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발자들 [공연]

글 입력 2017.10.1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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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고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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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부고발자로 나설 것인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거대 비자금 관리장부를 발견한 대기업 임원, 목사의 부정축재와 성범죄를 알게 된 교회 집사, 혈액 관리 부실로 희생자 발생을 알게 된 적십자사 직원 등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일들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책 <내부고발자, 그 의로운 도전> 에 나오는 용기있는 33명, 그리고 10배가 넘는 그 이상의 사례들을 녹여낸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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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조적 특징 - 연출

(1) 최소한의 도구들

무대는 텅빈 공간과 뒤의 문 5개 뿐이다. 이 문으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며 다양한 연출이 된다. 어느 문에서 나왔다 들어가는 등 13명의 인원이 동시에 움직여도 산만해보이지 않게 문이 도와준다. 그리고 13명의 배우들의 옷이 다 똑같다. 회색 티와 까만 바지, 까만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잠깐씩 맡는 배역마다 그에 맞는 자켓이나 상의를 걸치는 등 연출을 한다. 남자, 여자, 키가 큰 배우, 작은 배우, 체격이 있거나 혹은 왜소해도 같은 옷이어서 그런지 다들 잘 어우러졌다. 그래서 더 한 몸으로 느껴진지도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 사용한 도구는 의자 하나 뿐이다. 똑같은 모양의 의자 8개로 책상, 키보드, 탁자, 공간, 좌석, 바닥 등 다양한 도구로 활용을 한다. 여러 개를 이어서, 혹은 겹쳐서, 눕혀서, 기울여서 등 의자 하나만으로도 많을 것들을 표현했다. 최소한의 소품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표현하는 미니멀리즘 적인 연출이 돋보였다.


(2) 퍼포먼스

인상 깊었던 장면이 몇 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꼽자면 각자 인물들이 나와서 독백을 한 후 무대 뒤쪽으로 가서 모여있는 장면이다. 몇 안되는 의자로 앉아있고, 서있고, 벽에 기대있고, 의자 사이에 다리를 넣어서 앉는 등 나와있는 사람 외의 다른 인물들이 무대 뒤쪽에 서 있었다. 의자만으로 연출한 정지된 화면처럼 보여서 그림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13명의 배우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움직여도 혼잡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리고 내부고발자의 육체적 아픔을 연기할 때, 행위 예술의 퍼포먼스를 보았다. 단순한 극이 아닌 예술 그 자체였다. 고통에 짓눌려 옷 몸을 긁거나 때리고, 자해하고, 머리 아파서 쓰러지고, 허리가 아파 바닥을 기어다니고 등 온 몸으로 무대 전체 공간을 활용했다. 다양한 증세의 고통들이 점차 심해져 배우들이 차곡히 겹쳐서 쓰러졌다. 음악에 맞춘듯, 맞추지 않은듯 고통스러워하는 행위가 퍼포먼스 같아서 더욱 더 극적이었다. 극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퍼포먼스가 되었다.


(3) 교차 역할

시작부터 13명이 거의 동시에 말한다. 한 단어 단어들만 외치며 속도감있게 진행되었다. 각 인물들은 한 역할을 연기한 후 1초도 안되는 빠른 시간 내에 바로 다른 배역이 된다. 전환율이 빠르며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듯 순발력이 있었다. 모든 배우들이 모든 인물들을 연기했다. 마치 드라마를 5분 요약해서 보여주듯이, 영화 소개 프로그램처럼 하이라이트인 중요한 장면만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진행해나갔다. 무대 장치도, 도구도 하나 없이 '대사'만으로 사건이 진행되어갔다. 다양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사건들이 큰 흐름에 맞추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된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인물들이 동시에 이야기를 하고 너무나 짧은 순간들이 빠르게 진행이 되어도, 13명의 인물들이 겹치는 거 하나 없이, 헷갈리는 역 하나 없이 전부 머리에 박혔다. 선생님, 의사, 교회 신자, 군인, 감사원, 학생 등 순간적인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에 남는다. 순간순간마다 다른 역을 맡아도 자연스러웠던 건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위화감이 없어서가 아닐까. 


