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울이 사람이라면, 우울이 시를 쓴다면 [문학]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 속의 겸은 잎' 리뷰
글 입력 2016.03.2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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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빈집랭보의 시를 읽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랭보의 우울함을 가늠할 수 없어 깊은 탄신과 함께들숨과 날숨 사이사이가 소름끼쳤던 적이 있다.그 뒤로 나는 랭보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기형도의 시를 접하고 또 한번 소름이 돋았다.혹시 우울이 사람이라면 그와 같을까.그 우울이 글을 쓴다면 그의 시와 같을까.우울이 짙어저 까마득한 공허함이 되면그 탁한디 탁한 공기들이 숨을 뱉어내그의 것과 같은 글을 쓰겠다.기형도 시인은 슬프지만 일상적이지 않고먹먹하지만 차마 다가갈 수 없는그런 날카롭고 짙은 우울을 쓴다.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기형도/10월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내면의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아주 날카롭고 아주 여린 것들을 일깨우는 방법을 배운다.그의 시는 나에게 사색이라기보단동질감 이었다.[안세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