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손에 손잡고 선을 넘어서, 연극 '선을 넘는 자들'

글 입력 2018.02.1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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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북측 비무장 지대에 숨어든 김군.
그는 얼마나 더 가야 남한인지를 가늠하며
한겨울 매서운 추위와 싸우고 있다.

남측에서는 병장과 이병이 경계를 서고 있고
 이들은 귀순병사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귀순 벨이 울린다.

한 때 괜찮았던 삶에서 밀려
현재는 채무에 쫓기는 신세인 정씨는
내연녀에게 대출방법을 알아봐주길 부탁한다.

북에서 탈출한 송영수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한국사회에 적응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현실은 너무 어렵기만 하다.



고대 로마의 희곡작가 테렌티우스는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어떤 것도 나에게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인간적이라는 것, 이것은 곧 사회는 ‘나’가 아닌 ‘우리’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있으려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라는 하나 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종종 하나의 사회 속에서도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혹은 않으려는) 경우가 있다. 대개의 사람은 선이 있다고 믿으며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시선을 통해서 구분 짓고 다름을 강조하려 한다. 이때의 선은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두꺼운 장벽으로 서로를 나눈다.
 
선은 사회 속에서 하나의 잣대로 작용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싫어 틀림을 외치기 위해, 타인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선을 만들고 이리저리 그어나간다. 선은 색안경일 수도 있고 절대로 깨부술 수 없는 단단한 장벽일 수도 있다. 선은 별다른 원인에서 발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미움, 무지, 혹은 질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인하는 가장 원초적인 판단 오류로부터 서서히 피어난다. 이른바 약자라 불리는 이들은 선을 긋는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임의로 그어진 선으로부터 갖은 시선과 부조리를 마주하게 된다.

 
2017 선을 넘는 자들 쇼케이스 사진.jpg
 

연극 ‘선을 넘는 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회 속에 그어져 있는 임의의 선을 넘는 이야기다. 이때 선은 내가 그어놓은 선일 수도, 국가가 그어 놓은 선, 혹은 남이 그어놓은 선, 사회가 그어놓은 선 등 무수히 많은 선을 의미한다. 거미줄처럼 여러 갈래의 선이 사회라는 구조 위에 짜인다. 때때로 이러한 선들은 교차하거나 새로이 생겨나면서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유발하곤 한다. 가령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선의 탄생은 사회 속에서 새로운 부류의 탄생을 알리면서 이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동시에 나타난다.
 
‘선을 넘는 자들’은 사회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특별한 인물에 의해서 극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 그저 사회에 속해 있는 이들의 소소한 일탈로부터 비롯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서로 미움의 늪에 빠져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문화, 탈북자 등 사회의 일원으로 들어온 이들에 대해서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극은 사회가 그어놓은 선속에 갇혀있는 여러 부류 중에서 ‘탈북자’에 집중한다. 전쟁 혹은 통일이란 거대 담론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개인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이들을 바라본다.


2017 선을 넘는 자들 쇼케이스 사진2.jpg
 

극 중의 인물들이 선을 넘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북한 병사는 파란 청춘이 타오르지 못해서, 마냥 죽을 수는 없어서 남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무너진 신용 앞에서 더 이상의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소시민은 자신의 나라를 떠나려 한다. 용기 내어 선을 넘어 남으로 온 이들은 사회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 안정된 정착 생활을 하기 위해 발악한다. 저마다의 사연과 목적으로 넘은 선은 단순히 넘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삶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고, 그 안에서 계속되는 삶에 대한 의지의 연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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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하나의 경계에 불과하다. 선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선을 넘었다고 해서 완전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선을 넘어서 새로운 집단의 경계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온전히 그들과 함께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을 넘는 자들’은 선을 넘어서 새로이 들어온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그들을 바라보는 기존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자연스레 오가면서 서로의 문화차이를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넘어온 자와 떠나려는 자의 중첩은 객석에 앉아 극을 관람하는 관객에게까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해서 선을 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선을 긋고, 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시공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지고 서로를 경계하고 이용하고 있는 오늘날에 ‘선을 넘는 자들’은 이에 대한 위험성을 일깨우며 경계를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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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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