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70122 7‘44“ [문화전반]

담화
글 입력 2017.01.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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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화가 끝나고 b가 그린 a
  

  친구 4명이 있다. 그렇잖아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 모인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모난 부분이 잘 갈려 데칼코마니 같이 비슷한 모양새를 갖췄지만, 그 안에 본질적인 색은 뚜렷이 유지 하고 있어 종종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작은 마찰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들 대화 나누기를 좋아해 오히려 시간을 잡고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고 그 다른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철학적인 주제를 건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4명중 두 사람은 오랜만에 충돌했다. 이 글을 보며 당신은 a에 이입할 수도 있고 b에 이입할 수도 있다. 직접적인 대화들이라 약간의 불편할 비속어도 있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압축한 탓에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대화의 시작은 ‘공존’이였다. a는 사람은 결국 본질적으로 공존이 불가능 하다고 주장했다. 아니, 공존이란 단어조차 일종의 모순적인 단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악어새와 악어는 서로 공존하는 존재로 언급되지만, 결국 내가 봤을 땐 며칠째 사냥에 실패한 악어라면 강자인 악어는 언제든 악어새를 먹어 채우고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지. 하지만, 악어새는 갑작스런 변덕이 일어도 악어에게 어떤 직접적인 해를 끼칠 수 없어. 이걸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공존도 0.0001의 차이로 우위를 점한 존재는 있고, 결국 본능에 따른 이득 갈취지.” 물론 이 이야기 하나로 일반화 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건 아니고 조금 유쾌하게 말 해 본거야-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득을 따르는 행위라고 해도 결국 그런 부분을 맞춰가면서 함께 살기 때문에 공존하고 있다고 하는 거지. 그리고 악어새와 악어 뿐 아니라 올곧이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식물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아. 너 말대로 일반화 시키는 오류가 아닐까?”가만히 듣던 b는 반박했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돌아가자며 a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공존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는 게 다른 것 같긴 하지만, 난 결국 사람은 공존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해. 페미니즘에 대한 예시를 들어보자. 기득권층인 남성에게 여성이 배려를 요구하는 행동이 맞는 걸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회화’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 본성만 집중해야 한다는 거야! 난 개인적으로 진화론을 믿기 때문에 인간이나 동물의 본능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난 달라.”b는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것처럼 잠시 말을 끊었다. “맞아,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금 내 의견을 듣는 동안은 인간을 동물로서, 고로 동물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고 들어줘. 동물의 왕국에서처럼 양육강식 사회 속에서 신체적 혹은 물리적으로 강한 위치에 있는 수컷에게 과연 암컷이 약자로서 배려를 요구할 수 있을까?” “모계 사회도 많지.”b는 또다시 말을 끊었다. “맞어. 하지만 그 단어에도 ‘사회’라는 단어가 들어가네. 난 앞서 말했듯이 ‘본능’ 외에는 모든 걸 배제하고 들어줬으면 해.” 말을 끊은 것에 보답으로 b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요즘 계속 화두에 오르는 페미니즘,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기 위해선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본질적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말은.. 조금 어색하지? 내가 생각하는 부분이 그거야. 본능 속에서 인간은 결국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공존 할 수 없어.”a는 말하고 나서야 혹시 허점이 뵐까 머쓱해 하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 하지만 그 다른 요소들을 서로 의식하면서 맞추는 모습이 공존인거지. 그리고 그게 결국 인간과 동물의 차이인거야. 인간 우월주의일 수도 있지만, 난 그 분명한 차이인 사회화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해.” “b, 너가 말했던 것처럼 확실히 인간 우월주의가 엿보인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결국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모성애가 인류의 보물로 치부되어 오다 결국에 허점이 드러난 것처럼.” “허점?” “왜, 거북하지만, 일제 강점기 마루타 시험 중에 *모성애 시험이 있다는 것 아니?”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도 모성애란 말은 싫지만 허점이란 표현은 좋지 않은 것 같아.” “그래, 그건 확실히 실수했네. 하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인간의 이성과 사회성을 그렇게 과대평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동물들 사이에도 사회는 분명히 있지.” “하지만, 우리(인간)이 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억압하진 않지. 그렇기 때문에 늑대의 사회성이 로망으로 여겨지겠지?”>

