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의 조건, "요리" [문화전반]

리처드랭엄의 『요리 본능』, 요리의 의미를 밝히다
글 입력 2017.01.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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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일 없이 노는 백수라 무언가에 뿌듯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이틀에 한 번 꼴로 해먹는 요리가 간신히 뿌듯함을 채운다. 먹은 게 없으면 허기가 지듯, 하는 일이 없으니 내 ‘품위’에도 허기가 진다. ‘이쯤이면 요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반질하게 말라 있는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 몇 장 띄우고 내장 뺀 멸치를 준비한다. 멸치를 불에 살짝 그을려주면 풍미가 좋아진다하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파란 불길이 닿으면 바삭한 냄새가 얼핏 올라온다. 새어 나온 열기에 아랫배가 데워지고, 냄비는 가쁘게 열(熱)을 삼킨다. 그제서야 요리하는 기분이 든다.

 요리를 한다는 건 곧 불을 쓴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온갖 재료들은 불과 만나 풍미가 더해지고 연해지며 그것이 우리의 식욕을 자극한다. 얼마나 익힐 것인가, 어떤 불에 익힐 것인가 등등, 불은 요리를 하나의 '창조적 기술'이 되게 한다. 불은 미식(美食)의 조건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불은 미식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만 있지는 않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날것이 아닌 요리된 음식을 먹는다. 언제부터 익힌 것들을 주식으로 삼은걸까? 우리는, 왜 '우리만' 요리하게 된 걸까? 매일 요리를 만나는 존재들치고 우리는 요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거의 아무것도 없다. 책 『요리 본능』의 저자 리처드 랭엄은 '불로 요리하기'가 만들어낸 변화를 통해 '불'과 '요리'의 역할을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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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mikeyarmish  


 “약 2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인류라고 부를 수 없는 선행 인류의 시대가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는 하나의 의문이 주어진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리처드 랭엄, 『요리 본능』 中


 리처드 랭엄은 인류학자로서, 인류의 조상 호모속(屬)을 탄생시킨 계기를 탐구해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하빌리스로, 하빌리스에서 직립원인으로의 진화를 설명하는데 그동안의 '육식 가설'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논의들은 그 '계기'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다. 

 인류학자 에드워트 타일러에 따르면 모든 인간 사회는 화식(火食)을 한다. "불을 제어하고 화식을 하는 것"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다. 많은 실험들이 증명하듯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생식(生食)'만으론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얻을 수 없다. 인간에게 '필요한 식단'이 생식이 아니란 점은 큰 시사점을 남긴다. 불은 체온을 유지해주거나, 빛도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에게 불이 주었던 가장 큰 이점은 음식을 익히는 데 있었으며, 이로써 각 개체가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늘려주었다. 

 특히 저자는 익혀 먹음으로써 얻게 된 '추가 에너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익히면 음식은 부드러워지고, 더 빠르고 완전하게 소화된다. 소화시키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절약된다. 이렇게 추가된 에너지는 그 개체를 "생물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 놓았고, 생존율과 번식률을 증가시켰을 것이다. 이들의 신체는 익힌 음식에 생물학적으로 적응했으며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작용, 생활사, 심리,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뒤따랐다. 

 불의 사용과 익힌 음식은 곧 인류의 생활을 재편성했다. 리처드 랭엄은 불에 익힌 음식들이 날것과 어떻게 다른가에서부터 시작해 그것이 인류의 진화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6장에서는 새로운 식습관이 인류 조상들의 사회적 행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다룬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특별한 유대관계를 만들낸 것도, 여성이 "남성의 권위에 매우 취약하게 만든 것" 또한 요리라는 가설은 매우 흥미롭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불의 사용과 익힌 음식의 등장"으로 간추려질 수 있다. 1998년 요리 역사가 마이클 시먼스는 "’불로 요리하기’는 잃어버렸던 고리다.… 나는 우리 인간성의 책임을 요리사에게 지운다”고 말했다.  리처드 랭엄의 책 『요리 본능』이 특별한 점도 여기에 있다. 허기를 채우거나 미식으로서의 요리뿐만이 아닌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요리'라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끔 해주는 것이다.


[이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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