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시간을 파는 상점 : 2017 집시의 테이블 [공연]

글 입력 2017.09.0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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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싫어했더랬다. 나는 여행을 싫어하는 20대였다. 내가 여행을 싫어한다고 하면 으레 듣는 소리는 ‘20대에 여행을 안 가면 언제 가려고 하느냐’, ‘네가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쓴 소리였다. 흔히 ‘꼰대’라 불리는 어른들만의 발화는 아니었다. 내 주위 다수의 사람들은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이 죄악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나는 큰 돈 들여 여행 가는 것 보다 서울에서 맛있는 커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공연 한 편 더 보는 게 좋은데? 나는 속으로는 그렇데 삐댔더랬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방학 때마다 타지로 나가기에 실은 조급했던 것 같다. 삐댄 것은 삐댄 것이고, 정말 내가 어떤 죄악이라도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들이 다 경험해 본 것을 나만 혼자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감에 충동적으로 비행기 표를 잡았고, 친구와 함께 3박 4일 동안 홍콩에 다녀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분명 여행은 선택의 문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건 여행을 경험해보고 할 수 있는 선언일 것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제치고, 지레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적어도 경험해본 후에야, 여행은 내게 무엇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우려와는 달리 여행은 만족스러웠다는 얘기다. 일상의 진부함이 날 덮칠 때, 서랍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는 얘기다.

여행을 선택하고 깨달은 것은 여행은 ‘시간을 얻는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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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저자 이병률은 이렇게 표현했다.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자,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나에게도 여행은 시간을 버리거나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中)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고' 싶으나, 일상의 여건들이 나의 사치를 허락해 주지 않는, 어느 슬픈 가을이다. 일상이 버겁게 느껴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요즘이다. 그래서 시간을 벌어오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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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벌어오고 싶은 내 앞에 시간을 파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집시의 테이블 앞에는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모인다. 방랑하는 자들, 정착하지 않은 자들이 테이블에서 시간을 판다.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떠돌이 이야기꾼들의 음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시간을 나에게 선사한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아일랜드, 그리스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는 방랑객들의 시간, 그 간접적인 시간을 나에게 판다.
 
여행을 떠나지 못한, 도심 속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테이블 앞에서 시간을 산다. ‘마음을 다독이는 음악여행’이라는 수사가 꼭 맞기를 기대하며 시간을 살 것이다.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자,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내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동시에, 낯선 시간을 서랍 속에 행복하게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테이블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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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나윤.jpg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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