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드무비 '라쇼몽', 보고싶은대로 보는 인간 [영화]

글 입력 2017.06.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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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객관적인 사람이 존재할까? 그 누군가는 이성을 믿고 '맞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사실 인간은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다. 이성의 힘을 철저히 믿는다 할지라도 인간에게는 감성의 영역이 존재하고, 모든 상황을 1인칭의 시점에서 맞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찰나의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판단하고 심지어 궁지에 몰렸을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를 펼치기도한다.
우리는 이를 에고이즘(egoism)이라 칭한다.





  객관을 표방한 주관의 인간.


 
  여기 에고이즘의 인간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1950년作 라쇼몽(In The Woods)이다.


라쇼몽1.JPG
 

  영화 '라쇼몽'은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를 세계적인 거장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무려 1951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고, 1982년 베니스 영화제 50주년 기념회고상영전에서 역대 베니스 그랑프리수상작 중 최고 작품상인 '사자 중의 사자'로 뽑혀 특별 수상하기도 했다.
  구로자와 아키라는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덤불속'과 '라쇼몽'을 하나로 합쳐 1950년, 영화로 만들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작품을 택하게 된 것은 '라쇼몽'에 나타난 헤이안조 기근의 황폐한 문의 상징성과 분위기, 그리고 '덤불속'의 독특한 구성과 주제의식 때문이다.

 
라쇼몽3.JPG
 

   라쇼몽은 법정에서 '무사를 죽인 진범은 누구인가?' 라는 극적 모티브를 가지고 내용을 전개한다. 살인 용의자인 도적은 자신이 무사의 아내를 강간한 뒤 그 무사와 결투를 벌인 끝에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뒤늦게 붙잡혀 온 무사의 부인은 도적에게 강간을 당한 뒤 수치심 때문에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다. 뒤이어 무당의 입을 통한 무사 영혼의 진술은 이전 두 사람의 증언과 또 엇갈린다. 그는 스스로 자결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연히 그 사건을 목격했다는 나무꾼은 그 세 사람의 증언을 모두 부정한다. 부인을 두고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도적과 무사에게 부인이 '남자도 아니다!' 라며 꾸짖자, 도적과 무사가 서로 겁먹은 채 결투하다 도적이 무사를 죽인 것이라고 말한다.

  에고이즘에 의해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미화하는 모습이 극중의 관람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내용은 라쇼몽 문 아래에서 나무꾼과 승려라는 두 명의 객관적인 관찰자가 진행하고, 행인을 통해 그들이 해당 사건을 회상해내도록 만든 것이다.


라쇼몽5.JPG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니 이승이 바로 지옥이다."



   최종 목격자인 나무꾼의 말이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 역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영화 전개 중 드러나게 되고, 여기서 에고이즘적 요소가 폭발한다. 결국 사건 아래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쇼몽을 통해 영화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진리의 상대성' 인 것이다. 즉, 인간에게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장인물 모두,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증언한다.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에 입각하여 증언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라쇼몽2.JPG
 

  라쇼몽은 인간의 에고이즘적 심리를 묘사했다는 점에서도 큰 호평을 얻고 있지만, 사실 더욱 주목해야하는 점은 그것의 예술성이다.
 라쇼몽 등장 이전까지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뒤섞여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전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라쇼몽은 새로운 전개방식을 도입함과 동시에, 논리적 구성을 놓치지 않았다. 즉,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섞어서 구성하는 것이 복잡하거나 뒤엉킨 것이 아닌 보다 효과적인 이야기의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적 기법 또한 훌륭하다. 나무꾼이 숲을 거니는 모습을 어마어마하게 긴 롱테이크로 촬영한 점,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한 미학, 화려한 무빙 없이 절제하며 촬영한 점은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북돋는다. 구로자와 아키라는 이러한 촬영 기법들을 통해 인간 마음속 음영이나 심리의 흐름을 다룰 수 있었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재판 장면 모두에서 재판관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재판관의 시점을 관객에게 돌려 '범인은 누구인가' 라는 주체적인 판단을 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라쇼몽에 살던 도깨비도 인간이 무서워 달아났다더군.



  앞서 언급한 요소들은 어쩌면 라쇼몽이 명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라쇼몽 삽입곡인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Bolero)'를 들려드리며, 인간의 부정적 심리를 회피하려는 당신께 오늘 밤 '라쇼몽'을 추천한다.




[서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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