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모두의 문제 '먹거리의 위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6.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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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리 준이치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1 :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 2 : 겨울과 봄>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 이치코는 자신의 고향 코모리에서 혼자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고,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 엄마는 어딘가로 떠나 버렸고 그녀는 혼자 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도시에서의 삶과 시골에서의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도시에서 얼마간 살아도 봤지만 자신과 잘 맞지 않았고, 시골에서 정착하기엔 자신의 삶이 정체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저 이치코가 계절에 맞게 농사 짓고 밥을 해먹으며,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하는 과정을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는 나에게 아주 특별했다. 이치코가 직접 농사를 짓고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재료로 건강한 식사를 하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직접 재배하는 배추의 꽃봉오리와 달래, 그리고 송어를 이용해서 파스타를 해먹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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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 나무에 열린 수유열매를 따서 수유 잼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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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달지 않게 하려고 설탕을 적게 넣었다가 신 맛이 강해졌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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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직접 농사지은 토마토로 홀토마토를 만든 다음, 파스타에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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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밤에 냉장고를 열어 그대로 하나씩 꺼내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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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말랭이는 직접 고구마를 재배해, 삶고 자르고 짚으로 엮어 말리는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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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었던 건 오리를 잡는 장면이었다. 
코모리에서는 오리 농법을 이용해 논농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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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오리를 귀엽다고 바라보던 이치코는 오리들이 다 자라나자, 동네 아저씨의 부름에 오리를 잡으러 간다. 

오리를 잡아서 삶은 뒤 깃털을 직접 뽑고, 불에 그을려 잔털을 제거하고, 내장을 제거해 손질하는 장면들을 꽤 가감 없이 보여준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런 장면들이 나오니 “으아!” 하면서 눈을 가렸다. 
두 번째 영화를 볼 때는 이 장면들을 다 봤다. 생각해보니 그 전의 내 모습이 우스웠다. 나는 매일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는지 모를 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면서, 이치코가 어쩌다 한번 건강한 방식으로 자라난 오리 고기를 잡아, 직접 손으로 손질하고 정성스러운 요리를 해먹는 모습을 보고 눈을 가리다니. 영화 속 장면들에는 오리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담겨있었다. 무엇이 더 옳은 방식의 삶일까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편의점 음식과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나의 몸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고, 그런 음식을 먹으며 기업의 배만 불려주고, 농촌의 생산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죄책감일 수도 있다. 이치코의 건강한 식생활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방식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건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먹거리의 위기'는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큰 과제이다. 
세계화로 인해서 생산지와 소비지 간의 거리가 멀어졌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도 거리가 증가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먹거리가 어디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농촌에서의 생산자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지, 위생적인 과정으로 가공되었는지 등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먹거리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상품이 되었고, 우리는 기업이 유통하고 파는 식품이 정말 안전한 것인지 의심하며, 자연과 농촌 생산자들에게 미안함을 떠안고 살아간다. 
또한 먹거리 생산자들은 거대 기업에 의해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빼앗기며, 농촌은 값싼 수입 농산품의 유통으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초국적 대기업들은 각 농촌들이 가지고 있는 종자와 그 생산법을 빼앗고 특허를 내어 이윤을 챙긴다고 한다.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라는 개념이 있다. 
먹거리의 생산, 선택, 결정 등에 있어서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주체적인 권리를 보장하자는 개념이다.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를 줄여 지역 내 농민과 소비자들이 대면할 수 있는 먹거리 체제를 만들고, 우리 농촌의 토종종자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기록하며, 영세 농민들이 스스로 생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농촌을 살리는 일은 단지 농민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소비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초국적 대기업들이 장악한 먹거리 체제 내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먹거리 선택권을 되찾고, 건강한 식품들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와 관련해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전국농민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라고 한다. 특히 전국여성농민총연합은 2012년에 ‘세계식량주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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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을 통해 여성 농민들의 생애와 종자 지식들을 기록하여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구술로만 전수되어 대가 끊길지도 모르는 지식과 기억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엄청난 가치를 가진 중요한 일이다. 

또한 이들은 ‘언니네 텃밭’이라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여성 농민들이 함께 모여 농산물 생산을 계획하고, 제철 농사를 지은 뒤, 소비자들에게 제철 채소를 꾸려서 보내주는 것이다. 여기서 농민들은 직접 생산 과정을 결정하기 때문에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 식량 주권을 보장 받을 수 있고, 소비자도 건강하고 좋은 재료를 받아 볼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직접 실천하는 소비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 (http://www.sistersgarden.org/)


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먹거리 주권과 먹거리 체제에 대해 알게 되기 전까지 이러한 문제에 정말 무신경했던 것 같다. 건강을 따져서 먹으면 세상에 먹을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너스레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식품, 농촌 생산자가 고통 받는 초국적 기업의 식품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비해왔다. 먹거리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은 농민들이나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건강에 대한 문제는 그 어떤 부자라도, 그 어떤 혜택 받은 사람이라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이치코처럼 직접 농사 지을 수는 없더라도 '언니네 텃밭'과 같이 생활 반경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 칼로리가 얼만지만 찾기보다 누가 생산하고, 어떻게 가공, 유통되었는가에 관심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해나가야 한다. 

30년 동안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하며 농촌을 위해 살아온 백남기 농민이 지난해 열린 민중총궐기집회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현재까지 그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파종했던 우리밀 2톤이 얼마 전에 수확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가 파종한 밀은 건강하게 자라 좋은 먹거리로 탄생했듯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의 위기를 인식하고 많은 실천과 노력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씩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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