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 소심함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닙니다만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0.2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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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고백을 한 가지 하자면, 나는 명백히 내향적인 성격에 가까운 사람이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이 세상의 1/3을 채우고 있다는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에 일원으로 속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뭐 어떤 식으로 말하든 간에, 나는 그런 사람이다.

 흔히 사람들은 성격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내향적인 것과 외향적인 것. 그리고 이 두 유형을 표현할 때에는 반드시 어울리는 수식어 몇 가지가 각각 따라붙고는 한다. 외향적인 사람을 보면 흔히 ‘활발하다’, ‘시원하다’, ‘성격 좋다’, ‘발이 넓다’ 와 같은 표현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을 보면 흔히 ‘조용하다’, ‘생각이 깊다’, ‘소심하다’, ‘인간관계가 좁고 깊다’ 와 같은 표현들이 함께 따라붙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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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사실 한 가지를 더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수식어구가 꽤나 오랫동안 신경 쓰여 왔었다. 지금껏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의 이런 내향성은 그 자체로 장점이 되기 보다는 고쳐지거나 극복되어야 할 장애물로 여겨질 때가 더 많았고, 왠지 내향적인 사람에게 따라붙는 저런 표현들이 부정적으로 나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만 같았다. 내향적인 사람도 때로는 대범하게 판단을 내리는 순간이 있고, 낯가림의 시간이 지나고 친밀해지는 때가 오면 누구보다도 밝고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데 말이다. 포털 사이트에 ‘내성적인 성격’을 검색하면 나오는 연관 검색어가 ‘내성적인 성격 고치는 법’, ‘자신감 부족’, ‘열등감’, ‘외로움’ 등으로 나오는 걸로 봐서,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라면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을 꼭 한 번쯤은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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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맥락에서, 내향성을 가진 주인공에게 특별함이 부여되는 서사를 가진 이야기들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하게 느껴지곤 한다. 대표적으로 <스파이더 맨>의 피터 파커나 <호빗>의 빌보 같은 주인공들이 그렇다. 어딘가 자신감 없고 소심한 그들은 특별한 능력 또는 물건을 얻게 되면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변화를 겪게 된다. 이윽고 결말에 이르렀을 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어쩐지 외향적인 면에 더 가까워 보이고, 그것은 꽤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느낌으로 그려진다. 나로서는 분명 영화 자체의 서사가 매력 있고 흥미로웠는데도, 보고 나서 한참 후에 곱씹어 생각해 보면 ‘왜 내향성이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그리고 수잔 케인이나 데보라 잭 같은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내향적인 성향은 타고나는 것이 분명하며 결코 옳고 그름의 프레임으로 판단할 문제가 분명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중 문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내향적인 인물에게는 부정적인 프레임이 종종 덧씌워져 있는 것을 요즘에도 확인하곤 한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들을 보면서 많은 내향적인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보다는, 자신의 성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한 번 더 겪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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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내향적인 사람은 충분히 사랑스러운 장점을 많이 지녔고, 그것은 세상에 많은 도움이 될만한 요소들임이 분명하다. 내향성으로 인해 보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사려 깊고, 홀로 있으면서 차분히 에너지를 얻으며, 가깝고 친밀한 사람들과 매우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성격은 사실 장애물이 아니라 충분히 축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내향성을 더 잘 이해한 관점에서 창작된 이야기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만 한다. 반드시 주인공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타고난 내향성을 변화시키거나 극복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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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미생>의 장그래가 그렇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우직하며, 겉으로 감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에는 부족하지만 자신의 내부로 에너지를 표출하며 혼자서 탐구하는 것에 능한, 내향성이 전적으로 강한 인물이다. 그러나 장그래에게는 피터나 빌보처럼 특별한 무언가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매 순간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관계로 둘러싸인 견고한 벽일 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변함없이 조용하고 우직하게 최선을 다하고, 온전한 자신의 힘으로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인공 조제도 장그래와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진 내향적 캐릭터이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당찬 성격을 지닌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장애를 가진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조제의 모습에서 ‘내향적이다=자신감이 부족하다’는 흔한 통념은 결코 공식으로 성립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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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세상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외향적인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지극히 보통의 내향적 캐릭터들이 그 자체의 모습으로, 굳이 변화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이야기가 지금보다 더 많아진다면 많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성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점차 줄어들고, 세상이 외향성과 내향성의 멋진 조화를 이루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어떤 성격을 가졌던 간에, 우리 모두는 제각각 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매우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이니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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