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영혜중공업 개인전: 텍스트와 예술의 유희적 외침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2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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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안철수 후보자의 광고 영상이 장영혜중공업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실제로 표절을 했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여도, 그 둘을 비교했을 때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음악의 결합 형태가 유사한 것은 분명하다. 이 광고 뿐만 아니라, 장영혜중공업의 작품은 2000년대 이후 국내 미술판의 작가들과 광고계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매체에 차용될 정도로 대중에게 파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는 장영혜중공업의 작업들이 가지는 매력일 것이다.

이러한 힘은 그의 작품에서 예술과 텍스트가 각자 고유의 영역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는 것에서 비롯된다. 장영혜중공업의 웹아트에서 이 둘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며 억지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대신 각자의 소리를 낸다. 각 작품마다 서사를 가진 텍스트는 예술의 영역에 속박되지 않고 일상의 대화나 대중매체에서 쉽게 볼 법한 언어의 형식을 굳건히 유지한다. 언어 예술의 하나인 시나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서정적인 표현이나 은유적 기법으로 ‘예술적’인 텍스트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정치는 ‘정치’로, 삼성은 ‘삼성’으로, 그리고 ‘빌어먹을’은 ‘빌어먹을’으로 표현되며, 돌려 말하길 거부하고 말하고자 하는 그대로 쓰인다. 마찬가지로, 예술 또한 소위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를 거부한다. 프로파간다적 예술이 그러하듯 대상을 찬양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형식으로 전락하지 않고, 대상의 잘못된 점을 오목조목 지적하는 것에 급급해 자유롭고 경쾌한 작가 특유의 시선을 버리지도 않는다. 사회를 건드리되, 자신의 개성을 지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텍스트가 등장하는 속도에 맞춰 울리는 드럼소리나 서사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대비되는 재즈음악, 혹은 다양한 크기와 색의 문자들은 장영혜중공업이 택한 그만의 예술적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요소들은 이 텍스트들이 책이 아닌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이유인데, 두 영역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해학적인 미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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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혜중공업의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에서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가정, 경제, 정치의 영역에서 나누어 제시한다. 전시의 제목이 ‘자습서’인 이유는 이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삶의 선택을 마주할 때, 자습서와 같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습서의 내용은 너무 쉬워서 자습서를 보기 전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이며, 불행한 땅인지를. 작가가 제시한 사회적 메시지는 새롭지 않은 익숙한 담론이다.

1층에 설치한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에서 친척들이 사적인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가 욕설이 난무하고 서로 죽일 듯 달려드는 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봐서 쉽다. 주말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이고, 가장 가깝게는 우리 가정의 모습이다. 이렇듯 가정의 불행을 일으키는 한국 특유의 무례한 질문과 배려 없는 조언들은 국민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2층의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에서 삼성 병원에서 시작하여, 삼성 가전제품 구매, 삼성 대학교 진학, 그리고 삼성 장례식장에서 끝나는 일련의 과정들의 묘사도 그리 놀랍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사실은 아니다. 이 작품이 등장하기 전부터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자본에 속박당한 한국을 일컫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이미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삼성을 욕하며 삼성에 취업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은 더 이상 비난할 거리도 안 되는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작가는 사회를 들썩이게 할 만한 참신한 메시지를 제시하지도 않고, 원래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적 담론을 재구성할 뿐이다. 3층의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무엇을 감추나’에서 드러나는 정치인들의 이중적 면모와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또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탄핵 국면으로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국내의 정치혐오는 여전히 만연하며, 비리와 위선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의 ‘흰머리’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렇듯 작가가 전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진부할 정도로 익숙하다.

하지만, 텍스트의 메시지가 쉽다고 하여 그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쉬운’ 메시지를 골라낸 이유가 있는 듯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말처럼 사회적 담론에서 이미 우리에게 진부한 것은 이러한 불행과 부조리가 대한민국 구성원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택한 ‘쉬운’ 담론은 쉽기 때문에 더더욱 빠져서는 안 되며, 정치적 예술에서 다룰만한 가치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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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가 쉬운 메시지를 더 쉬운 텍스트로 전달하는 것은 눈여겨 볼만 하다. ‘여보, 이거 봤지! 얘는 전문의 진단이 절실히 필요해!’, ‘왜 삼성 초등학교와 삼성 중학교는 없을까요?’, 그리고 ‘가발을 쓸 만큼 자신감 없게 매달리는 정치인들은 목에 표지판을 달고 다녀야해!’ 이 세 문장들은 각 작품에 등장하는 텍스트로 작품 내의 거의 모든 내용은 이와 같이 대화체, 일상적 언어, 그리고 간결하고 직설적인 어조로 구성된다. 대중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통찰력 있는 분석과 빈틈없는 논리로 사회적 담론을 제시하는 논문 혹은 칼럼과 이 작품의 차이는 여기서 드러난다. 우리는 익숙한 담론과 쉬운 텍스트로 구성된 이 작품들 안에서 전자와 달리 ‘나의 언어’를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듣고, 쓰고, 말하던 단어와 말투는 작품 속 텍스트에서 비슷한 형식과 난이도에서 재구성되며, 화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1층에서는 삼촌에게 결혼을 안했다며 타박을 받아 기분이 상한 추석 때 내 모습을 찾고, 2층에서는 삼성의 노동 환경을 혐오하지만 삼성전자에 취업 원서를 내는 취준생 오빠의 모습을 떠올리며, 3층에서는 ‘정치에 관심 가져봤자 쓸모없다’며 뉴스를 끄고 예능을 보는 우리네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전달력을 가진 텍스트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가? 빠른 장면 전환과 글자의 움직임, 혹은 음악 없이 미술관의 희고 큰 벽에 또렷하고 명료한 폰트로 크게 적어놓으면 더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앞에서 언급했듯, 이 텍스트들은 음악, 이미지 그리고 색들을 통해 비로소 유머러스해진다. 이러한 예술적 요소들과 함께라면, 가장 진지하고 비관적인 말의 집합체들은 가장 단순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말인 양 화면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웃음을 지을 수 있다. 상황의 부정성에 함몰되지 않고 음악의 경쾌함을 즐기고, 빠르게 등장하는 단어를 놀이하듯 집중해서 읽으며, 우리는 결국 유희하는 것이다.

그들의 예술은 슬픈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는 우리들을 비릿하게 웃게 만든다. 이 사회는 바뀌어야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우리를 비관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미 비관적인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빠지게 하는 대신, 웃음과 함께 스스로를 객관화 할 수 있게 한다. 텍스트는 예술 작품의 구성 요소로서 유쾌하고 쉽게 전달되지만, 이는 공중에서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각 층의 화면을 응시하며 머릿속에서 떠올린 나와 사람들의 모습은 생생하고 익숙하여 쉽게 각인되며, 이는 미술관 밖을 나가자마자 잊힐 수 있는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허상이 아니다. 작가는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상상을 통해 텍스트와 예술적 요소의 결합을 만들어냈지만, 창작의 산물인 이 작품은 현실과 다를 바 없다. 마침내, 나는 마치 매우 잘 만들어진 광고에게 유혹당해 물건을 사듯 별 수 없이 그 상상을 간직하게 된다.


[양유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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