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렸을 적 나의 슬픔을 달래주었던 호프(HOPE) [문학]

예술은 나를 다독이고는 한다
글 입력 2017.09.22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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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가 간만에 본가에 내려갔다.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이 먼지가 뽀얗게 가라앉은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책이 내 시선을 끌었고 나는 옛날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책이었지만 앞으로 누군가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이 책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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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호프, 그레첸 올슨 >

호프는 평범한 15살 소녀이고 엄마와 오빠 이렇게 셋이 함께 살고 있다. 엄마로부터 지속적으로 비난을 받고 자라왔으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고 스스로를 바보라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호프의 밝았던 성격은 점점 어두워졌다.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나쁜 행동은
나쁜 마음씨처럼
엄마에게서 딸로, 손자 손녀에게로
세대를 통해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도 그 사슬을 만드는 하나의 고리가 될까?
그런 말들이 얼마나 상처를 주고,
빈정거림이 얼마나 큰 아픔을 주며,
쏘아보는 눈빛이 얼마나
목을 메게 하는지 잊지 않기를”

< 내 이름은 호프 > 中


< 내 이름은 호프 >를 처음 읽었을 때가 초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펑펑 울어버렸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호프가 나와 너무 비슷한 상황을 겪고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어서 ‘호프’라는 인물에게 완전히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쁜 행동은 나쁜 마음씨처럼 세대를 통해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무서웠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보여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사슬을 만드는 고리가 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프의 이름은 말 그대로 ‘희망(hope)’를 뜻한다. 호프에게는 구제 가게, 안네 프랑크, 상담 선생님이라는 희망이 찾아왔다. 호프는 자신이 받는 상처에 ‘언어 학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마음에 공감해주고 나와 같이 아파하고 함께 극복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호프는 내게 바로 그 ‘누군가’였고, 희망이 찾아오기를 기대하게 해주었다. 지금의 내 옆에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나름 오래 만나고 있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남자친구도 있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단호하게 말하고 결국 관계가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후회는 남지 않았던 일도 겪었다. 그래서 한동안 호프를 잊고 지낸 건지도 모르겠다.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며,
쾌적한 장식이 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그리고 비극은 희곡의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中 >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통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로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고, 예술에는 감정을 경험하고 표출하게 하는 건강한 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힘들고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 나를 위로해주던 음악들, 내게 용기를 주었던 문장들, 그리고 < 내 이름은 호프 >는 나도 잘 모르던 내 마음을 알게함으로써 정확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에 대한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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