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처음 뮤지컬을 접하는 그대에게, 뮤지컬 '빨래'와 '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예술]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할 소극장 뮤지컬을 찾는다면
글 입력 2018.09.19 00: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공연은 공연 기간에 따라 크게 오픈런과 리미티드런으로 나뉜다. 사전적 정의로 오픈런은 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뜻하는데, 통상적으로 6개월 이상의 긴 기간을 시즌만 바꿔 긴 텀 없이 이어나가는 공연은 오픈런으로 쳐도 무방할 것이다. 리미티드런 공연은 보통 짧게는 며칠, 길게는 2~3달가량 공연하기 때문에, 작품을 못 보고 놓치거나 여러 번 보고 싶어도 제한이 있기 마련이다. 반면 오픈런 공연은 그리울 때 찾으면 언제든지 반겨주는 따스한 고향 집 같은 매력이 있다.

사실 대학로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되는 작품 중에는 실망스러운 공연도 꽤 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문화 애호가의 꿈을 꾸며 기회가 되면 닥치는 대로 공연을 보던 시절, "시간도 돈"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질 낮은 농담, 남는 것 없는 스토리, 개연성 없는 캐릭터가 난무하는 몇몇 공연은 내가 앞에서 계속 고함을 질러대는데도 졸 수 있는 능력자라는 사실만 깨닫게 해 주었다(열심히 연기한 배우들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나에게도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오픈런 공연에 대한 편견이 생겨버린 나는 공연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이후로도 오픈런 공연을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두 작품 '빨래'와 '사랑은 비를 타고'를 계기로 내 머릿속 오픈런 공연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다. 언제든지 찾아가도 좋을, 가끔 그리워지는, 처음 뮤지컬을 접하는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공연으로.



뮤지컬 '빨래'

뮤지컬 '빨래'는 한예종 졸업공연으로 시작해 2005년 정식 초연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이어나가고 있는 창작 뮤지컬이다. 2000년대 초 서울 변두리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루었으며, 교과서에 극본이 실리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대본으로 처음 접하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기에 한 번쯤 관람하고픈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한번 보고 나니 일 년에 한 두번씩 찾게 되는 작품이 되었다.


15313893740523.jpg


시놉시스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 지 5년 된 강원도 아가씨 '나영'. 작가는 못 돼도 책은 좀 볼 것 같아 제일서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기대와 다르게 책 진열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빨래를 널러 간 옥상에서 우연히 이웃집 몽골 청년 '솔롱고'를 만나게 된다. 어색한 첫인사 후 두 사람은 바람에 날려 넘어간 빨래로 인해 조금씩 가까워진다. 어느 날 나영은 동료 언니를 부당하게 해고하려는 서점 사장 '빵'의 횡포에 맞서나, 자신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상심에 빠져 술에 취한 나영은 집으로 가는 길에 솔롱고를 만나게 되고, 둘은 취객의 시비에 휘말리고 그 일을 계기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는데....

*

'빨래'에는 주인공 나영을 중심으로 나영이 세든 반지하의 주인 할머니, 같은 반지하에 세 들어 사는 희정엄마와 옆집에 사는 몽골 청년 솔롱고 등이 등장한다. 작가를 꿈꾸며 강원도 산골에서 홀로 상경해 대학을 다니다 중퇴한 나영은, 서울살이 5년 만에 6번째 이사를 하고 8번째 직장(아니다, 9번 짼가?)을 구하면서 자신과 닮은 듯 다르게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쌀쌀맞은 듯해 보이지만 속정이 깊은 집주인 할머니와 시끄럽지만 씩씩한 희정 엄마, 한국말이 어눌하지만 순박하고 성실한 솔롱고까지. 이들은 오래 살아도 낯설기만 한 서울에서 나영이 부당하고, 팍팍하고, 울고 싶은 일을 겪을 때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준다.


꾸미기_15슬플_땐_빨래를_해2.jpg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뮤지컬 '빨래'에는 우리 사회를 투영해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창작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이 십분 드러난다. 주인공 나영이 사는 반지하 방은 서울의 어려운 주거문제를 드러내고, 사장인 '빵'의 말 한마디에 쉽게 해고당하는 서점직원과 나영의 현실은 아직도 여전한 비정규직 문제를 잘 보여준다. 또한 불법노동자이기 때문에 누가 때려도 맞고 있을 수밖에 없고 돈을 받지 못해도 신고도 할 수 없는 솔롱고의 모습은 고통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비록 10여 년이 넘게 지났지만, 현실이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인지 2018년인 지금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다.

