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끄 앙리 라띠그 사진전, 라 벨 프랑스(La Belle France)

글 입력 2017.07.13 00: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e3a72e7ea31a48668698259015aa3a4c-6107.jpg
 

평소 프랑스의 문화와 복식에 관심이 많았고, 또 1900년대 초반의 그 시대만의 분위기와 의복, 건물을 담은 영화나 사진들에 관심이 많아서,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알게 된 이 전시에 다녀오게 되었다. ‘자끄 앙리 라띠그(1894~1986)’는 프랑스의 사진작가로 프랑스와 미국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사진작가 겸 화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라띠그는 사진을 ‘마치 잼과 같은 일종의 저장장치’로 여기며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저장하는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주로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일상을 마치 일기처럼 담았으며, 당시 프랑스 상류층 여성들과 그들의 옷차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또 비행기를 이용해 하늘을 날아보려 시도하지만 실패한 순간들을 포착하였다. 그 순간 머쓱해하는 이들과 웃음을 참지 못하는 주변인물들이 사진에 담겼다.


1972-Jacques-Henri-Lartigue-Music-Post-92.jpg
< 자끄 앙리 라띠그 (Jaques Henri Lartique) >



흑백사진


이번 사진전에서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흑백으로 담겼다. 주로 컬러사진을 사용하는 나로서는, 흑백사진이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 사물의 질감이나 원근 표현이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고 뿌옇고 어둡게만 느껴져 감상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작품을 살펴보다보니, 흑백사진만이 주는 감성이 느껴졌다. 인물들이 즐기는 휴식이 한층 더 고요하고 아늑하게 보였다. 또한 나는 평소 사물이나 사진을 볼 때 색감이 주는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는 편이어서, 라띠그의 사진들에 색이 있었다면 색감의 표현과 차이에나 조화에 주로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런데 색이 사라지니 밝기의 차이에만 집중을 하게 되면서, 마치 사물의 이면을 바라본 느낌을 받았다. 사진에 따라서 작가가 초점을 맞춘 인물에 주의가 집중되는 효과를 확실히 느꼈고, 명암 단서에만 의존하여 실제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색이 정해져서 나타날 때보다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림을 볼 때 작가의 표현기법이나 텍스처, 원근 기법에 주의를 기울이듯, 흑백사진들을 마치 그림을 바라볼 때처럼 분석적으로 감상하게 되었다.

사진전의 마지막 부분의 몇몇 작품들은 컬러사진으로 전시되었는데, 수십장의 흑백사진을 보며 흑백의 화법에 젖어 있다가 컬러 사진을 보니 오히려 어색함이 느껴졌다. 색채가 조금은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며, 흑백을 보며 상상한 것들의 ‘정답’을 마주하자 명료함에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초기 컬러 사진만의 톤 다운 되면서도 담담한 느낌의 색감이 그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컬러사진을 감상할 때에는 것은 보기에 더 ‘쉽다’는 점에서 ‘관찰’보다는 ‘장식’에 가까운 수용을 하게 된다고 느껴졌다.


KakaoTalk_20170713_005543393.jpg

 

티 없이 맑음


라띠그의 작품들을 쭉 둘러보며 느낀 것을 짧게 ‘티 없이 맑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전시에 담긴 사진들의 주된 연대는 1900년대 초반으로, 프랑스와 유럽 전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가하고 무료한 일상이나, 취미를 즐기는 상류층 자제들, 허무맹랑하기도 한 도전을 즐기는 젊은이들 등을 그린 그의 사진들 속에서는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다. 이러한 그의 사진들이 <위대한 개츠비> 속에서 목적없이 향락을 쫓는 등장인물들처럼 철없는 행복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전쟁이라는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은 늘 있기 마련이며, 전쟁의 참혹함만을 포착하려는 작가들이 있다면, 같은 시대를 다른 각도로 조망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시대의식을 떠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시대의 주요한 정신과 다소 상충될지라도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때로는 그 간극이 시대의 가치를 더욱 의미 있게 부각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라띠그 전>을 통해 1900년대 초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전쟁의 참상이 아닌 다른, 즐거운 장면들을 엿볼 수 있어 새로웠다. 그리고 동시에,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이 즐거움 이면의 고통의 순간들과 그 순간을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서 의미 있었던 전시 관람이었다.


KakaoTalk_20170713_005649848.jpg
 

[송세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