하고 싶어도 감히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이다.유럽 문화의 부흥을 이끌었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그는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건설하고, 사냥 대회와 가면무도회, 연극, 오페라 공연과 같은 각종 행사를 벌이며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규모를 보여줬다고 한다. 누구도 실현 못할 상상력을 아우구스투스는 직접 행동으로 증명하였으니 그의 설계 능력이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또한 예술을 보는 시각이 남다른 그의 면모에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이 작품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되었지만 현재로서는 이 작품들이 당시의 모습을 추측하고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닌가 싶다. 만약 그가 만약 예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 보물들을 평생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렇게 고귀한 작품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것에 대해 아우구스투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을 분석하고 소개한다.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 왕으로 즉위한 그의 활동을 조명하고, ‘강건왕’의 의미, 그 양면성을 해체된 군복과 태양 마스크, 의례용 검, 사냥도구 등의 전시품을 바탕으로 다각적으로 살펴본다.제2부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드레스덴을 유럽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를 꿈꾸며, 최고 수준의 예술품을 수집하고 공개하기 위해 만든 보물의 방 ‘그린볼트’를 소개한다. 상아, 청동, 은 등 재질에 따라 분류한 각 방의 대표 전시품을 선보인다.제3부에서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수집하고 제작한 도자기를 살펴본다. 당시 유럽에서 ‘하얀 금’으로 불리던 자기는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워 가장 귀하고 인기 있는 물건이었다. 강건왕은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를 시켜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그의 말년에는 중국 자기와 대등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자신감을 얻는 강건왕은 중국, 일본 도자기 수집품 및 마이센 자기로 장식한 ‘도자기 궁전’을 만들고자 구체적인 구상을 세웠으나, 끝내 완성을 보지는 못하였다. 전시에서는 왕의 구상에 따라 ‘도자기 궁전’을 부분적으로 재현한 모습을 선보이며, 18세기 중국과 일본의 수출 도자기를 비롯해 초기 마이센 자기를 비교해 볼 수 있다.드레스덴박물관연합 소개2010년 설립 450주년을 맞이한 드레스덴박물관연합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연합제이다. 회화, 조각, 귀금속공예품, 무기, 도자기, 동전 등 컬렉션 별로 설립된 15개의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박물관 대부분이 레지덴츠 궁전, 츠빙거 궁전, 알베르티늄 등 드레스덴 궁전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장품 또한 작센 공국의 선제후 베틴 가문의 컬렉션이 그대로 전해져 온 경우가 많다. 드레스덴박물관연합은 궁정의 역사와 함께 그 안에 간직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그린볼트의 과거와 현재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가장 심한 공습을 받은 도시 중 하나이다. 1945년 2월 공습으로 레지덴츠 궁전이 폭격당하면서, 그린볼트 보물의 방들도 훼손되었다. 다행히 컬렉션의 상당 부분이 폭격 직전 안전한 장소로 옮겨졌고, 전쟁이 끝난 뒤 드레스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린볼트는 구 동독 시절에는 파괴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가 통일 이후 복구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2006년 '구 그린볼트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60여 년 만에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알브레히트계 베틴 가문 가계도와 연표< 1부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는 작센의 선제후 가문 최초로 1697년 폴란드의 왕이 되었다. 사후 18세기 역사학자들은 그를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로 칭송했다. 작센 공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강력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황제의 허락 없이는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왕이 되고자 열망했다. 프로테스틴트 선제후였던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의 왕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의 야심은 한 나라의 왕이 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1719년 자신의 아들과 신성로마제국 황녀의 혼인을 성사시켜 훗날 아들이 황제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왕이 된 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 왕'을 의미하는 모노그램 "AR"을 궁전 곳곳에 장식했다. 