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품과 상품, 그 경계에 서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1.22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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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미술은 원나라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러 과거의 문인화를 계승하는 한편, 개성적인 회화도 등장하였다. 명대에 이르기 까지는 정확하고 장식적인 요소로 표현하는 그림과 개성적이면서 주관적인 그림의 두 가지의 회화 흐름이 존재하였다. 청대에 와 고전 연구와 고고학을 중시하는 고증학이 널리 퍼지면서 문화유산을 종합하여 분석하려는 태도가 생겨났다. 또한 서양 문화가 활발하게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중국회화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일시점 투시원근법이 사용되는 등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였다. 물론 파도처럼 들어오는 외국 문물 속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했던 개성주의자들이 있었으며 서양그림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소중한 전통을 보존해야한다는 사명감에 그림을 그리던 문인화가들이 과거의 회화를 계승해나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회화는 본격적인 세속화의 과정을 맞이하였다. 대표적으로 양주팔괴와 상해화파(해파)가 있다. 특히 19세기 중엽 아편전쟁에 의해 대외가 개방되면서 외국의 자본이 물밀듯이 유입되었고 청나라는 점차 더 거대한 국제 무역과 상업의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이러한 상업 자본의 움직임에 맞춰 1820년경부터 상해로 발걸음을 옮긴 화가들은 ‘상해화파’라는 새로운 유파를 형성하였다. 이들이 양주팔괴와 차이가 있다면, 양주팔괴는 서로 예술적인 감성을 공유하는 목적으로 모였지만 상해화파는 오로지 상업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에 따른 고유한 기능이나 역할의 조직을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서양 자본의 유입으로 생겨난 이 유파는 상품화된 회화를 그려나갔다.

  자본의 유입으로부터 생겨난 예술의 상품화는 오늘날에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 ‘예술품’과 ‘상품’은 현대에 와 그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예술품과 상품의 경계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전은 나에게 생각의 연장선을 그어주었다. 조선후기에서 근대로 가는 과정을 각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기획해 ‘근대는 과거와 현대의 징검다리’라는 점을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전시였다. 수많은 한국의 회화 중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 앞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경제가 발전하고 시장이 형성됨에 따라 다양한 계층이 예술을 향유하게 되었고 미술이 지향하는 내용과 형식이 변화하였다. 청나라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광통교 서화시장에는 외국인을 위한 미술품들이 많이 등장하였고 이번 전시에는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회화 중 일부가 전시되었다. 김준근 <기산풍속도첩>은 그 일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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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기상풍속도첩> 


  개항장에서 외국 상인들에게 팔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진 회화들은 여태 우리나라 미술에서 저평가되어왔다. 팔려나갔기 때문에 외국 박물관에 가면 대부분 하나씩 꼭 소장하고 있는 한국회화이지만, 정작 간송 등 우리나라의 미술수집가들은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소장하지 않은 작품이다. 나는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전시에서 당시에 상품으로 치부되었던 작품들이 현대에 와서 예술품의 이름을 달고 전시가 되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예술이 돈의 가치로만 평가되어가는 자본의 시대에서, 작품을 보면 “이 그림은 얼마죠?”라는 말이 우선 오가는 미술시장이 성행하는 시대에서 상품과 예술품은 어느 정도 분리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다.

  예술마저 자본에 맡기는 미국에서 등장한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예술을 상품화시킨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예술 작품을 상품처럼 찍어냈다. “돈이 곧 예술이다”라고 말할 만큼 돈에 대한 욕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예술을 상품화하는데 앞장섰지만 워홀의 작품들은 지금은 최고의 현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앤디 워홀이 20세기의 예술가인 것을 고려하면, 21세기인 지금 예술품과 상품의 경계는 거의 허물어졌다고 봐야할까.

  한 작품을 놓고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는 지금 당장 내려야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준근의 작품처럼 당시에는 저평가되었다가 수십 년이 흐른 오늘에서야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전시장 안에 놓이게 되었듯이, 반대로 현재 예술품이라고 평가받는 것들이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이 흐른 뒤에 그저 상품이라고 치부될지도 모른다. 20세기에 등장한 추상 표현주의, 팝아트, 옵아트, 행위예술, 포스트 모더니즘 등 예술의 사조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변화해왔다. 상품 또한 예술품으로 인정되어가는 모습은 21세기 사조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자본을 뒤로 제쳐두고 사회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나라 말의 상업적 회화도 훌륭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으며 어쩌면 더 나아가 예술품으로 전시될지도, 이미 전시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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