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샌주니페로. 영원을 누릴 수 있는 곳 [시각예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 입력 2017.06.0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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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주니페로. 영원을 누릴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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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블랙미러


샌주니페로 에피소드가 속해있는 <블랙 미러>. 이 드라마는 과학 기술이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주제로 가지고 있다. 매회 다른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앞서 말한 소개로 ‘악영향’을 말했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과학기술 앞에 펼쳐질 우리 사회에 대한 ‘상상’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악영향이라고 말하기엔 < 샌주니페로 >편이 하나의 티끌도 없이 해피엔딩이기 때문에. 블랙 미러는 원래 영국드라마로 이름을 떨쳤는데 시즌 3부터 넷플릭스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때문일까 블랙미러 드라마 처음으로 샌주니페로를 통해 퀴어커플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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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의 어느 해안 마을. 켈리와 요키는 우연히 한 클럽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켈리와 요키가 있는 샌주니페로라는 공간은 현실이 아닌 죽음 이후의 새로운 시공간이다. 죽음 직전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샌주니페로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나눈 밤 이후 없어진 켈리를 쫓아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오가며 요키는 캘리를 찾아다닌다. 드디어 서로를 만나 사랑을 확인하지만 켈리는 죽음 이후 샌주니페로에 남는 것을 거부한다. 캘리에겐 너무도 사랑한 남편과 자식이 있었지만 먼저 죽음으로 떠나보냈고, 그런 기억 속에 영원한 삶과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요키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반신불수가 되어 삶을 살았기에 가상세계로의 전이는 너무도 간절한 소원이자 새로운 인생이다. 그리고 요키에게 그 속에서 만난 켈리는 그 공간과 삶 속에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인 것. 함께 하자는 요키의 말에 수없이 깊은 고민을 하는 켈리. 그리고 마침내 그 둘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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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키의 경우에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기에 마음이 가는 켈리와 영원히 함께한다는 것은 너무도 좋은 일일 것이다. 또한 현실에서 가족에게 부정당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정받고 스스럼없이 사랑하는 일인데 무엇이 두렵겠고 무업이 마음에 걸리겠는가. 하지만 켈리는 달랐다. 딸은 사고로 죽었기에 샌주니페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보낸 딸이 마음에 걸려 남편은 샌주니페로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그들의 추억이 가득 담긴 샌주니페로의 향수 안에서 철저하게 즐기고 떠나려했던 켈리에게 요키는 결심을 흔들어놓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결심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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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샌주니페로>를 선택할까


누구나, 모두가 죽음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삶의 끝이라는 종착역은 그 자체로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공간이기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영생을 꿈꿨고 인간을 대신해 영생하는 존재를 만들어내곤 했다. 역사 속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꿈꿨고, 흔히 드라마 속에서 영생하는 ‘외계인’이나 ‘도깨비’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듯 인간은 영생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늙지 않는 평화롭고 즐거운 안식이 있는 세계, ‘천국’에 대한 열망과 환상 역시 가득하다. 가상의 세계지만 완벽하고도 완벽한 그 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죽음이 코앞에 온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지금 영생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영생이라면 지금처럼 살았을까. 영생이란 그 긴 시간 속에 존재의 가치를 높이지 않아도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그것은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다. 시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삶. 늦는다는 개념이 없어지는 일. 빈둥빈둥 보내도 아무도 보채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는 삶. 평생을 원하던 삶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코알라의 삶이랑 무엇이 다를까. 실제로 샌주니페로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요키가 캘리에게 이 곳 사람들은 얼마나 자살하는지를 몰어본다. 켈리는 80-85%라고 대답한다. 죽은 자들의 진정한 천국과 같은 곳. 샌주니페로는 과학이 만들어낸 낙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살한다는 것. 영원함을 주지만 결국 사람들은 끝을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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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길지 않은 삶이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그래서 또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 더욱 소중한 사람과 그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이고, 또 그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기 때문에 사람들은 권리를 쟁취하려 싸우는 것이다. 샌주니페로가 멀지 않은 어느 날, 생겨날 수 있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지금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개발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치만 지금 우리의 삶이 한정적이란 것은 현실이다. 낙원이라 부를 수 없는 삶 속에서 ‘행복’을 위해 끝없이 소중한 것을 곁에 두자. 사람은 영원하지 않지만 추억은 영원히 남을 수 있으니까.


[김정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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