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희망 없는 꿈에 대하여,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시각예술]

어느 날, 학교 인기스타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둔다.
글 입력 2017.02.1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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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인기스타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둔다. 동아리 탈퇴는 물론, 학교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키리시마 여자친구도, 그의 절친한 친구도, 그 누구도 이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 후로 5일, 키리시마는 연락이 두절되며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에 겹쳐, 키리시마가 나오지 않은 날부터, 금, 토, 일, 월, 화, 학생들은 진로를 써서 제출해야 한다.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그 5일간의 학교 아이들의 고군분투를 담은 영화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스타였던, 속된 말로 ‘잘 나가던’ 키리시마가 그의 애인은 물론 절친에게까지 밝히지 않고 자취를 감추자, 학교 내에 존재하던 계급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계급이 무너지기 시작한 출발점은 ‘희망 없는 꿈’에 있었다.



- 희망 없는 꿈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탈퇴하자, 코이즈미가 그 대타를 맡게 된다. 코이즈미는 키가 매우 작아 키리시마만큼은 하기 어렵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그러나 기존 계급 중 키리시마와 어울리던 친구들은 그런 코이즈미를 비웃는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함께 웃지 못한다. 코이즈미의 일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코이즈미는 희망이 없고, 재능이 없다. 마치 자신들처럼.

  “엄청 열심히 했는데 말야, 코이즈미.
굉장하다고 생각했어.
키도 작고, 키리시마 서브였어도 말야.
하지만 결국엔 지는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한걸까?
사노가 부러워. 아무 생각 안해도 되고.”



- 희망 없는 꿈과 포기


  그런 그들에게 두 가지 선택길이 주어진다. 희망 없는 꿈을 포기할 것이냐, 희망 없는 꿈이더라도 쫒을 것이냐. 주인공 히로키는 일찍부터 ‘포기하자’는 쪽이었다. 야구라는 것에 큰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히로키 스스로의 판단이었고, 어떻게 보면 부딪혀보지도 않고 꿈을 놓은 케이스였다.

  어쩔 수 없는 포기라는 것도 있다. 관악부 부장은 히로키를 짝사랑한다. 히로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기 위해, 관악부 부장은 방과후 마다 히로키가 잘 보이는 옥상에서 연습을 한다. 그러나 히로키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다. 키리시마가 학교를 나오지 않은지 5일째, 관악부 부장은 히로키와 그의 애인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며 끝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로 끝낼 거’라는 말을 남긴 채. 그렇게 한 명, 희망 없는 꿈이 접혔다.



- 희망 없는 꿈과 전진


  그러나 더 많은 친구들이, 희망 없는 꿈이더라도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쩔래?”
“어쩌냐니? 찍자. 네가 그랬잖아.
찍고 싶은거 찍자고 한 건.
그 말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고.
이렇게 즐거운 건 처음이야.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면 안돼.”

  재능 없는 꿈이고, 희망 없는 꿈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계속해봤자 남는 것은 주변인들, 특히 학교 내 계급 중 가장 윗층에 있는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친구들은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고, 잘 하는 일을 해라.’ 누군가 그러면 행복할 수 없다고 대꾸하자 또 이런 대답을 하셨다. ‘잘 하는 일을 계속 하다보면 행복해질 거야.’ 누구는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억지로 기다려 얻어낸 행복이 아니다. 그 것의 결과가 어찌되든 끝이 보이기 전까지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끝에 가서는 잘하게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두고 돌아갔다가 끝에 가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후회’가 두렵기 때문에 누군가는 히로키처럼 포기하고, 누군가는 야구부 주장처럼 감행한다. 희망 없는 꿈의 ‘고문’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는 적어도 ‘행복한 고문’이다. 희망 없는 꿈도 ‘꿈’이라 충분히 값지다.

“저기, 주장은 3학년이시죠?
왜 은퇴 안하세요?
주장한테 스카웃 제의가 온 건..?”

“한 번도 없어.
신인선발 끝날 때 까진 하려고.
없겠지만 신인선발 끝날 때까진.”

  그들이 자기 재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희망이 없다는 것, 충분히 재능이 없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고, 그 꿈으로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은 무리야.”
“그럼, 어째서 이런 지저분한 카메라로
굳이 영화를 찍는거야?”

“그건, 음.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가 찍는 영화가
연결 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그게 그냥 좋으니까.”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컨택트’가 생각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알고 있어도 이들은 감내하고 그 순간 순간을 사랑한다. 미래가 없고, 희망이 없어도 괜찮다. 희망 없는 꿈이란, 희망 없는 꿈이기 때문에 희망차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건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기 때문에, 꿈을 쫒는 오늘이 아름답다. 오늘이 간절하기에 각자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을 원동력을 얻는다. ‘행복’과 ‘꿈’이라는 원동력을.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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