연출이 뛰어난 작품이다. 벙찐 상태로 보았다. 휘날리는 종이, 다양한 의자의 활용, 교차되는 배역, 둥시에 진행되는 사건 등 중요한 핵심만 모으고 모아 잘 조합하였다. 내가 이제껏 보아온 연극과는 전혀 다른 연극이었다. 좋았던 장면 중 예를 들자면- 내부고발자들이 건강에 이상이 생겨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무대 양 끝에 배우 두 명이 앉아 약의 이름을 읊는다. 00정 2알 등으로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약 명의 메아리 속에서 점점 아파오고 미쳐가는 내부고발자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듯 개성있는 각 장면의 연출 하나하나가 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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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극, 고발자들

처음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 사회의 비리를 발견하면- 이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인지 혹은 정해진 운명, 필연인지 혼란스러워한다. 내부고발자란,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야하니까, 그냥 해야하기 때문에, 당연하니까'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응원하던 동료들이 배신한다. 그리고 재판은 계속된다. 이에 대기업이 횡포를 하여 내부고발자는 점점 지쳐간다. 기본 생활 자체를 영위할 수 없으며 그저 나락으로만 떨어진다. 이 고난을 딛고 일어서 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건 현실에 없다. 점차 심화되고 지속되는 고통으로 몸 상태조차 말이 아니다. 후회를 한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안할 것'이라고. 양심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당연한 일을 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은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 일자리, 건강, 친구 등 모든 것을 잃고, 재판에 이기든 말든 자신의 인생, 삶은 그 참담함으로 끝이 난다.

극을 보면서 계속해서 '나라면 과연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내부 고발자들의 아픔이 너무나 잘 드러났다. 당연한 일을 했어도 사회와 현실은 당연하지가 않았다. 내가 당사자라면 과연 내부고발을 할 것인가? 할 수 있을까? 당연한 일조차 고민이 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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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상

임팩트있던 연극이다.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미니멀리즘적인 감각의 끝을 달리는 연출이다. 순발력있는 순간적인 장면전환 - 무엇보다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빠르게, 속도감있게 몰입해서 보았다. 연기 같지 않은 실감나는 고통들. 단편적인 장면만 보여도 이상하지 않으며, 많은 배우들이 공간에 있어도 혼란스럽지 않았다. 보는 내내 감탄했다. 공연 기간이 짧아서 아쉬웠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큰 극장에서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연극이 너무 좋아서. 물론 작은 공간이어서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던 거지만. 아쉽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극을 알리고 싶다.

나는 내부고발 기사만 접해봤을 뿐, 주위에 실제로 한 인물이 없어서 그들의 사정을 몰랐다. 관심이 전혀 없었다. 관련 기사로 접해도 아, 그랬구나- 정도로 스쳐지나가고, 보복이라는 기사를 봐도 욕만 하고 끝냈다. 그리고 금세 잊었다. 내부고발이란 나에게 철저히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연극을 보고나니, '내부고발자' 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있는게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고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고발하기까지 치열한 고민들과, 진행된 이후의 좌절감을 '극'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게되니 참담했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남 일'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사회가 얼마나 악독하고 비정상적인지, 고통스럽고 아픈지를 간접적으로 느꼈다. 직접적으로 극으로 보았다.

이 연극은 해피앤딩의 결말도 아니고, 누군가 조력자가 도와줘서 좋게 풀리는 내용도 아니었다. 철저히 현실적이었다. '그래도 내부고발자로 나설 것인가?'라는 문구는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극 내에서도 통용된다. 실제 내부고발자들은 말한다. '다시는 안할 것이다.'라고. 사회를 위해-라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이니까'  하는 일인데. 내 일이 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런 보복을 보고도? 이렇게 고통스럽기에, 남들이 쉬쉬하는가 보다.

무언가를 집단, 사회 속애서 행할 때에도 자기 편이 있으면 훨씬 더 유리하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자신의 배경이 없으면 힘든데, 자신이 속한 큰 집단, 사회에서 잘못을 밝히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 일일까. 갑을이 명확한 사회 속에서- 최소한으로 제도적으로라도 고발자들을 위한 법적 보호가 있으면 좋겠다. 사회, 기업이 양심적이라면 제일 좋지만, 그 바램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용기있는 내부고발자들을 위한 체계라도 잡혀있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대상자를 더 늘리고, 보호를 더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낯설지 않게, 남 일처럼 바라보지 않는 사회가 형성되면 좋겠다. 만약 겪게 된다면 용기있게 할 수 있고, 또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뒷받침되기를 바란다. 우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남일처럼 보지 말기, 그들에게 마음쓰기. 최소한 응원이라도, 격려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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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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