그리고 드레스덴에 츠빙거 궁전과 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건설하고 각 지역의 통치자들을 초청했다. 이곳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사냥 대회와 가면무도회, 연극, 오페라 공연과 같은 각종 행사를 벌였다. 당시의 연회는 그 규모와 화려함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그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보여준 절대 왕정의 권위를 동경하였으며, 드레스덴에서 이를 구현하고자 했다.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군복옷감 전체에 황금 자수를 놓은 이 화려한 군복은 아우구스투스가 전쟁에서 패해 폴란드 왕위를 잃은 뒤 복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702년 작센은 대북방전쟁(1700~1721) 중 스웨덴과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아우구스투스는 폴란드 왕위를 잃게 된다. 이 때 그는 후퇴하면서 입고 있던 군복과 마차를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폴란드 왕위를 되찾으며 전쟁에서 빼앗긴 군복을 다시 손에 넣는데 성공했으나 이미 군복은 스웨덴 군인들이 일부를 잘라 나눠 가진 상태였다. 1709년 아우구스투스는 복위를 기념하는 축제에서 입을 의례용 군복을 주문하면서 적군에게 빼앗겼던 바로 이 군복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새롭게 제작된 군복은 잘려진 군복과 함께 현재 무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좌 :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흉상 / 우 :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 뜬 태양 가면강건왕 아우구스투스 흉상이 흉상을 통해 아우구스투스는 비늘 갑옷을 차려입은 로마 황제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얼굴에 드러난 강건한 인상은 헤라클레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로마 황제와 헤라클레스의 모습은 이 작은 조각상에 절대군주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힘을 불어넣었다.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 뜬 태양 가면이 태양 가면은 1709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폴란드 왕으로 복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4세를 초청하여 벌인 '신들의 행렬' 행사에서 착용한 것입니다. 밤에 펼쳐진 이 연희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태양신 아폴론으로 분장한 '밤의 발레'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아우구스투스 또한 자신의 생김새를 본 뜬 이 태양 가면을 씀으로써 자신이 아폴론의 화신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태양신의 이미지는 태양왕과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절대군주로서의 이미지를 완성하고자 했습니다.18세기 유럽의 사냥 무기사냥은 전쟁 연습의 일환이자 고기를 마련하는 수단이었지만, 15~16세기에는 귀족과 상류사회 남성들의 스포츠 활동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석궁은 16세기를 거치면서 화약 무기인 소총에 자리를 내어주고 전장에서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사냥과 사격 시합에서는 여전히 폭넓게 사용되었다. 사냥용 칼은 상처를 입은 동물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거나 잡은 사냥감을 해체하는 데 사용되었다. 해체용 칼의 칼집에는 고기의 절단이나 가죽의 제거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작은 칼 여러 개와 작은 톱, 줄이 갖추어져 있었다. 바퀴식과 부싯들식 소총도 사냥에 이용되었습니다. 상류 계층이 사용한 사냥용 무기는 정교하게 장식된 것이 많았는데, 이는 소유주의 지위와 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급 사냥용 무기의 제조는 17~18세기에 절정에 이르렀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도 금, 은, 상아, 황동, 자개와 같은 고급 재료로 화려하게 만든 사냥용 무기를 사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한껏 과시하고자 하였다.< 2부 그린볼트 - 왕이 만든 보물의 방 >그린볼트 - 왕이 만든 보물의 방그린볼트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한 공간이다. 그린볼트라는 명칭은 궁전 천장이 녹색으로 도장되어 있던 데서 유래한다. 그린볼트는 아우구스투스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인 동시에 그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원래 이곳은 작센 선제후들의 보물을 보관하는 비밀창고의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1729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완성시킨 그린볼트는 18세기 당시에도 유럽에서 가장 큰 왕실 컬렉션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명성이 높았다.강건와 아우구스투스는 그린볼트의 성격을 보물창고에서 전시 공간으로 바꾸어 대대로 내려온 컬렉션을 새롭게 배치했다. 