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탄생 : 다시 태어나다. [시각예술]

새롭게 정의되는 나, 그리고...
글 입력 2017.03.1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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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2017)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진한 여운이 남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주말 한적한 시간에 들어선 영화관에서 눈에 들어온 영화였다. 포스터의 색감이 너무 예쁜 영화. 왠지 내가 좋아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표를 끊고, 입장을 했다. 상영관은 무척이나 한적했다. 관객은 나를 포함하여 4명. 비록 꽉 찬 만석은 아니지만 이 적은 수의 관객을 위해서도 극장의 불은 꺼지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 속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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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내가 기대했던, 차분하고 여운이 짙고 영상미가 돋보이는 그런 분위기의 영화는 아니었다. 시작부터 익살맞고 흥겹고 무언가를 조롱하는 굉장히 펑키한 연출이 돋보였다. 범상치 않은 괴짜의 기운을 풍기는 주인공 지젤(류현경 분)은 한국으로 들어오는 공항에서부터 '고고한 예술가'로서의 기운을 내뿜는다. 예술에 대한 심오한 고민, 수익성을 추구하며 순수한 예술 정신을 버린 예술계에 대한 비판, 예술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 그렇다. 지젤에게 예술이란 온 정신을 다 바쳐 고심하고,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내야 하는 순수한 존재다. 다소 과장스럽고 현학적인 지젤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흔히 순수예술에 대해 가진 부정적인 편견, 즉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고상한 척'의 집합체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고고한 지젤'은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작아지는 존재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 정신과 생계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예술을 놓지 못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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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지젤의 앞에,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떠오르는 아트 마케터, 재범 갤러리의 대표 박재범(박정민 분)이다. 지젤의 작품을 눈여겨 본 그는 본격적으로 지젤을 스타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재범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일부 작품을 팔아 돈을 벌면서도, 지젤은 왠지 모르게 즐겁지 않다. 작가인 자신이 작품에 대해 설명할 수도, 자신의 작품을 구입한 고객의 감상을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에 대한 '소통'이 생략된 과정은 자신 나름대로 예술에 대한 신념을 키워왔던 지젤에게는 '이윤추구'라는 명목으로만 여겨졌을 것이며, 이것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은근한 불편함을 재범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건'을 알아보는 자신의 안목을 신뢰하는 재범은 지젤의 마음이야 어떻든 '지젤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를 강행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화룡점정은 예기치 못한 지젤의 죽음 덕분에 가능해졌다. 떠오르는 신예 스타인 지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작품들은 희소성을 지니게 되고 그 값은 고공천지로 솟아오른다. 재범은 성공적인 결과에 신이 나고, 지젤의 인생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는 데 박차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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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젤이 살아서 돌아왔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영화의 시작이다. 작품의 시장성을 위해서 재범은 살아있는 멀쩡한 지젤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려하고, 지젤은 다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자신 나름대로 행동을 개시한다. 이들을 둘러싼 영화의 스토리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작품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작가의 명성, 작품의 가치, 희소성을 추구하는 재범에게 예술의 본질은 '명성과 인정'이다. 이를 평가하는 잣대는 바로 작품의 가격이다. 반면, 지젤에게 예술의 본질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작가 스스로가 작품에 솔직해야 하고, 작가의 의도가 작품을 통해 감상자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작품을 통한 소통은 지젤이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보여준다. 판이하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 두 인물을 통해 관객들은 현재 우리가 닿아있는 예술은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예술은, 수익성으로 점철된 상업적인 놀이에 지나지 않는가 혹은 여전히 정신적인 가치를 보전하고 있는가. 영화를 보면서 현 문화계를 들썩이게 한 여러 사건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고, 어떤 것을 지양해야 할까. 그런 생각에, 영화가 끝나고는 한동안 꺼져버린 스크린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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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제목은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이다. 재탄생. 영화가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뒷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지젤은 여러 번 다시 태어난다. 신체적으로 죽었다 살아나는 것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예술가로서도 다시 태어난다. 그저 무명의 동양 여성화가였던 그녀는, 재범을 만나 일약 스타 작가가 되고, 후에는 '살아있지만 죽은 척 해야 하는' 비운의 예술가 지젤이 되어버린다. 이에 더 이상 지젤이 될 수 없던 지젤은 본명, 오인숙으로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스스로를 '지젤이 아닌 오인숙'이라 칭하며 작가 오인숙만의 작품 활동을 지속해나간다. 지젤로 활동하던 그녀는 사실, 예술에 대한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 했다. 그녀가 지젤로서 추구했던 예술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움을 좇았다. 그래서 지젤이라는 '있어 보이는' 이름을 내려놓고, 자신의 본명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행위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첫 걸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을 향한 첫걸음이기도 했다.

  그녀의 변화와 더불어 그녀의 작품들도 여러 번의 변화를 거친다. 어느 무명 작가의 별 볼일 없는 작품은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가의 예술품으로, 또 표절 시비의 중심인 화제의 논쟁 작으로 변했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들은 우리네 삶에서, 사람들의 일상 여기저기에 녹아 든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면서도 묘하게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이 작품들은 이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과 소통한다. 과거의 지젤이 바랐고, 현재의 오인숙이 실천해나 갈 예술의 본질이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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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느 샌가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판에 박힌 질문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한 작가의 재탄생을 그린다.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예술관을 통해 자신을 재정의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이러한 재정의는 그녀에게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된다.  미래의 오인숙이라는 예술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녀가 행복할 것이라고 으레 짐작할 수 있다. 그녀 스스로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의 본질에 정답은 없다. 따라서 그녀의 예술관도 또 다른 변화를 겪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흔들림의 과정을 통해, 그녀는 다시 태어날 것이고, 재탄생 이후엔 더욱 견고한 예술가가 되어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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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포커스를 돌려보자. 나에게 예술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사실 영화는 변화하는 지젤의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관객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흔들리고, 변화하고, 재탄생하는 그녀를 보여주면서 통해 관객에게 '너를 흔들고, 변화시키고, 결국엔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각각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본질이라 여기는 가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굳이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볼 만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사람을 새롭게 정의하는 본질에 대한 의문을 강렬하게 던지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시키고 싶다면, 어디 한 번 새롭게 태어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변화시킬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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