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온 몸으로 느껴보세요-이장욱의 꽃잎 꽃잎 꽃잎 [문학]

글 입력 2015.01.2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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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잠속의 모래산.JPG

내 잠속의 모래산
이장욱 -「꽃잎 꽃잎 꽃잎


무섭다 결국 그곳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섭다 마음이
무섭고 몸이 무섭고 싹 트고 잎 피고 언제나 저절로 흐드
러지다가 바람 불어 지는 내 마음 속 꽃잎 꽃잎, 그대가
무섭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하나의 육체로만 살아왔으므
로 아주 정교하게 정렬해 있는 하나의 고요한 세상을 지
니고 있으니,

무섭다 그러나 나는 나를 이끄는 매혹에 최선을 다해
복종하였으므로 내 고요한 세상에 피고 지는 아름다운 모
반을 주시하였다 그대가 처연히 휘날려 내 몸과 마음이 
어지러울 때 단 한번도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흘러가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기억을 만나면 기억을
죽이고 불안을 만나면 불안을 죽이고,

그러므로 이제 이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막아 새로운 세
상을 보게 하시길 그대에게 익숙한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
시길 너무 오랫동안 하나의 육체로만 살아왔으므로 아주
정교하게 정렬해 있는 이 고요한 세상을 처연히 흩날리도
록, 내 몸과 마음의 꽃잎 꽃잎 피고 지는 그곳에 기다리
는 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싶지 않으세요? 
한 글자씩 음미하며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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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결국 그곳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섭다 마음이
무섭고 몸이 무섭고 싹 트고 잎 피고 언제나 저절로 흐드
러지다가 바람 불어 지는 내 마음 속 꽃잎 꽃잎, 그대가
무섭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하나의 육체로만 살아왔으므
로 아주 정교하게 정렬해 있는 하나의 고요한 세상을 지
니고 있으니,

무섭다 그러나 나는 나를 이끄는 매혹에 최선을 다해
복종하였으므로 내 고요한 세상에 피고 지는 아름다운 모
반을 주시하였다 그대가 처연히 휘날려 내 몸과 마음이 
어지러울 때 단 한번도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흘러가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기억을 만나면 기억을
죽이고 불안을 만나면 불안을 죽이고,

그러므로 이제 이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막아 새로운 세
상을 보게 하시길 그대에게 익숙한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
시길 너무 오랫동안 하나의 육체로만 살아왔으므로 아주
정교하게 정렬해 있는 이 고요한 세상을 처연히 흩날리도
록, 내 몸과 마음의 꽃잎 꽃잎 피고 지는 그곳에 기다리
는 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꽃잎이 흩날립니다. 인적 없는 긴 도로에 사정없이 꽃잎이 허공을 떠돌아다닙니다. 겨울이 지나 반드시 봄이 오는 것처럼 꽃잎은 휘날립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불안감. 그래도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순환하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익숙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 그 익숙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길. 흩날리는 몸과 마음이 누구 하나 기다리는 이가 없어도 말입니다. 
나는 꽃잎입니다. 



중‧고등학생은 「꽃잎 꽃잎 꽃잎」을 어떻게 읽을까. 문득, 생각이 들어 과거의 나로 돌아가 봤습니다. 분해하고 분석하고 시대적 배경을 외우고 외우고 외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온전히 내가 받아들이는 ‘시’는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봄이 사라진다면, 5초의 눈 흘김으로만 남는다면 이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은 쓰지 않았습니다. 
시를 어려워하는, 기피하는 친구에게 제가 자주 권하는 방법을 
간략하게 글로 적어봤습니다. 
계속 읽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겨울 속에서 봄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장욱 시인은 1994년 현대문학에 등단했다. 2013년 제 4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동국대학교 교수이자 조선대학교 조교수이다. 소설과 시를 쓰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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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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