객석에 앉아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하고 노래하는 나영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일곱 번 넘어져도 꿋꿋이 여덟 번째 일어나기를 함께 응원하게 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공간이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부딪치고 깨지고,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면, 혹은 그러한 경험이 있다면, 이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이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했는데, 스스로 비교적 평탄한 서울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점점 더 많이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뮤지컬 '빨래'가 팍팍한 서울살이를 노래한 작품이라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 또한 1995년 초연부터 20년 넘는 긴 시간 공연된 작품으로, 7번째 시즌을 맞았다. 사실 작품 제목인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의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형제 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공연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빨래'가 서울이라는 커다란 사회 안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작지만 어쩌면 전부인 사회를 다시 쌓아가는 형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꾸미기_DimgoliWAAAxB1S.jpg


시놉시스

스물다섯 한창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동욱은 두 여동생과 막내 동현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음악 선생님이 된다. 동료 여교사와의 첫사랑도 잠시뿐. 맹목적인 사랑을 내어준 동생들은 그의 집착에서 멀어지고자 동욱을 외면하고 떠나고야 마는데, 마흔 번째 생일날 아무도 오지 않는 밤을 맞이하며 홀로 쓸쓸히 남겨진다. 아무도 올 일 없는 동욱의 집으로 들어서는 검은 그림자. 그는 동욱의 막내 동생인 동현이다. 집을 나간 후 7년 만에 나타난 동현이는 여전히 철이 없고, 동욱 또한 여전히 잔소리뿐이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한 서로의 모습 속에서 티격태격하기만 하는 형제. '결혼 축하해요!' 형제가 다투고 있는 집으로 웬 낯선 여자가 들이닥친다. 당황한 형제 앞에서 수많은 이벤트를 펼치며 결혼 축하 이벤트를 열어 주고 있는 낯선 여자는 미리. 하지만 일곱 번째 방문한 이 집도 잘못 찾아 왔다. 그리고 회사로부터 날아온 해고 통지. 첫 출근한 날 해고를 당해서 서럽게 울고 있는 미리에게 동현이 제안을 하나 한다. 결혼 축하 대신 오늘 생일인 형의 생일 축하 파티를 열어달라고...

*

마흔번째 생일을 맞은 동욱은 축하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고 쓸쓸한 생일을 맞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을 바쳐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지만, 동생들은 각자의 삶을 살기 바쁘다. 제대 후 집을 나가 7년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막내 동현이 갑작스레 방문하고, 반가운 마음도 잠시 또다시 옥신각신하던 형제 앞에 미리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어리바리하지만 사랑스러운 미리의 방문으로, 두 형제는 오래도록 묵어 온 서로에 대한 케케묵은 감정을 토해내고 관계를 재정립할 기회를 얻게 된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빗소리
하염없이 다가와 내 마음을 적시네
오늘 밤도 나만 홀로 남아
서 있네 흘러내린 빗물 따라
내 맘도 따라 흐르네 이제는
모두 지난 일처럼 떠올라 멀게만 느껴지네
언젠가는 내 곁을 속절없이
떠나갈 거야 마음마저도
허나 외롭지 않아 너희들이 내 맘속에 있기에
지금 이 순간 한없이 행복하네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는 부담이 되기도 하는 이 말은 한국의 부모-자식 관계나 형제 관계에서 흔히 발견되곤 한다. 자신의 삶을 희생해 손아랫사람의 성공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동생 동현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신과 누나들을 위해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한 형 동욱의 헌신을 피해 집을 나간다. 7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형이 동현은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서로를 너무 아끼는 바람에 엇나가는 두 형제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가족 간에 흔히 벌어지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온다.

7년만에 찾아온 동현이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철이 없는 동생에게 또 다시 잔소리만 늘어놓는 동욱. 형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지만 괜히 민망한 마음에 자신은 모르는 척 미리를 시켜 생일 축하 파티를 벌이는 동현. 이들 형제의 서투른 조우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혹은 형제간의 관계에서 표현에 서툴렀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동욱과 동현 형제가 서로를 아끼면서도 쑥쓰러워서, 미안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서 서로에게 모진 말만 내뱉는 모습은 그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쉽게 상처주고 필요한 표현 마저 쉽게 생략해버리곤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꾸미기_DknaxeOUwAEVf57.jpg
 

작품의 커다란 줄기가 두 형제가 보여주는 가족 간의 사랑이라면, 또 다른 줄기는 실패가 잦은 청춘에 대한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미리는 이벤트 회사 직원으로 갓 취직한 사회 초년생으로, 어리바리한 성격 탓에 출근 8시간 만에 해고당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동욱의 집에서마저 허탕을 친 미리는, 형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동현의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미리'의 존재는 동욱과 동현 형제의 이야기가 주는 무거움을 일부 해소하고 작품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이 무거워질 때 쯤 적절히 등장하는 웃음 포인트들은 비교적 감정의 폭을 넓게 사용하는 작품의 균형을 잡아주며 공연의 막바지까지 관객을 끌어간다.

뮤지컬 '빨래'와 '사랑은 비를 타고'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공연한 작품인 만큼 종종 올드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뮤지컬 '빨래'의 배경이 2000년대 초반 서울인 만큼 시대적으로 달라진 지점들이 엿보이고,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요 소재인 가족 간의 사랑은 비교적 최근에는 많이 다루지 않는 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오래도록 관객을 찾게 하는 특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밉지 않은 캐릭터와 공감을 건드리는 소재, 위로를 전하는 대사 등 두 작품이 가진 '착한' 지점들이 작품을 오래도록 롱런하게 만든 비결이 아닐까.




[박찬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