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모되어가는 것들의 이유있는 외침, 연극 '소모'

글 입력 2017.09.0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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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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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신진연출가전,
연극 '소모' 리뷰



#1. 언젠가 닳고 닳아 문드러질 것들에 대하여


 그 언젠가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세상에 벌레로 변해버리다니!’라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마치 나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인 것처럼. 열다섯 중학생의 시선에는 <변신>은 딱 거기까지였다. 한 개인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 그 뿐. 그리고 스물 하나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 본 <변신>은 사뭇 달랐다. 이토록 처절하고 비참하기 그지없는 작품이라니. 게다가 그것은 곧 우리네 삶이자 나와 절대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극 <소모>를 통해 만난 ‘변신’의 실체는 어차피 닳고 닳아 문드러질 것들을 위한 변주곡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호수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오직 <소모>를 통해서 그것이 나의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 이전에 <변신>은 언제나 이야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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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모되어 가는 것들, 소모하는 것들. 온통 세상에는 닳고 닳아 없어지는 것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치 않는 것을 찾아 외친다. 사랑은 변하지 않고, 우정은 언제나 견고하다! 하지만 그 대단한 사랑과 우정도 현실 앞에서는 와장창 무너지는 게 오늘이다. 너무 추상적이라면, 그렇게 이루고 싶고 지키고 싶었던 당신의 지난날의 꿈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시대의 요구 앞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덧 네 번째를 맞이한 신진연출가전에서 선보인 <소모>는 젊은 연출가의 예리한 눈을 피해갈 수 없었으며, 그 속에는 알아차리고 나면 슬픈 의미들로 가득하다. 극의 첫 시작이 그랬고, 그와 가족들, 그의 꿈, 그의 마지막이 그랬다.
 
 주인공의 첫 등장은 강렬했다. 가방을 멘 남자가 분주하게 무대 위로 뛰어들고, 흰 천을 깔고 발에 먹물을 묻혀 마구 달린다. 내가 걸었고, 당신이 걸었던 소위 말하는 대학으로 가는 길을 향해 미친 듯이 뛴다. 미친 듯이 뛰어서 마주한 것은 취업이란 전쟁터고, 그를 받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겨우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을’일 뿐이다. 그의 가방과, 먹물 묻은 발을 보면서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떠올랐다. 소위 말해 ‘먹물 좀 먹었다’라는 표현이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이며, 너도 나도 대학을 나와 다 같이 취업이란 파도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이 미친 듯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왔구나, 가야할 길이 참 많고 고달프구나.’라는 애잔한 공감이 들었다. 앞만 보며 달려온 날들의 끝은 무엇일까, 끝이 있긴 한 건지,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네 청춘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그려졌다.

 

#2. 미워함이 미워함을 낳을 때, 누가 벌레인가?


 혐오는 혐오를 낳는다. 그가 벌레로 변한 순간부터 혐오의 불꽃은 타닥타닥 타오르기 시작한다. ‘벌레’에 주목해봤다. 카프카가 <변신>을 쓸 때 한국 사회의 현 주소를 미리 예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벌레의 생김새나 움직임 때문에 벌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벌레는 분명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레는 단순한 싫음을 넘어서 혐오의 아이콘으로 대체된다. 소위 말하는 ‘맘충’, '급식충‘ 등의 어원에서 우리는 상대에 대한 혐오의 표시를 벌레로 대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벌레로 변하면서 가족들의 시선은 곧 혐오로 변한다. 벌레로 변해버린 아들이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소리 지르는 부모와, 이제 자기의 앞날을 막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막내의 모습 속에서 가족의 해체와 혐오의 탄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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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는 비단 가족 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갑과 을이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낳는다. 국회의원 밑에서 아부하는 아버지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마구 짓밟는 아버지가 있다.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려는 어머니와, 잘 보이기 위해서는 너 하나쯤은 조용히 하고 있으라며 딸의 입을 막는 어머니가 있다. 우리는 미워함이라는 단순한 감정 속에서 갑과 을이라는 계층을 나누면서 끝나지 않는 무의미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저 모습만 벌레로 변한 그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워함이 또 다른 미워함만을 낳는 오늘날이다. 과연 우리가 바라보는 그 자체가 벌레인지, 불투명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그가 벌레로 보이는 것인지 지나간 시선들을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3. 나의 꿈은 당신들의 것이 아니랍니다.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벌써 새벽인데 아직도 혼자네요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항상 당신 곁에 머물고 싶지만
이 밤에 취해 (술에 취해) 떠나고만 싶네요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것어요
나의 구두여 너만은 떠나지마오


 가족으로 부터의 해체 통보를 받은 그는 점점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와 연관된 것들을 하나씩 끊어내는 장면은 가히 연극의 클라이막스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상 깊었다. 그는 천장에 매달린 토플책, 넥타이, 컴퓨터, 마이크를 하나씩 끊어낸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도 끊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진정으로 원했고 꿈꿨던 ‘마이크’였다. 어쩌면 취업만 하면 바라왔던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믿었던 그의 꿈은 진정한 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순수하게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던 지난날이 그에게는 더욱 간절하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현실에 저당 잡힌 우리들의 꿈은 당장의 필요에 의해서 바뀌기도, 타인의 주입에 의해 바뀌기도 한다. 어딜 가서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당당하게 외쳤던 지난날의 패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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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그가 마지막까지도 놓지 못한 음악에 대한 꿈은, 그가 떠난 뒤 가장 먼저 쓰레기 처리반에 의해서 치워지는 물건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랜 꿈이었지만, 성공만을 바라는 사회 앞에서 그의 꿈은 제일 먼저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래서인지 어두운 조명 속에서 그가 홀로 부르던 크라잉 넛의 ‘밤이 깊었네’가 아직도 인상 깊다. ‘당신’은 그가 바란 꿈이자, 그의 가족들일 것이다. 그는 가장 사랑하고 애정 하는 것들을 스스로 포기했고, 그들로부터 버림받은 애처로운 존재다. 그런 존재는 비단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소모되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어딘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브레히트는 연극을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제기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조보우 연출가도 이에 동의하며 '소모'는 답이 아닌 질문을 관객에 제기하는 역할을 하며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관객과 문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고 말한다. 타인에 의해서, 현실이 그래서 사라진 자기의 정체성은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갑과 을이라는 불평등의 관계가 고정되고, 물질과 기계에 휩싸인 오늘날 우리는 반드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당당하게 서 있어야 한다. 조보우 연출가가 맨 처음 던진 것 처럼 '오늘날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쩌면 그저 기계처럼 소모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표는 끊임없이 평생에 걸쳐 던져야 할 한 개인과 사회의 과제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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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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