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다. 뛰어난 외모나 멋진 옷차림, 대단한 성취도 물론 멋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진짜 멋은 사람의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에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굳이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태도에서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는 그런 순간 그 사람의 멋을 느낀다.
1. 봉준호의 아카데미 수상소감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부문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님의 이름이 호명되던 그 장면을 나는 아직까지도 찾아본다. 그가 단상에 올라 건넨 손짓부터 유쾌한 농담으로 시작하는 멘트까지. 영상을 볼 때마다 진심 어린 탄성이 나온다.
성취나 외적인 조건만을 멋의 기준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적어놓고, 안일하게도 첫 이야기부터 오스카 감독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취를 꺼내게 됐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멋은 그보다 조금 다른 곳에 있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입니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빛나는 멋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상소감으로 시작된 무대는 어느새 자신이 존경하는 감독을 향한 헌사가 된다. 가장 빛나는 자리에 선 순간, 자신을 이야기하는 대신 객석에 앉아 있던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건네는 모습. 수상소감이라는 짧은 순간에 드러난 봉준호 감독님의 태도에서 나는 사람의 진짜 멋을 보았다.
2. <최성운의 사고실험>, 박시영
나는 박시영 디자이너님의 콘텐츠를 거의 모두 찾아본다. 그는 여러 이야기 속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자기연민 금지. 몇 달 전에는 <최성운의 사고실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경험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프리즘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똑같은 경험을 못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경험 내에서 어떻게 최대한의 감상을 끌어낼 수 있는가가 중요해요. 내 앞에 있는 게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내 앞에 있는 현상일 뿐이에요. 그 현상을 해석하는 내가 중요한 거지."
이 이야기를 들으며 결핍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나 다른 것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내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느냐보다, 내가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결핍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가는 사람. 내가 할 수 있는 경험 안에서 최대한의 것을 끌어내려는 사고방식. 그런 태도를 가진 이 남자가 참 멋있다고 느꼈다. 지금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게 꽤 오래 남는 이야기였다.
3. 원소윤 작가의 편지
왓챠 채널에서 원소윤 작가님과 박시영 디자이너님의 <처음 만난 사이> 콘텐츠를 정말 흥미롭게 보았다. 방송 같지 않게 서로 대화를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이후 원소윤 작가님이 <우.사.편>에서 이슬아 작가님과 '시영 디자이너님과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순진하게 굴고 싶지 않아요. 대화다운 대화를 꿈꾸고 ... 나도 그런 걸 꿈꾸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일로 만난거고, 어차피 다 알아요. 그냥 좋은 얘기하는거고, 안전한 대화하는거고 .. 그런데 박시영 디자이너님과 말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내가 이런 걸 바랬구나, 너무 순진하게도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었던 거야.
이기고 지는 게 없는 대화, 내가 수세에 몰리는 그런 느낌 없이 할 수 있는 대화."
이 이야기가 참 좋았다.
“이 사람이 부자이면 좋겠다 소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 중 부자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시영님 같은 사람이 부자이고, 인기가 많아서 좋아요.”
- 편지 중
나도 어쩌면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내가 어떤 대화를 원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대화에서 그 사람의 멋을 알아보고, 마음껏 동경하고,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참 좋았다. 어떤 사람의 멋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멋을 기꺼이 좋아하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런 마음 역시 내가 말하는 사람의 진짜 멋인지도 모르겠다.
*
내가 사람을 멋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비슷하다. 무엇을 가졌는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보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볼 때 오래 마음이 간다. 이 사람은 멋있고 저 사람은 별로라고 판단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물론 나도 이런 멋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