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문학]

글 입력 2017.01.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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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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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쯤 외로움이 필요한 순간

'고립'을 통해 '몰입'의 기쁨을 만나다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격하게 외로워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들 아주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광고처럼 '외계인의 침공이 없다면,
혹은 빙하기가 다시 도래하지 않는다면'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세까지 살게 됩니다.

-프롤로그 中-



이 책을 처음 집어든건 작년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져나올 때, 베스트셀러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던 중이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제목과 함께 김정운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티비에서 자주 보았던 강연도 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기억이 났다.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저자의 가치관이나 책의 분위기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프롤로그를 보는데,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저자에 대한 흥미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에는 50세가 되어 저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라고 마음먹은 해에 일본에 가서 미술을 공부한 당시에 찍은 사진이나 작품들이 함께 실려 있다. 일상에서 겪게 되는 사소한 고민이나 에피소드를 통해 저자만의 결론을 도출하고 객관화해서 독자들에게 '지식'까지 연이어 알려주기도 한다. 50세를 살았을 때 알 수 있는 것들, 그 때의 시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다소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의 문체도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 보다 흔한 아저씨들의 말투처럼 툭툭 던지는 듯한 느낌이 느껴진다.


책은 4개의 PART로 나눠져 있다.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금지를 금지하라,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실 나는 자기계발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몇 년 새 소설이나 자격증도서를 제치고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자기계발서 열풍이 불고 있지만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자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뻔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거나 성공을 이룬 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정말 똑같은 방법으로 무언가에 도달할 수는 없다. 자신만의 서사가 있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책을 읽되 목적은 공감을 통해서 위로를 얻는 것, 타인의 삶을 보면서 배울 점은 배우도록 노력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책읽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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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개념과 관련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사이버스페이스: 인터넷을 통해 생겨난 새로운 가상의 공간.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장 큰 특징은 상호성과 익명성이다. 가상공간은 현실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광범위한 관계들로 이루어진 상호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일상 세계의 감정,정서적 상호작용이 없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육체적 경험과 인지적 과정의 분열이 일어나고 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외로움의 주범은 사이버스페이스로부터 시작한다. 가상 공간은 내가 직접 몸으로 느끼고 행동하지 않는, 얼굴 없이 동동 떠다니는 또다른 나와 같다. 보여지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는 걱정 없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현실의 걱정이나 고민들과 동떨어진 것만 같다. 그래서 더 중독된다.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을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더 쉽게 믿게 되는 삶은 현실보다 더더욱 고달플 것이다.


정서조율: 두 주체가 인식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

아기가 팔을 흔들면, 엄마가 아기의 표현에 똑같은 강도와 속도의 목소리로 반응하는 것처럼 자신과는 다른 몸을 가진 사람이 똑같은 정서를 느낀다는 것을 경험하는 인지적 상호주관성의 원초적 형태이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과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아마도 정서조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적으로 관계맺기 점점 예민해지는 가운데서도 서로 무언가 핀트가 맞는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것이 한해한해 느껴지는 것 같다.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누군가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감정들을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은 살아가는데 가장 큰 낙이라 생각한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것.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자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학습된 무기력: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부정적인 자극이 계속 되면,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현상.

많은 현대인들이 빠지게 되는 마음의 병 중 하나인 것 같다. 무기력. 아무 목적이나 희망이 없을 때 삶의 방향성을 잃기 쉽다. 내 경험상 '반복'이라는 것이 가장 무서운 습관이라 생각한다. 반복은 무엇이든 안될 것만 같았던 것도 나도 모르게 하게 만든다. 이를 좋은 습관으로 만들지 나쁜 습관으로 만들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가끔은 무기력한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기력이 길어지면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처럼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가장 좋은 것은 반복되는 일상 중에 내게 신선한 자극주거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사이사이 틈틈히 해나가는 것이다.


메타적 시선: '생각에 대한 생각' '시선에 대한 시선'. 성찰 혹은 자기반성.

메타적 시선은 스스로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획득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이것은 여유롭고 외로운 시간에 제대로 작동한다. 쉽게 말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에 나타나는 또다른 눈같은 것이 아닐까. 흔히 말하는 이불 발차기처럼,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문득 내가 했던 말, 행동이 생각나고 다시 곱씹어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타인의 시각으로 상상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는 부끄러움 혹은 진정한 성찰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도이 다케오와 아마에: '아마에'란 일본어로 음식 등이 달다. 라는 뜻으로 폭넓게 해석해 '남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구'를 뜻함.

도이 다케오의 이론은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은둔형 외톨이나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 품을 떠나지 않는 캥거루족과 같은 현상을 설명할 때 동원되기도 한다. '독립'이라는 단어는 하루아침에 딱 실행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육체적인 독립도 독립이지만, 정신적인 독립이 이루어져야 온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는 19세가 되면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끊고 자식을 독립하게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렇게 단호히 독립을 한 친구는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부모님과의 관계는 언제나 기대고 싶으면서도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주 모순적인 관계인 것 같다.


쉐마: 이미 구조화된 생각이나 행동.

인간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에 따라 상황을 받아들인다. 쉐마는 외부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끊임없이 재구조화된다. 조절을 통해 기존의 쉐마에 맞춰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고 기존의 쉐마를 수정하여 인지구조가 균형 상태를 이루게 한다. 반대로 새로운 자극이 있어도 기존의 인지구조를 바꾸지 않는 경우는 편견이라고 한다. 인지구조의 불균형이다. 나이가 들수록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경험할수록, 경험하기 이전에 갖는 두려움보다 경험하고 얻는 것들이 훨씬 좋은,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모든 경험을 굳이 해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을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편견을 갖는 습관은 하나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의미와 '리추얼'

삶은 의미의 연속이다. 모든 일들은 내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무수한 선택을 통해 만들어진 두드러지는 의미들은 내 삶의 가치를 더 높여주기도 한다. 참 신기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의미 없이, 조금의 계산 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은 없다는 것이 말이다. '리추얼'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습관과 달리 정서적 반응을 동반한다. 어떻게든 이 정서적 변화를 정당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미'가 생산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종교적 의례이다. 종교 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영화 감상 등등 의미부여가 될만한 사소한 리추얼은 많다. 나는 모태신앙인데 내 의지 없이 반복적으로 종교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순간 스스로 종교에 대한 여러 궁금증이 많았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정서의 변화에 기반한다. 가장 힘들 때 종교를 찾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삶, 신의 가르침을 통해 나의 삶을 성찰하고 교훈을 얻으며 신께 감사를 드린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에서 정서적인 큰 변화를 동반한 중요한 의미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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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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