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변화와 안정에 대하여 [문화 전반]

변화와 안정에 대한 단상.
글 입력 2017.05.24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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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변화와 안정에 대한 단상.


  어느덧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은, 겨울에서 봤을 땐 너무나 까마득해보였지만 이렇게나 금방이다. 앙상한 가지들은 푸른 잎으로 채워지고, 눈으로 미끄럽던 아스팔트 도로는 금세 뜨거워졌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오는 동안, 나는 머리를 길렀다. 머리카락은 드러나 있던 뒷목을 덮고, 머리를 숙이면 눈앞까지 가린다. 몇 개월은 참 짧은 시기다. 하지만 고작 그 짧은 시기가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사소한 신체 변화에서부터, 커다란 계절 변화까지. 그 시기를 거쳐 우리는 ‘자란다’.


  ‘자란다’ 혹은 ‘성장한다’는 말은 참 젊은 사람에게나 쓰는 말 같다. 유교의 ‘불혹’과 같은 수식으로, 중년 이후에게는 자란다는 말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보다 ‘변화’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하지만 ‘변화’라는 말도 나이든 사람들에게 많이 쓰는 말은 아니다. ‘안주’, ‘안정’. 보통 더 많이 쓰이는 말들이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나이에 따라 상태를 다르게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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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나 역시도 언젠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의 변화에 맞춰 바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 역시도 안주하고 안정하는 시기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그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해왔을 지도 모른다. 10대는 물론, 아주 어린 시기에서부터.


  그러나 성인이 되고, 매 해가 지날수록 난 여전히 예전의 나와 다름없는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나는 하룻밤 사이에 완벽해지지 않으며, 고작 어제의 나보다 하루 더 산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대학을 다닌지 3년째이지만, 새내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게 될 줄 알았던 미래의 나는 사실 오늘의 나와 같은 하루를 보낼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변화를 따라 걷고 있음에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젠가 내가 서른 살이 되는 해, 나는 분명 이렇게 말 할 것이었다. “아직 20대도 적응하지 못했는데, 30대가 되었다.”고. 나이를 먹은 미래의 나도 분명 변화를 체감하고, 어려워도 그 사이를 따라 걷고 있겠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내 자신의 변화이자, 안정을 찾은 내 미래의 상태를 얘기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변화와 안정, 그 어느 것도 어느 기준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린 아이에게도 안주가 있을 수 있고, 노인에게도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 어쩌면 평생 그 무엇도 경험할 수 없기도 하다. 우리네 인생은 연속적인 매일이기에 더 불규칙하다.


  얼마 전, 단편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재개발되어가는 지역의 한 이발소가 그 배경이었다. 이발소의 주인장인 할아버지는 평생 이발만 하며 이발소를 지켜온 사람이었다. 하얗게 샌 머리카락은 이발소와 함께 보낸 세월을 짐작하게끔 한다. 그런데, 그런 이발소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이발소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고, 철거 동의서가 날아온다. 미용이라고는 평생 해본 적이 없는데, 머리 긴 여성이 컷트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단편 영화 ‘컷트’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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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곳곳에 보이는 재개발 반대 문구와, 이발사를 두고도 굳이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으려는 손님들은 그간 할아버지가 안주해온 매일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거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미용 가위를 들어 머리카락을 자른다. 변화와 안정은 고집되는 나이가 있지 않다. 우리는 매일 같은 하루를 살며, 매일 다른 하루를 산다. 어쩌면 내일, 우리는 변화할 수도 있고, 또 안주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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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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