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카와에서의 첫날, 내가 느낀 아사히카와는 오타루의 아기자기한 소도시 풍경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조용하면서도 도시만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내가 꿈꾸던 복잡하지 않은 도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둘째 날 아침, 나는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7월의 비에이는 라벤더와 다양한 여름꽃이 만개하는 계절로, 팜 도미타와 함께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힌다. 나 역시 라벤더가 가득한 여름 풍경을 직접 보고 싶어 비에이를 찾았다.
비에이를 여행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국 관광 투어 패키지를 이용하거나, 삿포로에서 당일치기 투어를 신청할 수도 있고, 렌터카를 이용하거나 비에이현지 투어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었다. 나는 자유여행을 선택했기 때문에 약 3시간 동안 진행되는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코스에는 청의 호수, 흰수염 폭포, 사계의 언덕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이드는 홋카이도의 많은 적설량과 이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농작물, 그리고 인근 활화산의 활동 징후 등에 대해 흥미롭게 설명해 주었다.
흰수염 폭포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지만, 폭포를 관찰할 수 있는 다리와 폭포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 아쉬움이 남았다.
사계의 언덕 역시 꽃이 아직 완전히 만개하지 않은 시기라 기대했던 풍경과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청의 호수의 맑고 푸른 물빛과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은 그 아쉬움을 모두 잊게 할만큼 아름다웠고, 이 풍경만으로도 투어에 참여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번 여행은 먹을 복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가고 싶었던 맛집마다 휴무일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다른 식당에서는 원하는 메뉴를 주문할 수 없어, 어쩔 수없이 주문 가능한 다른 음식을 먹고 나와야 했다.
식사를 마친 뒤, 그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팜 도미타로 향했다. 오후 시간대였던 데다 단체 관광객들의 일정과도 겹쳐 팜 도미타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넓게 펼쳐진 라벤더 밭을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훨씬 지체되었고, 아사히카와로 돌아가는 마지막 노롯코 열차를 타기 위해 급히 기차역으로 향해야 했다.
아사히카와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홋카이도의 대표 음식인 징기스칸 양고기를 먹으러 갔다.
평소에는 특유의 향 때문에 양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편이라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었지만, 막상 먹어보니 일부 부위를 제외하고는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아 마치 소고기를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사히카와에서의 마지막 날 일정은 아사히야마 동물원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일반적인 동물원과 달리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행동 전시'로 유명하다.
독특한 동물원 구조와 처음 보는 동물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관람했다.
처음에는 행동 전시가 동물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생활 공간이 세심하게 조성되어 있었고, 동물들의 습성과 생태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특히 사육사들이 먹이를 주며 동물들의 먹이와 습성 등을 설명해 주는 '모구모구 타임'은 동물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전과 이른 오후까지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둘러본 뒤, 곧바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삿포로로 향했다. 저녁 무렵 삿포로에 도착한 탓에 마트에서 간단히 도시락을 사 저녁을 해결했다.
삿포로에서의 둘째 날 아침, 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유명한 '부처의 언덕'을 찾아갔다. 외곽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관광객은 물론 서양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었다.
약 1시간에 한 대씩 운행하는 마을버스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만원이었다.
어렵게 도착한 부처의 언덕에는 거대한 부처상과 함께 스톤헨지와 모아이 석상을 본뜬 조형물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뜬금없는 조합처럼 느껴졌지만,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두 시간을 머물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낸 뒤, 더운 날씨때문에 삿포로 TV타워를 둘러보고 시내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쇼핑을 마친 후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던 길에 삿포로의 상징인 니카상 전광판을 우연히 마주했다.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풍경을 실제로 보니 비로소 '정말 삿포로에 와 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그렇게 삿포로에서의 둘째 날도 마무리되고, 어느덧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마지막 날에는 본격적으로 삿포로 시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먼저 니조시장에서 카이센동과 유바리 멜론을 맛보았다. 원래는 식사 후 삿포로의 명물인 산도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삿포로 시계탑과 삿포로 팩토리, 삿포로 시청 등을 둘러보는 데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산도를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삿포로가 산도로도 유명한 만큼 맛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 덕분에 더 다양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었고 색다른 추억도 만들 수 있었다.
삿포로 시계탑과 삿포로 팩토리, 삿포로 시청을 둘러본 뒤 마지막 식사로 버터콘 미소라멘을 먹으며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마무리했다.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음악을 통해 늘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홋카이도는 기대했던 것처럼 잔잔하면서도 활기가 넘쳤고,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비에이를 방문했을 때 가이드는 이곳을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도시"라고 소개했다. 그 말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찾아와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싶어졌다.
여름에는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어우러진 생기 넘치는 풍경을,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을, 겨울에는 차가운 설경 속 따뜻한 분위기를, 그리고 봄에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산뜻한 풍경을 떠올리며 다음 여행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