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어린 나에게 더도 덜도 말고 17살 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신 소설이었다. 그 말은 들은 건 12살 정도였고, 장소는 우리 동네의 작은 글쓰기 교실.
선생님은 내 손에 글 쓰는 취미와 글에 대한 동경을 쥐여준 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이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그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는데, 다시는 못 들을 수업이라는 걸 느꼈는지 알록달록한 공책에 필기도 정성스럽게 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심오한 이야기를 마음대로 떠들다가 수업 중간에 종이접기를 하던 아이에게 종이접기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그 아이가 준 종이를 몇 달 넘게 교실의 큰 칠판 한편에 붙여 놓기도 했다. 선생님에게는 아이들의 그림, 말소리, 삐뚤빼뚤한 손글씨들까지 모든 흔적을 남김없이 존중하려는 태도가 깊이 머물러 있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가감 없이 좋은 감정을 드러내고 호탕하게 깔깔대면서 수업을 진행하다가도 시를 낭송할 때는 몰입이 진했다.
글쓰기 교실은 집에서 차를 타고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이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갈 때쯤에 엄마가 막 일자리를 얻은 참이라 그때부터 나 혼자 초록색 버스를 타고 매주 목요일마다 부지런히 걷고 버스를 타고 또 걸어서 수업에 갔다. 어느 날은 엄마가 퇴근하는 길에 날 데리러 교실 건물 쪽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퇴근하던 선생님은 반갑게 우리 엄마와 인사하며 내가 통찰력이 있고 잘 클 아이라고, 뭐든 이겨낼 힘이 있다고 했다.
책을 추천받았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의 뭉클함으로 여즉 부푼 마음으로 항상 교실 맨 앞자리의 좁은 구석에서 책을 읽던 내가 <장미의 이름>을 추천받은 게 그때였다. 꼭 17살 때 그 책을 읽으렴. 혹은 다른 책을 추천하면서도 지금은 너무 이르니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시야를 넓히고 계속해서 책을 읽으라고 하셨다. 그 교실을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녔고, 졸업했다. 또 시간이 흘러 지금의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열일곱이 다 지나기 전에 불현듯 그 소설이 떠올랐더랬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집에 그 책이 있었다. 심지어는 젊은 날, 엄마 아빠가 21살에 연애를 시작하고 아빠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준 선물이 바로 그 소설이었다고.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30년을 낡고 낡아 누렇게 바랜 책을 드디어 꺼내고 호기롭게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과의 희미한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 반, 엄마 아빠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또 반이었는데 의지와 행동이 꼭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진 않더라는 게 첫 감상이었다. 일단 어려웠고, 옛날 책이라 글씨가 작았고, 책을 길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올해의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이렇다 할 목표를 세우지 못하던 와중에 또 묵혀둔 이 책이 생각나 다시 꺼내보았다. 직장인과 대학생으로서의 삶을 동시에 유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를 가꾸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참이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의 포부를 밝혀야 올해 안에는 이 책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으면 은사님께 꼭 찾아가야지. 그리고 결국엔 다 읽었다고 선생님께 자랑도 할 거다.
선생님, 저 다 읽었어요. 또 숙제 내주세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