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봄이 고인다 [문화전반]

5월에 읽기 좋은 시
글 입력 2017.05.20 12: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Opinion] 봄이 고인다 [문화전반]



봄이 고이더라.
공중에도 고이더라.
바닥없는 곳에도 고이더라.
 
봄이 고여서
산에 들에 물이 오르더라.
풀과 나무에 연초록
연초록이 번지더라.
 
봄은 고여서
너럭바위도 잔뿌리를 내리더라.
낮게 갠 하늘 한 걸음 더 내려와
아지랑이 훌훌 빨아들이더라.
천지간이 더워지더라.
 
 
이문재, 봄이 고인다
 
 

여름이 한껏 다가오고 있다는 걸, 발견하는 날들이 겹치고 있다. 두시의 햇살은 포근하기보다는 따갑게 느껴지고, 비가 쏟아질 때면 시원함이 확 와 닿는다. 나무들에는 초록이 번진지 오래다. 반팔 옷을 사고, 청바지보다는 얇은 면바지에 손이 간다. 밤이 되면 창문을 열어 두고 싶고, 그럴 때마다 잔벌레들이 날아오면 정말 여름이지 싶다.
 

그래도 5월은 아직 한여름 전이어서, 봄이 머무른다. 곳곳에 봄이 고인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 새롭게 맞아야 할 계절과 함께 머무르는 계절이나 이야기들을 종종 꺼내본다. 문득 생각나는 일들은 여전히 봄인 듯 고여 있고 고인 계절에 한 방울씩 보태 큰 웅덩이가 만들어지면 거침없이 뛰어든다. 그렇게 뛰어들고 뛰어들면 지난 가을, 여름, 그리고 봄 까지 다다르고 습관처럼 그를 생각하고 그와의 봄, 그와의 여름들을 생각한다. 돌고 돌아도 결국에 다다르는 사람이 정해있기라도 한 듯 새로운 계절의 시작에서 그는 여전히 고여 있고, 그 웅덩이 위를 첨벙거리며 다음 계절을 마주하는 내가 있다. 어쩌면 고여 있던 그가 어느 샌가 스며들었기라도 하듯. 이번 여름은 어떤 여름일까.
 

아마 이 5월은 금방 지나갈 거고, 남은 5월은 바쁘게 포개지고 다음 5월이 기다려질 거다. 언제 봄이었냐는 듯 금세 다가오는 여름 앞에 우물쭈물 거릴 새도 없이 이미 여름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봄은 고이고 다시 고여서 어디엔가 풍덩 빠질 만큼 큰 웅덩이를 만들고, 가끔 웅덩이 위로 뛰어들면서 여름을 지내고 다음 봄을 기다릴 거다. 다음 봄이 올 때쯤엔 지금 한껏 고인 이 봄들이 어디엔가 잔뜩 스며들어 있길 바란다.
 

5월에 읽기 좋은 시, 이문재의 봄이 고인다.


[양나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