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픔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글 입력 2017.08.1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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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픔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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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이것은 장승리의 두 번째 시집 『무표정』(문예중앙,2012)에 수록돼 있는 시 「말」의 한 구절인데, 나는 이 한 문장 속에 담겨 있는 고통을 자주 생각한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부분
 
 
나는, 이 한 문장 속에 담겨있는, 고통을, 자주, 생각한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처럼, 끊어서, 여러 번 읽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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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은 처량하고 애잔하다. 친구들의 연애에서도, 영화나 책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은 작정하고 달려들어 처량해지곤 했다. 그들은 안달 난 상태로 항상 야단을 맞았다. 맨발로 대뜸 달려 나가거나 비를 맞거나 때로는 사랑의 열병에 끙끙 앓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를 지켰다. 그 태도 하나, 겨우 그거 하나는 지켜냈다. 사랑의 수신자는 태연할 수 있었고 평정을 지킬 수 있었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건 멋있게 그려졌지만 사실 재수 없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랑의 단상』을 주문했더니 주황색의 두꺼운 띠지를 두르고 배송되었다. 그리고 띠지에는 굵고 까맣게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보다 작은 글씨로 하단데)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고 적혀있다.
 
사랑하는 일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픔이나 고통이나 무력함에 대해. 사랑에 빠져 사랑에 투신한 사람들의, 죽일 수 없는 사랑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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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선 사랑에 모든 걸 걸어버린 마츠코의 단편들이 한 편씩 이야기 되는데, 영화는 마츠코가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졌을 때는 꽃이나 빛, 무지개 같은 반짝이고 아기자기한 것들로 배경을 그려 넣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사랑이 무너질 때는 꼭 검은 하늘, 먹구름, 비 같은 걸 퍼부었고, 환상처럼 그려지던 사랑의 배경과 달리 검은 하늘에 퍼붓는 비는 꼭 사실이었고 주인공은 그 빗속에 온통 서 있어야했다. 쏟아지는 고함처럼 세찬 빗줄기가 주인공을 실컷 두드려 패고 나야 그 장면은 지나갔다. 사랑을 시작할 때 껑충껑충 뛰어가던 주인공의 뒷모습과 빗물에 두드려 맞은 주인공의 뒷모습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격차가 컸지만 어찌됐든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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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은 본디 하고자 함 자체부터 아픈 것, 떨쳐버리고 싶은 것, 죽이고 싶으나 죽일 수가 없는 것. 끊임없이 왜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되묻고, 하루에도 벌컥벌컥 아프게 들이키는 것. 그러나 정확하게 사랑할 수 없고, 그 때문에 정확하게 사랑받을 수 없기에 더욱 아픈 것이기도 하다. 나와 사랑받는 얼굴과의 현저한 불균형은 언제든 나를 괴롭게 한다.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관계에서 진실로 휴식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게 될 것이다. (알랭 핑켈크로트, 『사랑의 지혜』, 「괴로움」 부분 인용, 변주)

마츠코의 사랑이 끝날 때 즈음, 그 배경은 어둡고 무섭고 외로웠는데, 사실 어둡고 무서운 배경, 외로움이라는 한 단어로는 환산될 수 없는 다양하고 수많은 아픔들이 덕지덕지 발라진 배경이야 말로 우리 사랑의 배경일 거다. 우린 이미 거센 빗줄기 안에서 실컷 젖어버리고, 결국은 비가 싫다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그 배경 속에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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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싫다는 마츠코의 독백은 사랑의 아픔이 싫다고 말하는 거처럼 들리고, 그러나 다시 사랑하고.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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