잠깐 서로 목을 축이고 가만히 앉았다. 상반된 의견이 엎치락뒤치락 했어도 두 사람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약간씩 말을 끊기는 해도 좋은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b는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양육강식이란 단어 자체도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이거 봐. 양육강식이라면 우리 둘이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어?” “우린 친구니까.” “그게 바로 사회화지!” 우스꽝스런 자세를 취하며 당당하게 뱉는 b의 말에 a는 잠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공존이 안 된다- 말하는 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아. 이런 이야기 한 두 번 이니.” b는 대답하면서도 더 추가 설명을 바라며 a를 기다렸다. “왜,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있잖아?” “좋은 말이지. 기대한다면 실망도 당연히 있으니까.” “맞아. 난 그 말 참 좋아해. 그리고 공존도 비슷해.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개인’의 바운더리를 잘 의식하는 게, 혹은 그 사회화나 공존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깔끔하고 확실한 결과를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하니까. 혹은 따뜻한 사회를.” “예를 들어 언젠가 헤어질 거 아니까 애인을 사귀지 않는 것 같은? 너무 겁쟁이잖아.” “그런 소리 아닌 거 알면서 그런다.” “너무 오버했지?” 잠시 또 웃고 난 후 b가 말문을 텄다. “여기서 또 다르네. 난 ‘신뢰’가 관계에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신뢰로 무너질 수도 있지만 더 탄탄 해 질 수도 있는 게 인간관계니까. 거리를 두고 멈춘 관계는 거기서 끝난다고 생각해.” “거리를 둔다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 같은 사람은 그런 말로 느낄 수밖에 없는걸.” 그렇군― a는 약간은 미안한 마음에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니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상과 현실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정적을 깨고 b가 입을 열었다. “그러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너는 공존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또 철저하게 맞출 사람과 맞추지 않을 사람을 걸러 내니까. 취향 참 똑부러지네.” “난 개 ㅆㅑㅇ 마이웨이니까!” 사람이 많은 카페라 b의 외침도 잘 묻혔다. “그런데 a가 내 생각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 공존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없애고 상대방에 맞추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계속해서 부딪히고 맞출 건 맞추면서 살아가는 게 공존이라는 거지.” b는 진지해 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또 너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네. 나는 그게 안 되거든. 넌 타인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과거보단 미래지향적으로 사니까. 하지만 난 내 자신이 중요한 만큼 다른 개인의 범위도 꽤나 중요하게 여겨. 그래서 침해하지 않으려고 해. 그만큼 내 범위도 지켜줬으면 하는 거고. 그래서 내 멋대로 하기보다 함께 할 때에는 내가 아닌 상대방에 조금 더 맞춰서 행동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 해. 하지만 그건 공생이 아니잖아? 얼마 전에 고민 상담했던 것처럼 최근에 느낀 거지만 난 요즘 나를 너무 많이 잃어서 상실감이 들었다고.” “그 이야기는 이 주제랑은 조금 관계가 없는 것 같아. 하지만, 너가 말하는 이야기에 모순을 짚자면 분명히 기대 하지 않는 게 좋은 관계라고 했지만, 너 역시 결국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았던 배려를 주고 같은 배려를 바랬던 건 아니야?” “b말이 맞아.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서로 다른 부분을 맞춰가며 공생한다.>라는 말은 멋있어 보이지만, 그게 얼마나 힘들고 까마득한지 알잖아? 심지어 그렇게 말하는 너도 맞지 않는 사람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처럼. 그게 공생일까?” “조금은 찔리기도 하지만 나한텐 공생이야. 그런데 말이지. 넌 처음에 공생이란 애초에 존재 할 수 없다고 했으면서 왜 인생은 공생하는 인생에 집중 해 살고 있니?” “앗, 그러네! 그러면 오히려 너는 왜 공생과 함께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개성중심 사회를 살고 있는 건데?” “이게 뭐람!” “이상과 현실은 다른 거 알지만 이렇게 다를 수도 있는 거야?” “아니면 서로 살고 있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을 이상으로 삼는 걸지도!” “아니면 그냥 우리 둘이 지금 말이 안통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짧은 대화처럼 보이지만 거의 4시간을 넘게 한자리에 앉아 나눈 대화에 두 사람은 목도 타고 배도 고파졌다. 아침도 점심도 거르고 커피 한잔에 저녁 9시까지 버티고 나니 허기진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기로 했다. 우리 둘이 친구라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좋다- 누군가 말했고 한명은 전 날 밤샘 일정에 지친 몸을 뉘이기 위해 집에 돌아갔고 다른 한사람은 무거웠던 그 대화를 잊고 싶지 않아 재빨리 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a가 자신인지 b가 자신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a의 의견을 적으며 모순을 느꼈지만, b의 주장에서도 부족함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역시 a의 의견이 맞다 싶으면서도 또 b의 말에 가슴이 동했다. 끝에 가서야 a의 말도 b의 말도 적당히 섞여, 불필요한 말은 적절히 걸러져 그 가슴에 남았다. 인종도 가치관도 언어도 삶도 다른 60억의 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이런 걸까.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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