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림을 통해 내면을 표현한 화가 ‘고흐’ [시각예술]

글 입력 2017.10.20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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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내면을 표현한 화가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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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 ~ 1890.7.29.


  빈센트 반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 『별이 빛나는 밤』,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테라스』등 수많은 명화를 남겼다. 이 명화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흐의 그림 스타일이 세월에 따라 점차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작품인 『감자먹는 사람들』은 색이 다채롭지 않고 어두운 분위기다. 하지만 이후 그림들을 보면 붓 터치가 과감하고 색채도 강렬하다. 고흐는 자신의 작품들을 어떻게 탄생시킨 것일까?

  18세기 이후 파리는 살롱 전의 고전적인 화풍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주를 이뤘다. 이 시기 새로운 표현 기법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인상주의의 아버지 마네가 죽은 뒤, 젊은 인상주의 집단이 와해되고 19세기부터는 후기 인상주의 집단이 도래했다. 이 화가 집단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기존 인상주의를 발전시켜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해 나갔다. 빈센트 반 고흐도 후기 인상주의 집단에 속했다.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원래 성직자를 목표로 했던 사람이었다. 아버지 뜻에 따라 목사가 되려 했지만 타락한 성직자들을 보고 목사 대신 전도사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는 공감능력이 너무 뛰어난 사람이었다. 탄광촌에 봉사를 하러 간 고흐는 탄광촌 사람들의 열악한 모습을 보며 ‘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모순적이다’라고 느꼈다. 그는 전도사가 되길 포기하고 화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보다 잘 그려진 그림이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흐는 사람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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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먹는 사람들』


  이 시기 고흐는 드렌테에서 부모님이 계신 뉘엔 지방으로 이주해 농민의 생활 모습을 담은 습작을 자주 그렸다. 농민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둘러 앉아 조촐히 식사하는 장면이었다. 명화 『감자먹는 사람들』(1885)은 치밀한 연습의 결과물로서 습작이 아닌 고흐의 첫 완성작이다. 어둡고 칙칙한 그림 분위기는 궁핍했던 농민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고흐는 사실주의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 19세기 후반 과학이나 객관적인 사실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증주의는 시각예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사실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사실주의자들은 정확한 재현을 우선으로 했다. 고흐 또한 사실주의와 풍경화가 집단인 바르비종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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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 후 고흐는 파리로 향한다. 그는 파리에서 강렬한 인상주의에 사로잡혔다. 여러 인상주의자들과 친분을 나누었고 고갱과 쇠라의 작품은 고흐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줬다. 하지만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파리에서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고흐는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아를이라는 도시로 떠난다. 아를에서 고흐는 활발히 작품 활동을 했고 약 200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 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9세기 경)은 고흐가 바라봤던 아름다운 밤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별의 빛과 빛이 투영된 물의 그림자가 잘 표현돼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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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당시 화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안정적인 생활을 꿈꿨던 고흐는 고갱과 함께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했다. 고갱과 노란 집에서 살면서 고흐는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그 둘은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하지만 영원한 시간은 없다. 고흐와 고갱의 견해는 달랐고 결정적으로 고흐의 술주정은 고갱을 힘들게 했다. 결국 그는 고흐를 떠났다. 이후 고흐는 정신 질환이 생겨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자른 귀를 종업원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종업원은 놀라 신고했고 그는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두 달 간 요양생활을 하고도 고흐의 정신질환은 나아지지 않았다. 명작으로 손꼽히는 『별이 빛나는 밤』(1889)을 보면 알 수 있다. 전 작인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비교해보면 두꺼운 붓 터치에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해진 느낌이다. 이는 전보다 고흐의 심리상태가 복잡해졌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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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는 다시 정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귀 없는 자신을 바라보며 『귀가 잘린 자화상』(1889)을 그렸다. 결국 1890년에 그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린 뒤 권총으로 자살 해 생을 마감했다. 거친 선과 어두운 배경, 세 갈래의 갈림길은 고흐의 끝없는 슬픔과 고독함을 보여준다.

  고흐는 생전에 수많은 작품을 그렸지만 딱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다. 그는 항상 가난에 시달렸다.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난을 선택해야 했다. 동생 테오의 원조를 받아 근근이 살아갔지만 좋은 그림을 위해서라면 물감 값을 아끼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다. 개성이 너무 짙어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외면 할 때도 고흐는 이상을 쫓아가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 결과 고흐는 표현주의의 선구자가 됐다. 또한 현재 고흐의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다. 1990년 5월에 ‘가셰 박사의 초상’(첫째 판)이 크리스티에서 8,250만 달러(약 961억 9,500만원)에 경매되기도 했다.

  고흐의 대부분 작품에는 노란색이 들어간다. 노란 해바라기, 노란 별, 노란 집, 노란 밀밭 등 유난히 노란색을 좋아했다. 그는 돈과 명예보다는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그림을 그렸다. 노란색은 고흐의 어둠을 밝혀주는, 꿈을 상징하는 색이었을 것이다.


[정바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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