그는 자신의 구상에 따라 상아, 청동, 은, 도금은 등 작품의 계절별로 여러 개의 방을 만들고, 소장품을 방별로 나누어 전시했다. 이러한 전시 방법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유럽 왕실 가운데 처음으로 이 보물의 방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또한, 소장품 목록을 만들어 컬렉션이 궁정 바깥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린볼트는 유럽 최초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상아의 방상아의 방은 18세기 그린볼트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두번째로 만나게 되는 전시실이었다. 1729년 상아의 방 내부 벽면을 이탈리아산 대리석을 모방한 무늬로 장식하고 몇 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상아 조각품 300여 점을 전시하였다. 대부분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작센의 선제후들이 수집한 이 작품들은 원래 드레스덴 '호기심의 방'의 주요 소장품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작품들을 그린볼트로 옮겨와 새롭게 배치하였다. 상아는 희귀할 뿐 아니라 매우 섬세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데에는 고도의 주의력과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특히, 상아의 터닝 세공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왕실의 교육에서 중요한 분야였다. 작센의 선제후들이 직접 세공한 상아제품도 지금까지 그린볼트에 남아 있다.청동의 방청동의 방은 바로크 시대에는 입구이자 출구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몇 차례의 수리와 증축을 거치면서 그린볼트 박물관의 마지막 방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떡갈나무 패널과 거울로 벽을 장식하였고, 방 전체에 선반과 받침대를 놓아 그 위에 파리에서 구입한 100여 점의 작은 청동상들을 전시했다. 이 중 많은 작품이 그리스 신화나 알레고리를 형상화했다. 특히 4계절, 4대륙, 4원소 등 우주적 가치를 의인화한 알레고리는 바로크 궁정에서 즐겨 사용한 주제였다. 즉,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왕이 신으로부터 위임받아 관장함으로써 그의 권력이 모든 국가와 대륙, 나아가 세계에 미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점에서 청동의 방은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우주'와도 같았다.은의 방18세기에만 존재했던 은의 방에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소장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은세공품이 진열되었다. 1733년의 목록에는 총 377점의 은식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아우구스투스 3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황녀 마리아 요세파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1719년 이전에 구입한 것이었다. 이 방의 바닥과 벽에 장식된 식기는 총 무게가 거의 1톤에 달할 정도로 그 수량이 많았다. 그러나 7년 전쟁(1756~1763)이후 재정난이 심해지자, 17세기 조각상 세 점을 제외한 나머지를 녹여 동전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3점의 작품으로 당시 은 소장품의 원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은의 방은 다른 소장품을 함께 전시하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가, 2006년에 그린볼트박물관이 새롭게 바로크 양식으로 재견되면서 본래의 명칭을 되찾았다.도금은의 방도금은의 방은 16세기 후반까지 기념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17세기 후반부터는 왕실 소유의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방의 벽면에는 1723년 그린볼트가 처음 건축될 때부터 거울과 녹색 패널이 장식되어 있었다. 18세기 도금은의 방에 전시된 작품은 1733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지시로 작성된 소장품 목록으로 알 수 있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조각상 50여 점을 포함하여 금속세공 장인이 만든 약 300여 점의 작품이 250여 개의 콘솔 위에 전시되었다. 이 중 3분의 2이상은 7년 전쟁으로 인한 재정난 때문에 녹여졌다. 오늘날 전시된 작품들은 1772년 당시 파괴를 면한 작품뿐 아니라, 그 뒤에 수집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금은보화의 방과 코너 캐비닛금은보화의 방은 그린볼트의 핵심 공간이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존재해온 이 방은 궁전의 오랜 장엄함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연회를 개최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지만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왕의 비밀 금고 역할을 했다.금은보화의 방을 현재와 가까운 형태로 완성시킨 인물은 바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였다. 그는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영감을 받아 이 방을 새롭게 꾸몄다. 