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옥자 >의 영화음악 [음악]

글 입력 2017.07.25 22: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8486350_1286934208069268_3997232685207402378_n.png
 

넷플릭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칸 영화제를 비롯한 기존의 기성 극장들의 보이콧으로 화제가 되었고, 대형 극장들 대신 전국 각지의 단관 극장들과 다양성 영화 극장들을 통해 개봉되었다 품종 개량된 ‘슈퍼 돼지’인 옥자는 강원도의 농가에서 길러지고, 동거동락하는 ‘미자’와 우정을 넘어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된다. 옥자가 ‘슈퍼 돼지 콘테스트’를 통해 미국으로 끌려가 도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미자와 여러 등장인물들이 사투를 벌인다.

<옥자>의 스토리와 거대한 슈퍼돼지를 만들어낸 CG등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영화 음악이었다. 옥자의 영화음악은 천재 뮤지션으로 알려진 ‘정재일’이 담당하였다. 정재일은 어린 시절 ‘천재’로 불리며 데뷔하여 대중 음악계의 여러 뮤지션 뿐 아니라 국악계의 거장들과 함께 협업하였다. 그리고 연극이나 창극, 그리고 영화에 삽입되는 음악 작업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을 시도하였다. 원래 정재일이라는 뮤지션을 알고 있었고, 그의 음악 세계를 접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과 공연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옥자>에서도 그의 음악을 기대하며 영화를 관람하였다.


85198456.2.jpg
< 옥자 >의 음악감독 정재일 - 사진: 글러브 엔터테인먼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옥자>의 음악들은 이전에 관람했던 영화의 음악들과 다른 독특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먼저 가장 큰 특징으로, <옥자>에는 ‘메인 테마’가 따로 없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해리포터>에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테마음악이 여러 방식으로 변주되어 영화의 정체성을 강화해준다. 이러한 메인 테마 없이도, 아주 잔잔한 스트링부터 정신없이 몰아치는 브라스 음악까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들을 엮어내는 힘이 <옥자>의 음악에는 있었다.

<옥자>는 미국 – 강원도 – 서울 – 미국 – 다시 강원도 라는 장소의 변화에 따라서 장면의 색깔이 확실하게 변하는 스코어가 흥미로웠다. 오프닝 장면인 미란다 그룹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경쾌한 기타와 스트링 선율이 미란도가 말하는 새로운 밝은 미래를 대변한다. 강원도에서 옥자와 미자의 우정을 비롯해 평화로운 강원도는 기타 선율로 표현된다. 다른 악기 없이 잔잔한 기타 소리가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전혀 모르는 티없는 순수한 우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O1L-zYykF2LhvtvIuxXhSHw3_u4.png
루시 미란도의 프레젠테이션 장면


1495102755_okja.jpg
강원도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옥자와 미자


서울에서 미자는 사랑하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미란도 서울 건물에서부터 지하상가에서 추격전에서는 브라스 선율이 미자와 옥자, 동물 해방 전선(ALF)의 뒤를 따르며 긴박감을 조성한다. 이 때 흐르는 음악은 발칸반도의 집시음악인데, 정재일 음악감독이 직접 마케도니아로 날아가 찾은 밴드와 협업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처음 이국적인 악기 소리를 들었을 때는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하다고만 생각하였는데, 영화를 두번째 보면서 서울에서 이런 이국적인 소리가 어울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장면 자체가 주는 부조화가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누구보다 온순한(CG로 만들어진) ‘돼지 하마 괴물’이, 괴물의 덩치와는 대조되는 소녀와 함께, 누구보다 테러리스트 같지만 동물과 사람을 해지지 않는다는 외국인 조력자들(ALF)이, 친환경을 내세우면서 유전자 조작 식품을 만들어내고 난폭하게 소녀와 동물을 다루는 대기업에 맞서서 도주한다. 겉과 속이 다르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여 협업하고 싸우는 장면 자체가 우스꽝스럽고 웃기면서도 애잔하다. 여기에 이국적인 음악이 부조화의 한 축을 담당하며, 긴박감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의 흐름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장면과 음악의 부조화가 아이러니한 조화로움을 만들어낸다고 생각되었다.


OKJA-FF2-005.jpg
 

maxresdefault.jpg
서울에서의 추격전 장면


13.jpg
 옥자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한 마케도니아의 밴드


옥자와 미자는 뉴욕의 ‘슈퍼 돼지 페스티벌’에서 다시 만난다. 그곳에서 경찰과 미란도에 맞서는 ALF의 난투 속에서 눈물의 재회를 이룬 옥자와 미자의 모습에서는 강원도에서 흘렀던 기타 선율이 더 애잔한 분위기로 흐른다. 둘의 현재 상황과 미래는 밝지 않지만 재회의 애틋함과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처음과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미자가 옥자를 구출해내고 농장을 빠져나가면서 아기돼지를 구한다. 그때 맑은 여성들의 아카펠라가 흐르는데, 잠시 위기상황에서 텐션이 센 화음이 나왔다가 다시 풀어지는 그 흐름이 너무 아름다웠고, 웅장하고 비장함을 만들어내었다. 오늘의 승리가 진정한 승리가 아니고, 옥자와 미자의 상처는 남아있고, 수많은 돼지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여전히 계속 상처받는 비극을 보여주는 듯 하다.


IMG_0031.0.jpeg
'슈퍼 돼지 페스티벌'에서 미자와 루시 미란도


06.28_film_okja.jpg
다시 만난 옥자와 미자


마지막에 다시 강원도로 돌아온다. 이제 옥자와 아기돼지 미자는 다시 평화로운 삶을 이어간다. 이때 흐르는 곡은 피아노 선율인데, 마냥 밝지만은 않지만, 따듯하다. 지금의 평화로써 이전의 상처와 아픔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앞으로 그것들을 극복해 나가며 또 행복할 것이라는 미래를 보여준다. 이 피아노 선율은 엔딩 크레딧과 함께 편성 큰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이어진다. 더욱 따듯하고 더욱 깊은 감동으로 두시간 동안의 영화가 스쳐지나가는 것 같아, 처음 영화관에서 관람할 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앉아서 끝까지 스트링 선율을 감상했다.


maxresdefault (1).jpg
다시 강원도로 돌아온 옥자와 미자


삽입곡 < Annie's Song >도 인상적이었다. 스코어를 작곡하는 입장에서 감독이 선곡한 삽입곡이 돋보이는 것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있는데, 정재일 음악감독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스코어가 좋은 영화보다 선곡이 흥미로운 영화”를 개인적으로도 더 좋아한다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긴박하게 싸우고 도망가는 장면에서 흐르는 존 덴버의 ‘Annie’s Song’은 장면과 아이러니하지만, 이 추격전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주는 듯 하다. 도시 한복판 피가 난무한 장면에서 자연을 그리며 연인에 대한 사랑을 담은 가사 내용이 미자와 옥자의 마음을 대변하며 다시 평화로운 자연을 지향하는 영화의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John Denver - Annie's Song

You fill up my senses
당신은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줍니다.
Like a night in a forest
숲속에서 맞이하는 밤처럼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봄날의 포근한 들녁처럼
Like a walk in the rain
빗속을 거니는 산책처럼
Like a storm in the desert,
사막에서 불어는 폭풍우처럼
Like a sleepy blue ocean
고요히 잠든 파아란 바다처럼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당신은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지요,
그러니 내게로 와서 다시 한번 채워주세요.
Come let me love you,
내게로 와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줘요





[송세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