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감각09. 누구에겐 좋은 사람

글 입력 2017.09.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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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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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이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후배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간 쌓였던 사연들을 풀면서 별별 얘기에 웃고 진지해지고 서로를 걱정하며 떠드는 중이었는데, 불쑥 후배가 내 눈을 깊게 마주치면서 진심이라는 듯 말을 뱉는다. “언니는 정~말 생각이 깊은 사람이구나?” 예전 같았으면 담임선생님에게 특급 칭찬을 받은 꼬맹이처럼 하루 종일 그 말을 곱씹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이 깊다, 딱 그 정도의 의미에서 멈추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마음껏 문장을 굴리며 ‘그래, 난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야’ 조용히 흥분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응, 그걸 발견해주다니. 맞아, 나 진짜 생각 깊어. 그래서 내 생각에 내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해. 의미의 의미의 의미까지 생각한다니까? 바보 같지.” 
  
이제 이게 내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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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 대해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내린 판단을 무슨 대단히 큰 사명이고 지켜야 할 보물인 것처럼 구는 태도에 대해서, 그 결론이 항상 스스로가 ‘좋은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에 이르고 마는 슬픈 습관에 대해서, 나는 포기했다. 어떤 성향에 대한 외부의 염려나 평가들을 따라가지 않고 도리어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말해줘 버린다.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이제 그 말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아 다르게 수용하고 있는 쪽이지.
  누군가로부터 그럴듯한 평가를 받고, 누군가의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자. 오히려 책임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자에게 말이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더 고민 해보면, 단지 마냥 쑥스러워하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나를 향해 기꺼이 그런 마음을 먹어준 사람에게 신기함을 표하고 감사할 일이다.
  
  타인의 무수한 진심 어린 말들. 그 따뜻함 앞에서, 그 따뜻함이 좋아서, 말 속에 담긴 ‘진실’에 닿고 싶어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울었던가. 왜 나는 실망을 시키는 것이고, 왜 나는 더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왜 나는 항상 말 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인지. ‘진실인 것 같은 것’과 ‘실제 현실’ 사이의 낙차가 클수록 깊게 혼란스러웠다. 누구 앞에서든 한결같이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흔들림 없이 의연하고 믿음직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정해진 ‘인생 규격’이라도 있는 사람처럼(사이즈가 정해진 인생이라니 얼마나 폭력적인가) 아주 사소한 균열만 일어나도 불안하고 죄책감이 밀려왔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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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제 나는 주변의 기대심리를 모두 극복하고 완전히 쿨한 사람인가? 아니, 꼭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이유로 아등바등 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고 싶어서, 미워하는 사람을 잊고 싶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당황스러워하면서, 동경하는 사람을 닮고 싶어서. 여전히 상처 받고, 여전히 혼돈을 겪고, 여전히 불안감이 있다. 다만, 이제 내 스스로에게 원하는 것은 그저 ‘누구에겐 좋은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모두를 제대로 만나서 완전히 교감할 수 없는 이상, 나는 몇몇의 사람에게만은 충실하자고 다짐한다. 과장되게 반응하거나 지나치게 겸손 떨지 말고.
  
  나를 닮은 말을 쓰기로 한다. 말을 닮고 싶어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말하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만큼 말하기. 그러기 위해서는 내 그릇, 이리저리 일그러진 내 그릇의 테두리를 열심히 닦아야 한다. 어디에 깊은 홈이 패있고, 어느 쪽이 유달리 굴곡이 심하고, 어떤 구석이 튼튼한 부위인지 꼼꼼하게 눈여겨보면서 말이다. 마감이 완벽하고 빈틈없이 빛나는, 모두가 좋아할만한 트렌디한 디자인의 그릇은 나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빈티지 마켓에서나 볼 법한 것이 훨씬 나답다. 미세한 흠집과 시간의 때가 고스란히 자리를 잡아서 더 이상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없는 나. 그런 고집 센 그릇을 들고 요모조모 살펴보며 장바구니에 담을지 말지 고민하는 몫은 글쎄, 아무래도 그릇이 혼자 골똘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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