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겨울, 나는 왜 많은 것을 그냥 지나쳤는지.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6.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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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순기능 중 하나는 (조금 진부할 진 몰라도)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것이다. 교화가 조금 거창하다면 사고의 환기를 일으키는 것. 그래서 행동의 변화까지는 못 미쳐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그냥 가난한 서민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로 그칠 수 있었지만 다니엘은 계속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케이티 가족과 함께여서 더욱 그럴 수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어려워하는 다니엘을 보면서 (이를테면 컴퓨터에서 서류 신청 같은)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내 곁에 있어온 수많은 다니엘들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눈을 피하며 그렇게 편하게 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작년 겨울이 생각났다. 내린 눈이 녹았다가 얼어서 매우 미끄러운 길이었는데 아무도 염화칼슘이나 흙을 뿌리지 않았다. 나 또한 그저 미끄럽다고 불평만 하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었다. 영화를 보고 생각해보니 결국 가장 위험에 놓이는 건 노인 분들 혹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일 것이고 그들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건 나를 비롯한 우리였다. 사실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단발 적일지, 시간이 흐르면서 얼마나 희미해질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게끔 만들어 주는 건 영화의 역할, 그 이후의 것은 나의 몫이니 꾸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덤으로 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영화 중 가장 난감한 영화가 울어라, 울어라, 하는 영화다. 그런 영화 앞에서는 오기로 더 안 울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 (무려) 세 번을 울었다.

첫 번째는 케이티가 무료식료품점에서 배고파서 이성을 잃고 캔을 까서 손으로 먹고는 그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창피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할 때. 두 번째는 다니엘이 케이티가 몸 파는 일을 시작한 걸 알고 찾아가서 이런 일까지 할 필요 없다며 서글프게 안아줬을 때. (사실 이 장면에서는 굳이 이렇게 찾아간 다니엘이 조금 미웠다.) 세 번째는 다니엘이 실업급여를 받는 것을 또 한 번 실패하고 벽에다가 원하는 바를 쓰고 길 가던 사람들이 환호할 때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기 전에 항고 날짜를 잡아줄 것을 요구한다.’ 라고 쓰며 “나는 개가 아니고 그냥 사람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사람의 시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 세 장면 모두 슬퍼서 울었다기 보다는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무력감과 저들의 삶이 그럼에도 버티고 있음에 대견함(?)을 느껴 그저 주르륵 눈물이 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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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감독의 소감이다.

삶에 희망이 있다는 건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닌,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던 김연수 단편소설의 말처럼 우리에게, 다니엘과 케이티에게 지난 일들은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할 힘이 되어 줄 거라고 말하고 (그렇게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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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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