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험'이 만들어낸 특별함이란 아름다움, 서울 오라토리오 정기연주회

글 입력 2017.06.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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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만들어낸 
특별함이란 아름다움
서울오라토리오 정기연주회


67회 정기연주회 이미지.jpg
 

음악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생전 처음, 아무런 목적이 없이 들은 음악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의 절대적 아름다움과 별개로, 어떠한 경험이나 ‘이야기’와 얽힌 음악이 보다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특별함 그 자체였다. 레퀴엠을 작곡하다가 작곡자 본인이 죽고 말았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전해질 뿐만 아니라, 영화 <아마데우스>나 뮤지컬 <살리에리> 등 내가 접한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많이 차용해 만들었다던 뮤지컬 <살리에리>에 엄청나게 빠져, 그 넘버를 수도 없이 듣고 다녔던 내게 특히 ‘라크리모사’는 수많은 경험들의 집합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내가 예술의 전당에서 제 67회 서울 오라토리오 정기연주회로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브루크너의 ‘테 데움’이 연주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걱정 되기도 했다. 레퀴엠이라고 할 지라도 내가 아는 노래는 '라크리모사'밖에 없을 텐데,  그것만을 바라보고 나머지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해서 더욱 아름다웠던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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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공연이 시작됐을 때도 나는 '라크리모사'가 언제 나오는지만 목을 빼고 기다렸을 뿐, 나머지 곡들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두번째 곡이 시작되자 ‘라크리모사’만을 기다리던 마음이 사라졌다. 눈앞에서 수십의 합창단이 노래하는 모습은, 그리고 전해지는 소리는 엄청난 임팩트를 자랑했다. 개인으로는 절대 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텐데. 합창단의 목소리는 하나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또 개별적인 목소리 같이 느껴졌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볼 때 한 덩어리로 느껴졌던 음악이 처음으로 각각 악기로 다가왔듯, 합창단을 처음으로 눈앞에서 마주하니 한 덩어리로 느껴졌던 합창도 수많은 목소리들과 성부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Dies irae'가 연주 됐을 때는 그 웅장함과, 속도에 놀랐다. 사실 가사가 있는 오라토리오라고 할 지라도, 그 내용이 종교적인 것이라서. 심지어 레퀴엠은 진혼 미사곡이란 확실한 목적성이 있어서인지 더더욱 그래서 가사가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이 노래만큼은 왜 이 음악에 ‘심판의 날’이란 가사가 붙었어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후 나온 ‘Rex tremendae'때도 마찬가지였다. 합창단이 입을 맞춰 ’Rex'가 몇 번이고 울려 퍼질 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전능한 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이후가 대망의 Lacrimosa였다. 앞의 노래들도 너무도 좋았지만. 그래서 Lacrimosa만을 기다리고 있진 않았지만. Lacrimosa가 울려퍼질 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전주부터 마음을 울리는 게, 비단 Lacrimosa가 가장 유명한 곡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 노래엔 영혼이 들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주를 듣는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돌았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하다가 죽어서일까.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뮤지컬 <살리에리>에서도 모차르트는 이 곡에서 죽어갔다. 음악의 마지막 부분엔 모차르트에게 국화라도 던져야 할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에 아멘이 들릴 땐 유일하게 아는 가사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슬펐다. 그와 동시에 이걸 눈 앞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보면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사실 Lacrimosa 다음엔 아는 노래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Domine Jesu'가 울려 퍼졌을 땐 잠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 <살리에리>를 보고 빠져, 뮤지컬을 좋아하기 시작한 내게 <살리에리>는 정말 특별했다. <살리에리> 공연만 약 7번 정도를 봤을 정도에다가, OST를 하도 듣고 다녀서 딱 한부분만 들어도 음악을 맞출 정도였는데. Domine jesu가 내가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살리에리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둘이 함께'라는 3중창의 모티브였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그리고 가상의 인물인 ’젤라스‘가 함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듯 계속해서 이어지듯 부르는 ’둘이 함께‘는 이 노래를 따온 것이 틀림없었다. 설마 이 노래도 레퀴엠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뿐더러, 눈앞에서 합창단 버전으로 듣는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나왔다.



