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자렐리의 작품 속 '옵아트'의 정체성 [시각예술]

옵아트의 정체성을 함께 고민해보기
글 입력 2017.07.04 01:3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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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옵아트 : 기하학적 형태나 색채의 장력(張力)을 이용하여 시각적 착각을 다룬 추상미술을 일컫음





기하학적이고 조직적이며 구성적인 작품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입니다. 그의 작품은 회화작품 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모습과는 다른 조금 색다른 모습입니다. 평행선과 바둑판 무늬, 동심원 등과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의 화면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요 작품을 보고 관객들은 극과극의 의견들을 내놓곤 합니다.

옵아트의 한 작가는 “색과 형의 정적인 힘을 극적인 것으로 변화시켰고 동적인 심리반응을 통해 눈의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반면 다른 측면에서는 “예술의 본질인 사고의 세계와는 거의 관련이 없고 오로지 시각의 착각을 유도하여 수수께끼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극명한 의견이 갈리는 바자렐리의 작품 속에서 ‘옵 아트(Optical Art)'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크기변환_바자렐리.jpg
 
 빅토르 바자렐리 (1908.04.09~1997.03.15)

 
먼저 바자렐리의 작품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바자렐리의 대작 <직녀성>은 사각형을 형성하는 선을 구부러뜨려 마치 거대한 서양식 장기판과도 같은 꼴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의 구부러뜨림은 그림 전체와 관련하여 아주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각각의 사각형은 수축과 팽창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그 크기를 조절하여 가장 큰 사각형은 작은 사각형의 10배가 넘습니다. 또 다른 작품 <얼룩말>은 운동감과 깊이감을 전달합니다. 하얀 선과 검은 선들의 조합은 시각적 착시를 내포하고 있고 디자인적인 느낌과 패턴을 느낄 수 있습니다.


14.jpg
<직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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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위의 작품들을 보면 느낄 수 있듯이, 시각적인 효과가 정말 두드러진 작품입니다. 이전에 형상이 뚜렷이 드러나 있거나, 사실적임을 추구하는 작품과는 매우 다른 맥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파격적이고 논란을 일으키는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림을 평면위에 예속되지 않는 무한대의 공간으로 생각하였고, 형태의 안과 밖, 양각과 음각을 동일시하면서 반대형태와 보색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복합적인 공간의 중첩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옵아트는 사상이나 정서와 무관하게 원근법상의 착시나 색채끼리의 끌어당기는 힘을 통해 순수지각의 세계를 탐구합니다. 그리고 빛·색·형태를 통하여 3차원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영역 안에서 ‘옵아트’는 그 어떠한 영역보다 순수한 정체성을 띈다고 생각됩니다. 최소한의 형태와 최소한의 구성으로  시각의 장을 넓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1차원적인 소재로 3차원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의 본질적인 역할인 사고를 요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과연 사고를 요하는 작품만이 미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일까요? 정교성과 계산성을 바탕으로 순수한 시각의 장을 확대해 보면, 미술을 바라보는 원초적인 시각의 힘에 기여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옵아트 앞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잊고
놀이를 하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이에 몰두한 아이에게 시간은 정지된다.

아니, 그 다른 종류의 시간대에 살게 된다.
옵아트의 체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렇게 그의 작품 안에서 옵아트(Optical Art)의 정체성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는 것도 물론 미술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시각 그 자체만을 집중시킨 것도 미술 안에서 옵아트의 역할이었습니다.

빅토르 바자렐리의 작품 안에서 기존 미술과는 다른 옵아트를 느껴보았습니다. 가능한 방법으로 시각적 착각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비재현적이라는 사실은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많은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는 미술 역시 현 사회에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로지 눈길을 끄는 시각에 집중하여 빠져보는 미술 역시 필요합니다. 많은 논란과 비판 속 옵아트의 정체성은 흔들렸지만 기존 미술과는 또 다른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기존 체제와 다른 신선함을 안겨준 것이 옵아트 그 자체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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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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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ㅡㅡㅡ
    • <얼룩말>도 작품설명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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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자렐리의 생애 추가좀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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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4 13: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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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내용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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