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바라만 봐도 좋은, 죽어서도 바라보고 싶은

글 입력 2016.12.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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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어쿠스틱 콜라보의 <너무 보고싶어>라는 곡에 한창 취해 있을 때였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곡이고, 사랑만큼 널리 쓰이는 주제도 없기에 기고하길 망설였으나, 노래가 담은 가사에 괜히 푸근해진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글을 끄적인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사랑에 대해 쓰고 싶게 만드는 작품을 만난 일로 싱숭생숭한 마음을 풀어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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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자 영화인 <냉정과 열정사이> 촬영지로 유명한 피렌체에 갔던 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한 목적이 그러하듯 두오모 성당과 우피치 미술관 때문이었다. 피렌체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 녹색 빛을 띠는 아르노 강 오른편을 따라 베키오 다리를 향해 걷다 보니 어느 샌가 발길은 우피치 미술관에 닿아 있었다. 무언가를 계획적으로 관람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친구와 나는 그 날도 유명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눈에 띄는 대로 둘러보던 중 쏟아지는 외국어 속에서 용케 발견한 한국어에 자석처럼 이끌렸다. 미술관 투어가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우리나라 여행사에서 하는 우피치 미술관 투어인 모양이었다. 실례가 되는 줄은 알았으나 재밌는 해설과 간만에 듣는 유창한 한국어가 반가워 우리는 잠시잠깐 귀동냥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때 만난 그림이 바로 피에라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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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때껏 들어본 말 중 가장 신빙성 높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모르고 봤다면 감흥 없이 지나쳤을지도 모를 이 작품은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덕분에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빌리자면 오른쪽의 남자는 우르비노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 그리고 왼쪽의 여자는 그의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였다. 전쟁 때 부상으로 한쪽 눈을 실명한 것을 감추기 위해 공작의 얼굴 한 쪽 측면만을 초상에 담아냈는데 이것이 곧 유명해진 이유가 되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간만에 느끼는 알아가는 기쁨을 격하게 표현하고 있던 우리에게 가이드 선생님은 끝으로 공작의 아내에 대해 덧붙이셨다. 그건 그녀의 피부색이 백인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유난히 창백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바로 시신을 보고 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내가 죽고 난 뒤 공작이 자신과 마주보는 아내의 모습을 초상화로 남겨달라고 주문했고, 그 결과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고. 내겐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하다못해 영정 사진도 살아있을 때 찍는데 시신을 보고 초상을 그리다니. 나의 초상이 곧 나의 죽은 얼굴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에 한편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품이 머릿속에 문득문득 떠오르곤 할 때마다 차오르는 감정은 사랑, 그 자체였다.


97308dc8ba44dee4c015bbc678db5224.jpg▲ -구글 이미지 발췌

 
 20대의 연인들 중에는 다른 세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국방의 의무라는 현실 속에서 생겨난 독특한 유형의 연인이 있다. 바로 군화와 고무신이다. 나 역시 20대 초반의 끝을 고무신을 신고 걸어가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한 연인을 떠나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옮기는 걸음걸음마다 그 사람의 채취가 남아있었고 그 속에 혼자 남겨진 순간부터는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국땅에서보다 뼈저리게 서러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은 그 사람이 휴가를 나온 날 이별을 고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까지 해보고 나갔기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생각했다. 웃음이 그렇게 많은데도 버스정류장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면서 미소 한 번이 입가에서 새어나오질 않았다. 이번엔 진짜 끝이구나 - 마음은 겨울날 찬바람을 맞은 냥 얼음장이 되어 차갑게 굳어만 갔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실없이도 피식 - 하고 웃음이 나버렸다. 그냥, 그렇게,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말이다. 그 때 확신했다. 많은 사랑을 해보진 않았으나 온 진심을 다해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고무신은 여전히 나를 옥죄고, 괴롭히고, 또 무겁게 한다. 하지만 그리움이 버거울 때마다 그 때 그 버스정류장에서의 일을 떠올리면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떤 어려움도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공작 부부의 이별은 내게 시리도록 아름답다. 평생 동안, 아니 죽어서도 아내를 바라보고자 공작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지 못하는 현실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30000338674_700.jpg▲ -영화 <어바웃타임> 중


 사랑은 우리의 모습이 그렇듯 제각기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친구를 향한 것이든 연인을 향한 것이든 가족을 향한 것이든지 간에 어떤 사랑은 질투의 화신으로 나타나고 어떤 사랑은  어머니 같은 푸근함을 지니기도 하며 어떤 사랑은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수 천 만 년의 역사가 흐르고 그 강물을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사랑이 흩어졌음에도 각양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랑’이란 존재에 대한 논의는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논의들은 종래엔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이 작품은 침묵으로 내뱉고 있는 것이다. 모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서로를 마주보는 그 한 장면으로 말이다.

 그래서 바라만 봐도 좋은 얼굴, 죽어서도 바라보고 싶은 얼굴, 그런 얼굴이 있다면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감히 말해본다. 그것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랑의 존재가 실체로 드러나는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작에게 아내가 그러했고, 고무신에게 군화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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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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