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침묵의 소리, < 피아니스트 임현정 리사이틀 >

글 입력 2017.02.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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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포스터.jpg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피아니스트 임현정 리사이틀을 다녀왔다. 연주회에 가기 전에 그녀가 쓴 < 침묵의 소리 >를 읽고 가고 싶었는데, 일상에 매몰되어 살다 보니 아쉽게도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대감을 안고 어떤 연주를 들려줄 지 설레는 마음으로 예당에 갔는데, 정말로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임현정이라는 사람 그리고 임현정이라는 피아니스트에게 완전히 빠질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Program

슈만, 사육제 Op.9
브람스, 8개의 피아노 소품 Op.76

Intermission


라벨, 거울
프랑크, 전주곡, 코랄과 푸가






처음에 프로그램 자체만 보고는 독일과 프랑스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상이한 피아니즘을 여실히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것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렇지만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들을 놓고, '사랑에 빠진 곡들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드디어 오늘이 왔다.
2017년 2월 4일, 10년의 숙제를 끝낸 후
꼭 연주하려고 아껴두었던 프로그램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베토벤 소나타가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숙제였다면,
즉 나를 한 음악인으로 잘 성장하게 해 주는
건강에 좋은 웰빙음식이었다면

늘 연주하는 프로그램은
너무 맛있어서 몰래 군것질하는,
나로서는 거의 오락 프로그램인 것이다.
19세기의 작곡가
슈만, 브람스, 라벨 그리고 프랑크.

...(중략)

음악에서 통용되던 규칙들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고정관념과 관습을 뒤흔든 것도
이른바 고전 음악가라고 하는 그들이었다.

...(중략)

존중 가운데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나만의 개별성과 나만의 생동감 있는
진실에 최대한 근접한,
진정성 있는 연주를 추구한다."
- 리사이틀 프로그램 북 중에서


슈만의 사육제가 시작되는 순간, 그녀가 보여주는 당시 슈만의 삶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슈만의 젊음에서 나오는 생기와 열정, 내면의 명상과 격렬한 변동 그 모든 것이 그려졌다. 정말로 다양한 정서가 <사육제> 하나에 다 담겨 있었다. 그 변화무쌍하게 넘나드는 정서 가운데 임현정은 그녀가 이해한 슈만의 그 젊었던 시절을 전달해 준 것이었다. 아주 개인적인 표현을 하자면, 예당에 오기 전에 메종엠오에서 사브레를 먹었는데 사육제를 완전히 듣고 나니 부드럽고도 바삭한 식감을 바탕으로 입안에 달콤한 풍미가 가득찼던 그 느낌이 다시금 들었다. 사육제가 완성된 그 순간 내가 느낀 행복의 느낌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어서 브람스의 8개의 피아노 소품이 시작되는 순간, 슈만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정서가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8개의 소품이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나 첫번째 소품곡인 카프리치오는 인생의 연륜과 그로부터 묻어나는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다. 아주 성숙하고 고뇌가 묻어나는 곡이면서도 마냥 무겁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전달해주었다. 사육제에서 슈만을 그려내 준 모습과는 또 다르게 삶에 대해 고뇌하고 성찰하는 브람스를 그려내는 임현정의 연주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녹아든 것이었다.



2부는 기대하던 라벨의 거울로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거울은 라벨이 인상주의와 구별되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인상주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일견 관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상황 또는 객체를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호접지몽처럼 내가 나방의 날개짓이 되고 광대의 노랫소리가 되며 바다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그 느낌을 어떻게 알려줄 지 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독창적인 시성을 기대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근본부터 바꿔 준 연주였다. 독창적인 무언가를 통해 만족한 <거울>이 아니라,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이 연주가 나에게 표본이 되어 주는 <거울>이었다. 그만큼 진솔하고도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충분히 보여준 무대였다. 기교, 현대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난해한 화성과 더불어 물아일체가 되도록 만드는 묘사력까지 다 갖추어진 연주였다. 눈을 뜨고 들어도, 눈을 감고 들어도 완벽했다.



마지막으로 프랑크의 전주곡, 코랄과 푸가가 연주되었다. 이번 무대의 곡 중에 가장 엄격한 형태의 형식을 갖춘 곡이었다. 그래서 일전의 세 곡과는 또 다른 임현정을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형식적으로는 엄격하면서도 그 안에 낭만성은 충만한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좋았다. 사실 '코랄'과 '푸가'가 제목에 들어가 있어서 조금은 늘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작품이었는데 오히려 낭만적인 요소와 더불어 규칙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함이 조화를 이루어 굉장히 신선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프로그램 북에서 임현정은 '프랑크가 스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의 마지막 연주를 통해 프랑크가 자취를 감춘 그 시간동안 어떻게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혔는지를 아주 멋지게 그려주었다.





1.jpg

 



본 무대를 마무리하고 앵콜을 시작하며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 자리에 와주셔서 너무나 영광'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는 6개의 앵콜을 연이어 선보였다. 그 중에 라흐마니노프가 3곡, 슈베르트가 1곡, 쇼팽이 1곡 있었고 임현정이 직접 편곡한 아리랑 역시 있었다. 다른 곡들도 좋았는데 특히나 라흐마니노프 작품들을 연주할 때 가장 빛나보였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중 18번, 프렐류드 Op.23 No.2, 프렐류드 Op.32의 연주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연주하는 아리랑은 이번 앵콜에서 가장 신선하고 좋았다. 밀양아리랑의 주제로 변주곡을 만들었는데 현대적인 화성으로 듣는 아리랑은 굉장히 짜릿했다.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당찼다. 아리랑의 정서에서 느껴지는 수동적이고 서글픈 감성을 넘어 기개가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침묵의 소리를 만나고 온 자리는 나의 2월을 가득 채울 귀한 시간이었다. 6곡의 앵콜을 해준 것도 너무나 감사했다. 그만큼 객석을 위해 준비해준 임현정의 열정이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비단 앵콜곡이 많아서 좋았던 연주는 아니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그리고 사람 임현정이 얼마나 진솔하게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목도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기 때문에 좋았다.

임현정이 무대 위에 서서 객석을 향해 와주셔서 영광이라고 말했듯이 나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었는데, 그녀의 연주를 만나기까지 내가 더욱 준비하지 못하고 간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좀 더 임현정의 삶과 생각을 알았더라면 더 풍성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연주회가 끝나고 나오면서 그녀의 베토벤 소나타 CD를 샀다. 우선 비창, 월광, 발트슈타인, 열정만 모아져 있는 CD지만 충분히 듣고 즐긴 후에는 그녀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도 들어보려 한다.

가장 완벽한 침묵의 소리를 접하고 온 시간이었다. 이 다음에 임현정을 무대에서 만나게 되는 그 때까지, 나도 내 삶의 자리에 충실하게 살면서 그 완벽한 침묵에 다시금 잇닿기를 갈구해야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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