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야만적인 극 「한여름 밤의 꿈」 [공연]

현대적 복식과 현대적 어투, 무대장치 등은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연극의 내용과 과격함, 고고한 어조에 가려져있던 저급한 위트 등은 동시에 ‘야만적’인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 입력 2017.08.02 23: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1-08-18_11;44;15.jpg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낭만 희극으로 
연인들의 사랑의 마찰과 갈등이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 해결되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며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다."


  검색창에 '한여름 밤의 꿈'을 입력하였을 때 가장 위에 떠있는 문구이다. 아마도 '한여름 밤의 꿈'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은 여기에 머무를 것 같다. 하지만 7월 15일부터 30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상연되었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은, 위와 같은 소개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한여름밤의 꿈 poster.jpg
 

  단조로운 무대, 현재 내가 입고 있는 옷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상, 너무 올드하지 않은 대사들 등 연극의 많은 요소들은 이 극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상깊었던 것은 이런 것에서 더 나아가 이따금 객석을 무대로 활용하거나, 요정들의 몸짓이 현대 무용의 느낌을 주는 움직임이었다는 것이다. 원작에 충실한 연극을 보지 못했지만, 이런 장치로 이 연극이 현대를 겨냥한 것임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포스터에 적혀있던 '가장 야만적인' 셰익스피어 극이라는 소개는 어떤 의미일까? 사실 연극을 보는 내내 야만적이고 도발적인 느낌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연극이 끝난 뒤에도 어떤 심오한 주제라든가 연극이 비판하고자 하는 문제라든가 하는 것들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킬링타임으로 영화나 한편 본 느낌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극중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자주 터져나왔고, 나 역시 캐릭터들에게 몰입하려 노력하면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막이 내린 직후에 드는 생각은, "재밌다"로 정리되었다. 분명 연극의 소개를 접했을 때, 이 130여분의 시간은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긴 사투가 되리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포스터 또한 심각한 분위기와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뒤 머릿속은 재미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감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KakaoTalk_20170803_010736102.jpg
 

  머릿속에 간단명료함과 혼란이 공존하자, 연극에 대한 반추가 필요함을 느꼈다. 연극을 만든 사람이 무언가를 깊이 의도했는가는 사실 아직도 불명확하다. 하지만 곱씹을 수록 어떤 디테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극의 전반적인 내용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연인들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말하자면, 두 커플 간의 사랑의 마찰이 과연 잘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극의 후반부에 환상의 힘을 빌어 드미트리우스와 헬레나가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진정으로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다. 헬레나는 영문이 어떻게 되었든 드미트리우스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음에 기뻐하고, 세 쌍의 커플이 식을 올린다.

  헤르미아와 라이샌더의 사랑도 어딘가 우습게 그려진다. 서로를 놓지 못하는 연인, 애틋한 연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얼빠져보인다. 숲으로 들어간 뒤 잠을 청할 때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도 손을 맞대려 하는 광경은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져,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웃음을 연발한다. 이 장면이 연출의 힘이었는지 원작 셰익스피어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극의 전개부분에서 라이샌더가 사랑의 묘약에 중독되어 헬레나에게 빠졌을 때 헤르미아에게 온갖 폭언을 퍼붓는 모습을 좀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라이샌더가 정신을 차리고 헤르미아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단 몇마디로 상황을 복구하고 둘은 다시 이전처럼 똑같이 사랑하게 된다. 사건의 인과와 실마리들은 생각하지 않은 채, 연인들은 결과만을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연극이 야만적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헤르미아의 아버지가 연인을 억압하고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사실 큰 임팩트가 없었고, 극의 후반부에 너무 간단히 해결되어 버리기에, 당시 억압적인 분위기나 아버지의 권위적 모습을 비꼬는 의도는 크게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남성성과 여성성을 중심으로 두고 이 연극을 바라볼 때 얘기할 거리는 많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소동은 요정의 왕 오베론의 손아귀에서 펼쳐졌던 일이다. 티타니아에게 일종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계획했던 일이 뒤틀려, 드미트리우스와 라이샌더에게 그 화살이 돌아간다.이 연극의 전개부를 담당하는 두 청년 또한 남성으로, 헤르미아와 헬레나는 그저 어리둥절하거나 어떤 영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일이 잘 해결되자 이것저것 추궁하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인다. 티타니아 역시 당나귀와 사랑에 빠졌다가 오베론의 행동으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뿐이다. 어쩌면 원래의 상태도 아닌지 모르겠다. 오베론에게 인도 소년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는 두 연인이 숲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로, 애초에 헤르미아의 아버지와 공작이 강압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일어난 이야기였다. 연극의 주인공이 남성이라고 못박기에는 티타니아가 대담하고 저항적인 측면이 있고, 여성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모든 스토리가 남성 캐릭터의 행동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DSC01909.jpg
 

  현대적이면서도 야만적인 극 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현대와 야만은 서로 상반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세대에, 예의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소위 ‘진상’과 비양심적인 갑의 횡포 등은 이 두 문화가 꼭 공존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연극은 가장 야만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것이 아닐까. 현대적 복식과 현대적 어투, 무대장치 등은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연극의 내용과 과격함, 고고한 어조에 가려져있던 저급한 위트 등은 동시에 ‘야만적’인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연극을 보고 영화나 한편 때린 듯한 느낌을 받은 것도, 이런 상식 이외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사실은 익숙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셰익스피어의 시대 역시 이것은 똑같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더라도, 셰익스피어 이전에 야만이라 생각했던 생활양식이나 문화들이 그의 시대에 남아있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고, 그는 그것을 꼬집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연극을 보며 이러한 ‘야만’을 다시금 볼 수 있고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통찰이 뛰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400년 전이든,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이든, 혹은 현재든, "말세다~"라고 중얼거린 이들이 꽤 많았나보다, 하고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KakaoTalk_20170803_011818301.jpg
 

[최예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