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경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전임지휘자

글 입력 2014.03.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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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거나 혹은 열정적이거나
오직 악보를 통해 행복을 퍼 나르는
불혹의 마에스트라

여자경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전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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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아직 여성들에겐 ‘유리천장(glass ceilling)’으로 인식돼 온 오케스트라 지휘자. 국내 최초의 오케스트라 여성 지휘자로 숙명여대 김경희(56) 교수를 꼽을 만큼 남성 지휘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층이 얇은 게 여성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다. 비록 국내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남성 전유물처럼 여겨져 온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영역에 최근 들어 여성의 파워가 예사롭지 않다. 바로 그 중심에 지휘자 여자경 교수가 있다.김경희 교수의 뒤를 잇는 세대로 오케스트라의 여성 지휘자를 꼽는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프라임필하모닉의 여자경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그녀가, 최근 국내 최초로 국공립오케스트라의 상임으로 임명된 30대의 성시연 경기필 예술단장과, 그리고 50대의 김경희교수와 사이에 중심세대라는 사실을 차치하고, 그 누구보다 가장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활동하는 지휘자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不惑)을 넘긴 지휘자 여자경. 그녀는 2008년 상트 페테스부르크에서 개최된 제5회 프로코피에프 지휘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로 3위에 입상하면서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양대에서 작곡을, 동 대학원에서 박은성을 사사하며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 여자경은 다소 늦은 나이에 오스트리아로 유학하여 비인국립음대에서 거장 레오폴트 하거(Leopold HAGER)를 사사하고, 2005년 비인 뮤직페어라인 황금홀에서 비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최고점수를 얻어 Magister(석사학위에 해당되는 자격)을 획득하였다.귀국 후 KBS, 서울시향, 대구시향, 코리안심포니 등 국내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연간 70~80회의 연주회를 소화하며 불타는 에너지로 프라임필하모닉과 단국대 강의실을 오가는 열정의 마에스트라 여자경 교수를 본지 이영진 편집위원이 최근 성남 분당의 소담한 이탈리안 비스트로에서 만나 대담하였다[편집자 주]




이영진   여자경 지휘자께서 평소 생각하는 지휘자의 리더십이란 어떤 것이고, 연습 도중 단원들과 음악적 이견이 생기면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여자경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 ‘리더십’ 은 우리에게 아주 흔한 단어이지요. 그러나 얼핏 생각했을 때 목소리 크고 주장강한 사람이 카리스마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직업이 지휘자인 본인이 생각했을 때 카리스마란 주위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 동시에 좋은 영향력을 주위에 끼칠 수 있는 힘이며 그 힘을 가지고 다수를 책임 질 수 있는 당당함이 올바른 리더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휘자는 어디서나 1대 100입니다. 오케스트라이건 합창단이건 혹은 학교수업에서의 학생들이건 그들과 마주할 때 늘 혼자입니다. 높은 포디움에 서 있다는 엉뚱한 표면적인 힘의 논리로 내 앞의 다수를 이끌고 가려는 리더십은 이젠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죠.
어느 인터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프라임필 단원들과 또는 다른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할 때도 리더십의 기본 원칙은 악보에 두고 있어요. 사실 그 분들이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앉아 있지만 각자의 파트에서 최고 의 배움을 터득하신 선생님들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음악적 견해가 서로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과 악보를 통로에 두고 모든 대화를 올바르게 풀어간다면 통하지 못할 것이 없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 자신이 악보에 대해 치열한 분석과 연구를 할 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음악적 갈등이 간혹 생긴다 해도 서로 함께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데 어려움이 덜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외 없이 1백 프로 모든 단원들과의 음악적 관계가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요.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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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여선생님은 그동안 해외 유수의 교향악단을 많이 지휘하셨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오케스트라는 어느 악단이었고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리고 경험하신 해외 오케스트라와 국내 오케스트라의 격차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정리하신다면?

여자경   저는 지휘자 코스를 밟기 위해 국내 대학원에서 지휘를 입문한 후 그 연장선상으로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유학 후 국제콩쿠르를 경험하면서 오스트리아,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어요. 귀국 후에는 연간 70~80 회 정도 공연을 지휘하고 있는데 그 많은 공연들이 각 연주회마다 거의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당시 청중들의 반응, 연주자들의 컨디션, 등 생각해보면 무엇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던 공연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 오케스트라와 국내 오케스트라의 다른 점을 표현되어지는 연주력 면에서 굳이 비교해보자면 제 생각에는 오히려 연주자들의 자세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자세라기보다는 모습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어요. 말하자면 음악을 대하는 매우 진지함, 강한 열정, 집중력, 살아있는 에너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무대 위의 연주자가 어떤 곡이든 매우 열심의 모습으로 그 곡을 연주해주었을 때 객석의 청중은 가사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나름대로의 가사를 만들 수 있고 이해하면서 음악적 감동을 받는 것 같습니다. 연주하는 모습이 연주의 상승효과를 낸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는 국내 악단과 외국 악단의 차이가 큰 거 같아요.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한국오케스트라에선 볼 수 없는 부분 일텐데, 유럽의 어느 오케스트라였어요. 연주할 악보가 박물관에서 가져 온 고문서처럼 너덜너덜하고, 잘못 손대면 다 해체돼 버릴 듯한 그런 악보를 가지고 연주하는 장면이라든가, 목관악기 리드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연주에 집중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적극적으로 연주에 임하는 그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의 사고의 차이, 정서의 차이, 이런 것이 분명히 연주에서도 작용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받아 온 교육환경의 차이가 아닌가도 생각되는데 지휘자로부터 어떻게 고쳐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획일적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들의 정서와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토론식 교육을 받고 자란 외국 사람들과의 연주 자세가 바로 그런 점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자유롭고 대담한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는 요즘 젊은 세대를 봤을 때, 무대 위에서 과감한 음악적 표현도, 연주모습도 바꾸어 볼 만한 가능성이 이제는 충분하다고 여기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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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얼마 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별세했습니다. 향년 81세였지요. 위대한 지휘자 한 분을 우리는 잃었습니다. 혹시 아바도를 포함하여 개인적 롤 모델로 삼고 싶은 마에스트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고, 스스로는 어떤 지휘자로 남기를 원하는지?

