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품에 대한 체화 - 마크 로스코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4.27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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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jpg▲ 마크 로스코


 나는 한남동에 있는 한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접했다. 연락하던 선배는 마크 로스코를 좋아했다. 몇 번을 왜 그렇게 로스코의 그림을 좋아해요? 라고 물어봤지만 선배는 마땅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에 나를 데리고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었던 미술관에 데리고 갔다. 여러 작품을 보고 난 후 벽에 걸린 로스코의 그림을 봤을 때 나는 단지 이 애매하고 미적지근한 관계의 의중을 헤아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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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에 나는 로스코가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라는 설명을 한 책에서 읽게 되었다. 그는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킨 미국인 화가 세대 중 한 명 이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친근한 작품은 아래와 같은 형식을 주로 따르는데, 이를 멀티폼 양식이라고 지칭한다.
 이 양식은 직사각형의 색면 테두리에 안개가 낀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전 기법과의 차이를 기준으로, 이 양식이 등장한 시기를 로스코의 고전주의 시기라고 명명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양식은 형태가 없는 추상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른 추상주의 표현화가들이 선을 이용해서 어떠한 것들을 임의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오히려 그는 무(無)에 가까운 본질을 표현했다. 이는 형태가 없는 의사소통이다. 하지만 회화의 본질이란 오히려 그 쪽에 더 맞닿아 있는 것이다. 
 로스코는 자신이 어떤 이의 감정을 움직이는 사람이길 바란다고 했다. 책이나 음악을 감상 한 후에 우는 사람들은 있어도 그림을 보면서 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기를, 그들에게 어떠한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이전에 작품과 나 사이의 충분한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얻게 되었던 감상의 경험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내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있으며 작품 역시 내 속으로 들어오는 이러한 경험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그의 어마어마한 작품의 크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대해서 한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나는 아주 커다란 그림들을 그린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그림은 대개 아주 숭고하고 호화로운 주제를 다룰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큰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사실 아주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서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아는 다른 화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작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신을 자신의 경험 바깥에 세워놓고, 그 경험을 환등기에 의해 비춰진 풍경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큰 그림을 그리게 되면 당신은 그 안에 있게 된다. 그것을 당신이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의 의미는 작가에게로부터 확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그러나 로스코는 이를 넘어서 그림의 의미는 작가와 독자 양측의 교류를 통해서만 명석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그러하기에 그림을 자신의 실제적 경험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는 독자의 감상적 거리를 줄이는 데 전력을 가한다. 커다란 작품들은 이를 위한 시도이다. 독자는 그림 속에 담긴 작가의 경험을 체화할 때 비로소 작가와 작품을 자신과 동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중단할 수 있다.
 이러한 중단 속에서 혹자는 눈물을 터뜨리거나 혹은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나는 애매한 관계의 선배에게 끝내 로스코가 왜 좋은지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적어도 그 역시 이러한 감상을 느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로스코가 무의 형태로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듯이 어떠한 것들은 겉으로 드러내기 위한 형태로 인해 그 의미가 왜곡되기도 한다. 나는 그 형태들을 읽기 위해 애를 쓰면서 정작 선배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을 아니었을까.
 좋은 그림 감상이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둘 사이에는 이러한 까다로움에 대한 공통적 원인이 있는데, 이는 둘 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봉한 로스코의 그림을 보러 갔다. 한남동에서 봤던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왜 사람들이 로스코를 좋아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눈앞의 색채가 주던 이상한 경험은 한 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국내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markrothko.co.kr/guide/guide.php
[문현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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