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온전히 나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인의 책상 [문학]

글 입력 2015.01.2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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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젊은 시인들의 몽상법, 『시인의 책상』 소개 

10명의 시인들의 산문 글이 담겨있는 『시인의 책상』에는 시인들 각각의 삶의 고유한 내력이 담겨 있다. 김경주, 김승일, 박성준, 박진성, 서효인, 오은, 유희경, 이이체, 최정진, 황인찬 10명의 젊은 시인이 말하는 각각의 책상에 관한 이야기가 신작 시 한 편과 함께 책속에 담겨 있다. 각각의 시인의 책상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마음 편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된다. 편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책장을 넘기지만,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에 콕콕 박히는 말들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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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책상 중에서, 김경주 시인의 책상의 모습

한 시인의 '책상'이란 사물 하나와 관련된 부분적인 이야기를 읽었을 뿐인데 이 사람의 삶의 깊은 부분까지 들여다본 기분이 드는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기도 했고, 한 시인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삶의 일부분만을 보여주는 산문만으로도 여러 감정에 휩싸이게 하는 시인들의 감각이 돋보이는 문장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시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시인이 보내온 시간에 '나'의 모습을 투영해보기도 한다. 그가 유년 시절 보내왔던 시간을 머릿 속에 떠올리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들, 감각들을 함께 떠올려보는 것이다.

처음에 시작하는 오은 시인의 상(床)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오은 시인처럼 책상보다는 낮은 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게 익숙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레스토랑에 딸린 방에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는 오은 시인처럼 어릴 적부터 상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게 익숙했던 것은 아니지만, 방구조를 바꾸고난 뒤 책상을 버리고 앉은뱅이 상에서 무언가를 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방학 때는 상에서 학교 방학숙제를 하고 밥 먹을 시간이 되면 금새 상은 밥상으로써의 역할을 했다는 됐다는 오은 시인의 특별한 '상'은 이제는 그에게 상(像)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나를 보고 상 앞에 앉아 글을 쓰면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 점이 바로 상의 매력이라고 맞받아친다. 상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다리가 아프면 잠시 뒤로 드러누울 수 있다는 점이, 배가 고프면 음악을 틀어놓고 후루룩 라면을 먹어도 된다는 점이, 책상이 아닌 상 앞에서는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은 안심이 든다는 점이, 바로 내가 상을 사랑하는 이유다. 

-『시인의 책상』 중에서 

2. 책상에서의 시간은 곧 '나의 시간'

그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는 '상'에 대한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떠올린다. 나는 집에서도 책상 대신 상을 썼지만 대학 동기와 자취방을 함께 쓸 때도 꼭 밥상으로 쓰던 작은 상에 책을 펼치고 그 앞에 앉아서 과제를 하고 글을 쓰고는 했다. 상이 너무 작아서 노트북 하나만 올려놔도 꽉 차버리는 상 주위에 과제와 관련된 책들을 이리저리 흩어놓고 상 옆에 엎드려 책을 읽기도 했다. 꼭 집중해서 글을 쓰지 않았더라도 시간을 보내려고 노트북에 저장해둔 영화를 틀기도 하고 이런 저런 다른 생각들을 하면서 보내왔던 시간도 있었다. 그것들은 다 '나의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상 앞에서의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당장 끝내야만 하는 무언가에 집중했던 시간보다 어디론가 달아나버린 시간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공상들이 오로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이었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은 시인을 비롯해서 다른 시인들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책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책상은 당장 끝내야만 하는 숙제를 끝내야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외부의 것들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였다. '책상은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 유일한 장소다'라고 써있는 책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의 시간을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책상에 관한 시인의 이야기를 읽는 일이 나만의 장소가 있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안심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짧은 일부분만을 읽는 것이라도 좋으니, 책상에서 가질 수 있었던 '나만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짧은 순간이라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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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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