여자경    네,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도 존경하는 지휘자 가운데 한 분인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어요. 특별히 저는 아바도 이 분을 잊을 수 없는 게, 비인에서 공부할 때 아바도가 베를린 필과 함께 마지막 투어 연주 일정으로  뮤직페어라인홀에서 콘서트를 했어요. 정말 대단했던 것은 그 날 연주가 다 끝나고 앵콜곡을 몇 곡 연주하고 단원들도 다 퇴장했어요. 무대 위엔 아무도 없었는데 청중들이 놀랍게도 모두 기립해서 아바도를 외치며 준비한 장미꽃과 오랜 박수를 무대 위로 던져 보냈어요. 아바도는 다시 무대로 걸어 나와 청중들과 마주하며 답례를 보냈어요. 지휘자만의 커튼콜이었지요. 당시 위암으로 투병하던 아바도는 베를린 필과의 마지막 투어연주회를 비엔나에서 기념비적으로 이뤄내었습니다.
지휘를 공부하던 학생시절에는 롤 모델로 삼고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지휘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십중반에 접어들어 많은 연주를 하다보니 롤 모델을 세워놓기보다는 여러 지휘자들의 좋은 점들을 놓치지 않고 잘 기억하고자 한답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존경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 외에도 원초적인 음악세계가 부러운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제가 좋아하는 지휘자입니다. 많은 정확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지휘자, 연주자들에게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하는 지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세계음악시장이 서로 다양한 음악적 정보를 주고받음이 가능한터라 각자의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데 주위의 모든 음악인들의 한 가지 한 가지가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저는 누구와 경쟁적인 지휘자가 되고 싶다거나 또는 뭐랄까, 국내 최정상의 지휘자 이런 것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저의 음악을 통해 많은 분들이 함께 행복함을 나누는 그런 일을 추구합니다. 나름대로 큰 야욕보다는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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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국내 여성 지휘자의 활약이 최근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서울시향 부휘자였던 성시연씨가 지난 해 경기도립의 예술감독으로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했고, 첼리스트 장한나씨가 지휘자로 변신하여 당당히 해외 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계 전반에 많은 여성 연주자들이 활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여전히「금녀의 벽」이 현실인 듯합니다. 이에 대한 견해와 해법이 있다면?


여자경   사실,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비록 오케스트라 지휘자 뿐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 전반에 그런 분위기가 깔려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그런 점을 극복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솔직히 지휘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 ‘내   가 남자였다면 좀 더 잘 해봤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자기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남자들을 보면 화가 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모든 일은 ‘남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이기 때문에’가 아니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연약하고 섬세한 남자도 있는 반면 강하고 섬세하지 못한 여자도 있는 것입니다. 성(性)에 의해 그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사람 나름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답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는 직업은 당당하고 강한 임기응변으로 많은 이들과 본인의 음악적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담대함이 필요하기에 얼핏 남성상이 강하겠지만... 진짜 최고급 요리사나 디자이너들은 남성분들이 많다는 것에 가끔 놀랍니다.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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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지휘자로서 성취하고 싶은 음악목표는 무엇이고, 여선생님께서는 어떤 부분에 가장 최고의 가치를 두며 음악을 만들어 가는지?

여자경   음악목표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목표 지향적 음악보다는 가치 지향적 음악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경쟁적 목표를 두고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살벌하고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지 또한 얼마나 가치 없는 일인지를 언젠  가 깨달았거든요. 함께하는 이들이 나의 영향을 받아 행복을 느끼고, 나의 음악을 통해 그들이 즐거워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뒤에 있는 객석의 청중도 중요하지만 저는 제 앞에 마주한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더 소중해요. 내 앞의 연주자들이 악보의 틀에만 묶여 의미 없는 리듬과 음표를 뿜빠뿜빠 연주하지 않도록, 그들이 음악의 재미를 맛보는데 도움을 주는 지휘자이고 싶습니다. 언제든지 연주자들에게 꼭 필요한 지휘자로 남고 싶네요. 그게 저의 성취하고픈 음악목표입니다.




출처-음악저널
음악저널 로고.jpg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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