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친절함에서 오는 긴장감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개봉하기 전부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듯이 <추격자>, <곡성>, <황해> 등 영화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세계관을 그려내는 것에서 이미 입증된 감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호프>는 이전의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결을 드러내는 듯하다. SF 영화의 결을 따랐고, 외계 생명체가 등장한다. 나홍진 감독이 그리는 SF 영화와 그 속의 외계 생명체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관심이 주목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나홍진 감독이라는 타이틀만 들고 간 채로 영화를 본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화는 미스터리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사람의 냄새는 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 아주 이상한 동네. 그 동네에서 황소가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범석(황정민)는 비참하게 파헤쳐진 죽은 황소를 발견한다.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동네에서는 끊임없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발견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보여줄 외계 생명체와의 싸움 때문이었을까? 영화의 초반부터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외계 생명체의 외형에 대해서도 초반에서는 크게 보여주지 않는다. 성기의 공격에 화가 난 시민의 입으로 전해 듣거나, 그림자의 형태로 창밖에서 바라보거나 하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높인다.
그 끝에는 처음 보는 모습의 외계 생명체들과 인간들이 싸우는 광경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침략받은 지구인 VS 자식을 뺏긴 외계 생명체들의 각자 나름의 이기적인 사투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드문드문 의문을 품게 했던 장면들도 있었다. 범석이 외계인의 눈물과 마주하며 멍한 표정을 짓는 장면, 성기(조인성)가 외계인과 마주했을 때 외계인이 그를 빤히 쳐다보는 장면에서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쌓여있지만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그 해석을 돌리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졌다. 어미의 눈을 본 듯한 감정이었을까? 그리고 소통의 막힘에서 마주한 절망일까?
이어서, 이 영화에는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한 경로가 표현되지도 않는다. 산 속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우주선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해석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부족한 개연성이 영화를 보는 시간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불친절함에서 오는 긴장감은 2시간 36분 동안 지속되며 등장인물들의 행위에 빨려들고 만다. 한국적인 배경과 긴장감 있는 카메라 무빙 방식, 그리고 외계 생명체가 합쳐진 나홍진 감독의 시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 캐릭터의 설정과 이질감
이제 <호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가장 먼저 정호연 배우가 맡은 성애. 누군가는 성애의 대사와 연기들이 어색하다고 할 것 같다. 외계인(괴물)에 대해 1차적으로, 마치 어린 아이가 뱉을 법한 말들을 우수수 쏟아내는 것이 성애 캐릭터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여성 캐릭터의 등장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남성 캐릭터들의 개입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그것도 성기와 범석이 가지고 있는 총보다 센 총으로 외계인들을 쏘아대거나 차로 그들을 뭉개버리는 행위는 성애를 ‘여성’에 강조되는 것이 아닌 ‘인물’에 강조되도록 만든다.
<호프>의 각종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황정민이 정호연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봤다. 정호연이 총을 들 때 버거운 느낌이 없고, 여전사 같지 않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에 대해 공감한다. 여전사가 아닌 외계인 – 지구인으로 치환될 수 있는 관계에 성애는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
다음으로 등장인물들의 욕설 사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욕을 처음 배운 듯한 사람들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마냥 화가 나고 설움이 받치는 이 상황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아! 라는 표현이 때로는 실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환희가 되는 것처럼. 비속어를 쓴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감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 HOPE, 희망을 향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HOPE인지 되돌아본다. 희망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외계인에게 지구를 침략받고 생을 위해 애쓰는 인간의 것일까? 아니면 황후의 자식을 위해 심장까지 내놓고 인간과 싸우는 외계인의 것일까? 이 양면적인 질문 앞에서 나는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나 또한 외계인과 마주한 적 없는 일반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장르적 시도만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화제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시선은 늘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