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은 결혼식'을 꿈꾸시나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6.15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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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의 결혼과 관련해 이슈가 되었던 것은 그들의 호화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판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이나영과 원빈의 결혼식이 큰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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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강원도 정선의 한 밀밭을 공짜로 빌려 식을 올렸다. 부케는 주변 들꽃을 꺾어 만들었고, 협찬 제품은 손님들에게 국수를 내주기 위한 가마솥 네 개가 전부였다. 하객은 단 50명뿐이었다.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로 꼽히는 이효리도 마찬가지였다. 이효리와 이상순 커플은 제주 애월읍에서 가족과 친한 지인들만 초대한 결혼식 겸 파티를 열었다. 드레스도 비싼 명품이 아니라 빈티지샵에서 직접 골라 리폼한 것이라고 한다. 2013년 그들의 결혼식은 지금의 ‘셀프 웨딩’ 트렌드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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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결혼한 안재현, 구혜선 부부는 아예 결혼식을 치르지 않는 대신 그 비용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그들은 결혼식을 대신해 가족끼리 간단한 식사 자리만을 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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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소박한 결혼식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도 저런 결혼식을 했으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혼이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여러 유명 연예인들의 선례 덕분인지 ‘작은 결혼식’, ‘셀프 웨딩’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정말로 한국의 결혼 문화는 일반 사람들이 감당하기 정말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우리나라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 비용이 약 2억7천400만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70%가량을 차지하는 주택 마련 비용(1억9천174만원)을 제외하면 8천2백26만원의 비용을 결혼식에 쓰고 있는 것이다. 
JTBC 뉴스 팩트 체크를 보니까 2014년에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3172만원, 월급으로는 264만원이라고 한다. 현실을 더 잘 반영한 중위소득으로는 연봉이 2292만원, 월급이 191만원 정도이다. 그러면 부부의 연봉을 합쳐도 4584만원인데 결혼식 비용을 부담하기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러니 많은 커플들이 몇 년 동안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고생하고,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혼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우니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도 하나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간소화한 소박한 ‘작은 결혼식’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면 작은 결혼식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돈 많은 유명 연예인 정도가 되어야 작은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장 자체가 대규모 결혼식에 맞춰져 있으니 작은 규모의 하객을 수용할 수 있는 예식장도 많이 없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결혼식을 올릴수록 웨딩 업체들은 식대나 꽃 장식 등의 서비스에서 비용을 추가해 이익을 챙긴다고 한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많은 하객을 초대해 축의금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것이 나은 현실인 것이다. 

얼마 전에 여성 가족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작은 결혼식’ 배너가 따로 있었다. 나는 사실 이러한 작은 결혼식 문화가 젊은 층이 선망하는 하나의 트렌드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부에서도 추진하는 중요 아젠다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삼 놀라며 그 배너를 클릭해 보니 정부가 여러 일들을 시행하고 있기는 했다. 
그 중 하나가 작은 결혼 캠페인이었다. 작은 결혼 서약서에 서명하고 참여하면 되는 것인데 2012년부터 시행되었고 지금까지 81,370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작은 결혼 서약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 가까운 분만 모시고 의미 있게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 
둘, 예물과 예단보다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셋, 신혼살림은 신랑, 신부가 함께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생각을 공유하고 그런 가치관을 널리 퍼뜨린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솔직히 이 서약서를 봤을 때 느낌은 호화사치 풍조의 우리 결혼 문화를 결혼 당사자들 개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잘못했기에 반성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이런 문제는 개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5년 양성평등추진전략사업』에 의하면 20세 이상 65세 미만인 1005명을 상대로 실시한 ‘작은 결혼식 수요 조사’에서 ‘한국 결혼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는 100점 만점에 75.8점으로 나왔고, 응답자의 90%가 ‘작은 결혼식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결혼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작은 결혼식’을 원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작은 결혼식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개개인의 인식 문제를 넘어서 국가의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작은결혼정보센터를 가보면 셀프 웨딩과 작은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하거나, ‘작은 결혼 플랜 & 스토리’, ‘숨은 예식장을 찾아라’ 등 공모전을 열고 있다. 그리고 무료 공공시설 예식장과 사회적 기업 등의 결혼 관련 상품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웨딩플래너와의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고 사회 인사들의 주례재능기부를 통해 무료로 주례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부부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것들이 전시 행정에 지나기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공하는 예식장 수도 부족하고 대부분 대도시에만 편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그리 활성화 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 생각에 결혼식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결혼 시장에 대한 약간의 지원과 개입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혼 제도 자체를 진단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변화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2014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56.8%이고,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에 동의한 사람들이 46.6%이다. 특히 20대는 61.4%로 절반 이상이 동의한다. ‘외국인과 결혼해도 상관없다’에도 63.2%가 동의하고 있다. 이렇듯 결혼 자체에 대한 인식이 옛날과는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 문화는 구시대적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변화된 인식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법적 기반이 함께 마련되지 않고 있기에 결혼은 여전히 의무이자 기본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자유로운 연애 결혼이 일반적인 시대인데도 여전히 결혼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결혼 당사자 보다는 그들의 부모이다. 여전히 ‘보여주기 식’ 결혼식이 이어지고 있고, 불필요한 예단, 예물 관습도 여전하다. 앞서 말했듯 현재 결혼식 문화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작은 결혼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이는 결혼 제도와 결혼 시장이 사람들의 인식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사람들의 변화하는 결혼 인식에 맞춰 결혼 제도를 개선시켜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의 결혼 건수가 감소하고 동거 관계가 증가해왔다. 그리고 한국, 일본, 터키, 이스라엘 등의 국가를 제외한 OECD 국가들에서는 혼외출산비율도 급격히 증가해왔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더 이상 결혼만이 남녀 혹은 동성 커플의 결합을 형성하는 유일한 대안이 아니게 되었다. 
프랑스의 예를 들면, 시민연대계약(PACS)라는 제도가 있다. 1999년에 마련되었는데, 두 성인이 결합하기 위해 작성하는 계약으로 소득세, 사회보장급여 등에 있어 결혼한 커플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자녀 양육권도 당연히 가능하다. 이런 제도 덕분에 프랑스 출산율이 상승하는 효과까지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 이러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런 제도가 결혼식 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좋은 결혼식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얕은 수준의 캠페인이나 약간의 지원 정도의 단기적 대책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국가는 이미 일어난 문제에 대해 약간의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는 것으로 대처해왔다고 생각한다. 50년 뒤, 100년 뒤 그리고 그 후의 문제까지도 생각해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제도가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5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맞지 않다는 보장이 없지 않을까?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맞게 결혼 제도도 변화해간다면 결혼식의 전통적 중요성이 줄어들고, 다양한 결합 방식에 따라 다양한 결혼식 문화도 생겨날 것이다. 제도와 법이 변화하면 시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이미 일어난 문제에 대한 전시 행정에 막대한 비용을 쏟는 것 보다는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많은 연구를 지원하고 제도적, 구조적 개혁을 위해 비용과 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결혼과는 한참 먼 내가 연예인들의 소박하고 의미 있는 결혼식을 보면서 ‘나로 저런 결혼식을 꼭 올려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니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소박한 결혼식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좋은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인식 변화만으로는 안 된다. 제도, 정책 면에서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작은 결혼식’ 문화만이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국가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변화된 인식을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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