들어봤기에 더욱 아름다워진, '테 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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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음악의 아름다움과 별개로, 모짜르트의 레퀴엠은 내게 여러모로 특별할 수 밖에 없었기에. 사실 '테 데움'에 대해서는 큰 기대가 없었다. 나름대로 마음의 격동을 느꼈던 1부가 끝나고, 조금 긴장이 풀린 상태로 브루크너의 ‘테 데움’이 시작됐다. 레퀴엠만큼 긴장되거나 기대되진 않았지만, 브루크너가 ‘테 데움’을 평생의 자부심으로 여겼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던 터라 어떤 음악일지 궁금헀었다.

가장 처음 연주됐던, 또 가장 길고 웅장 헀던 ‘Te Deum laundamus'는 과연 자부심으로 여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계속 반복되는 전주에 반주가 하나씩 얹어질 때가 정말 좋았다. 이후 김보라 소프라노, 성영규 테너, 문혜경 알토의 3중창이 울려퍼졌다. 합창과 함께 오케스트라가 점점 더 웅장해지는데, 그럼에도 처음 시작 때 반복됐던 그 전주가 계속해서 베이스로 깔려 좋았다.

낭만주의 작곡가임에도 정통 교향곡을 따랐다더니, 그래서 주제 멜로디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약간 웅장한 노래들을 좋아해서인지 테 데움은 첫 곡을 빼고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첫 곡은 웅장했던 것도 좋았지만, 그 강약 조절. 웅장해졌다가 약간 약해졌다가, 다시 합창과 함께 웅장해지는 그 강약 조절이 참 인상 깊었는데. 나머지 노래에선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던 것이 안타까웠다. 또 레퀴엠의 ‘Rex tremendae'와 'Dies irae'에서 합창단에 압도당했던 바로 이전 순간 때문인지, 개인 성악가들의 솔로부분보단 합창이 더 좋게 느껴졌던 시점이라. 더욱 테 데움이 아쉬웠던 것 같다.

워낙 뮤지컬, 연극을 좋아해서 나름 무대는 다른 사람보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연주회는 아직도 올 때마다 잘 모르겠다. 한번씩 인사하고 박수치면 끝인 연극이나, 뮤지컬과 달리 연주회는 지휘자가 몇 번이고 등퇴장을 하며 박수를 받고, 또 받는 것이 신기했다. 계속해서 박수를 쳐준 관객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인지, 브루크너 ‘테 데움’의 첫곡을 앵콜로 연주해주었다.

테 데움 전체를 듣고 나서 다시 들어서인지, 첫 번째 곡이 더 웅장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미 어떤 음악일지 알고, 그것을 기대해서일까. 내가 좋아할만한 부분을 미리 알고 더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서일까. 오래전 부터 알던 음악도 아니고, 방금 처음 들었던 음악인데. 그래도 한번 들어봤다고 그새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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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곡으론 처음 들어보는 모차르트 레퀴엠의 Domine Jesu를 듣고 음악의 아름다움과는 무관하게 눈물이 나왔던 것처럼. 음악 또한 경험적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음악의 절대적 아름다움과는 무관하게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음악은 더 아름답게도, 덜 아름답게도 들린다. 아는 음악이 더 감미롭게 들리고, 더 집중해서 듣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는 말처럼. 음악도 정말 아는 만큼 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레퀴엠을 알고 있었음에, 또 그리고 그걸 눈 앞에서 듣고 그에 감동받을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했다. 또 테 데움의 첫 곡을 두번이나 듣고, 보다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앞으로 더 많은 음악들을 알아가고, 더 많은 음악들이 내게 '특별'해져서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더욱 수 많은 아름다움들도 가득 찰 내 미래가 보다 기대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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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2).jpg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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