당시 그린볼트의 건축감독을 맡은 마테우스 다니엘 푀펠만이 황금 받침대와 거울벽을 설치함으로써, 1732년 드레스덴 궁전에도 장엄한 바로크 양식의 '거울의 방'이 탄생했다. 코너캐비닛은 말 그대로 금은보화의 방 내부 '모퉁이'에 위치한 16 평방미터 크기의 작은 창고 역할을 하는 방이다. 16세기 중엽부터 그물 모양의 철문으로 금은보화의 방과 구분되었다. 코너캐비닛의 예술품들은 격조 있고 아름다운 녹색 콘솔 위에 전시되었다.무굴 제국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이 작품은 무굴 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의 생일 연회를 작은 무대처럼 꾸몄다. 다이아몬드 5223점, 루비 189점, 에메랄드 175점 등 진귀한 보석으로 장식했다. 계단 가장 높은 곳의 왕좌에는 아우랑제브가 앉아 있으며, 신하들이 그에게 선물을 바치고 있다. 아우랑제브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와 동시대 인물로, 인도 대륙을 지배했던 황제이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에게 아우랑제브는 막강한 힘과 끝없는 부를 가진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다.보석의 방보석의 방은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보석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방으로, 그린볼트의 방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다. 보석은 18세기 바로크 왕실에서 왕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아끼는 보석을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방 자체를 화려하고 장엄하게 연출함으로써, 이 방을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방 가운데 놓인 사면 거울 기둥에 자신의 모노그램과 훈장을 배치하고 그 주위를 식물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아우구스투스의 보석 컬렉션은 매우 큰 네 개의 붙박이 전시장 안에 진열되었다. 컬렉션의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지만, 당시 전시되었던 대부분의 보석은 이후에 추가된 보석들과 함께 계속 그린볼트에 남아 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보물의 방을 확대 사진 기술로 재현한 전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3부 도자기 궁전 - 미완의 꿈 >도자기 궁전 - 미완의 꿈당시 유럽에서 '하얀 금'으로 불리던 자기는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워 매우 귀하고 인기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동아시아의 자기 제작 비법을 알아내지 못해 중국과 일본의 수출 자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1708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를 시켜 드레스덴 근교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로 경질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이 '마이센 자기'로 아우구스투스는 온 유럽 대륙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자신이 이룩해낸 놀라운 성과를 전 세계 왕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린볼트'에 보물의 방을 만든 것처럼,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수집한 최고의 도자기 컬렉션과 마이센 자기를 여러 방에 전시하는 '도자기 궁전'을 만들고자 했다. 1727년 그는 여름 별장이었던 일본 궁전을 도자기 궁전으로 바꾸는 계획에 착수했다. 진귀한 중국, 일본 도자기가 돋보일 수 있도록 도자기의 색상에 따라 방의 이름을 정하고, 각 방의 벽면에 도자기들이 대칭으로 진열되도록 설계했다.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도자기 궁전은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실현되지 못한 채 '미완의 꿈'으로 남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설계도면에 그려진 도자기와 대응되는 실제 작품들을 함께 연출함으로써 아우구스투스가 꿈꾼 도자기 궁전의 모습을 재현해보고자 했다.▲ '황색 사자' 식기 세트▲ '붉은 용' 식기 세트장식품에서 식기로아우구스투스의 재위 말년에 마이센 자기는 중국과 일본 자기를 모방하는 데서 나아가 유럽인들의 생활 방식과 취향에 맞게 모양을 바꾸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마이센에서 제작한 유럽 최초의 왕실 자기 식기 세트를 소개했다. 왕실에서 쓰였던 유럽의 식기 세트 기형과 아시아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문양이 결합한 것으로, 도자기가 진귀한 장식품으로서만 사용되었던 데서 실생활에 사용되는 식기로 그 기능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일자 : 2017.09.19(화) ~ 11.26(일)시간월, 화, 목, 금 10:00~18:00수, 토 10:00~21:00일요일 및 공휴일 10:00~19:00입장마감전시 종료 시간 30분 이전장소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티켓가격성인(만24세 이상) : 9,000원대학생 및 중고등학생 : 8,000원초등학생 : 7,000원유아(만 48개월 이상) : 5,000원65세 이상 : 5,000원주최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협력국립박물관문화재단관람연령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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