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좋다.
매번 먼 거리를 이동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내야하고, 돈은 돈대로 들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공연을 보러 간다. 이번 렛츠락 페스티벌로 향하는 길도 그랬다. 미리 나갈 준비를 하고 시간 전에 나와 대기를 해야 하며, 오래 서 있어서 발이 아프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서 누워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과정이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다시 갈 것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오랫동안 공연을 보았다. 자발적으로 본 첫 공연은 한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였고, 이후 힙합 콘서트를 가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면서 극예술을 주로 보러 다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커다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에 맞춰 뛰어놀 수 있는 공연을 그리워했다. 다행히도 올해 3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오랜만에 다녀온 후로, 이번에는 락 페스티벌에 다녀오며 라이브 공연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공연’ 중에서도 페스티벌과 연극은 참 성향이 다르다. 특히 이번 <렛츠락 페스티벌>을 다녀오며 느낀 점은 연극이 통제된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각기 다른 관객의 심장박동을 '하나'로 맞추지만, 페스티벌은 현실의 공간에서 각기 다른 관객의 심장박동을 '있는 그대로' 느끼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을 인정하되 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주는 벅참이 있었다.
20주년을 장식한 무대들
<렛츠락 페스티벌>이 20주년을 맞이했다. 그만큼 좋은 라인업을 자랑하는 이번 페스티벌, 그중에서도 에디터는 첫날에 다녀왔다. 바비핀스, 앨리스신드롬, 지소쿠리클럽, 남우현, 쏜애플 등 폭넓은 밴드 구성이 이 락 페스티벌의 장점이며, 이 글에서는 특히 인상적이었던 무대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려 한다. 등장 순으로 ’김승주‘, ’윤지영‘, ’PITTA(강형호)’, ‘NELL’, ‘Nothing But Thieves’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노래하는 김승주, 에디터 본인 직접 촬영
바비핀스, 앨리스신드롬의 열정적인 무대 이후 김승주가 등장했다. 미리 그의 노래를 추천받아 들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인 ‘주인공의 법칙’을 실제로 들을 수 있었다. 보면서 무대를 사랑하는 소년이라는 인상을 크게 받았다. 뭔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데 자꾸만 꼬이고, "렛츠락은 20주년이고 자신은 29주년(29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이라고 하질 않나. 다소 엉뚱하고 귀여운 모멘트가 많았다. 그럼에도 곡도, 무대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나 놀고 싶어!”라는 소년의 모습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아래로 자유롭게 뛰쳐나와 함께 뛰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순수한 해방감을 느꼈다. 연극을 보면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김승주가 경쾌한 속도를 보여주었다면, 이어 등장한 윤지영은 조금 느리고 잔잔한 속도로 스며든다. 사실 윤지영을 꽤 오래전부터 좋아했음에도 실제 무대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Blue bird’, ‘우우우린’ 같이 필자의 애청곡부터 최근 즐겨 듣는 노래 ‘City Seoul’,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매한 EP [시지프스 신화]에 수록된 곡들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다소 웃긴 해프닝도 있었다. 푸른 꽃다발 관객들을 향해 던지려는데 꽃과 포장지가 분리된 것이다. 윤지영 본인도, 관객들도 모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잠시 피크닉 존에 앉아 쉬려는데, 강형호의 무대 순서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의 이름 옆에 붙어있는 PITTA를 보고 살짝 생경했다. 아무래도 익숙한 이름에 찾아보니 내가 아는 그 포레스텔라 강형호였던 것이다! “어떻게 그걸 모르느냐,” 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장르를 파고들다 보면 간혹 변화를 '깜빡'하기도 한다는 변명을 덧붙여본다. 그의 무대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느낀 점은 좋은 쪽으로 “정말 팬을 잘 알고, 잘 다루는구나”였다. 무언가를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능숙한데,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고 체화되어 있어 거부감이 없다. 새삼스럽지만 노래를 정말 ‘맛있게’ 부른다는 생각도 했다. 약간은 아쉬웠을 현장 음향을 뚫고 나오는 발성과 완급조절은 그간 해소되지 않던 갈증을 완벽하게 채워주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무대 중인 NELL, 에디터 본인 직접 촬영
이때까지 나름대로 앞줄에서 좋은 무대를 즐긴 후, 뒤로 물러나 마른 목을 축이고 밥도 먹었다. 어느덧 햇볕이 강해 덥던 날씨도 제법 선선해졌다. 마침내 18시쯤, 기대하던 NELL의 순서가 찾아왔다. 그들과 나의 거리감을 표현하자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예 모르지는 않는, 그러니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일 것이다. 페스티벌에 오기 전 대표적인 몇 곡을 다시 들어보며 기대된다고 생각하는 정도 말이다. 그리고 무대를 본 뒤, 그 생각은 180도 바뀌게 된다. 그렇다. 필자는 오늘부터 넬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선언한다. 확실히 30-40분 정도로 이어지던 앞선 무대와 달리 50분으로 늘어난 무대 시간만큼, 넬의 무대가 주는 임팩트는 아주 강력했다. LEGEND OF LETSROCK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유가 있었다.
특히 빨간 조명으로 화면이 전환되며 기타를 치는 검은 실루엣이 비치는 연출은, 몰아붙이는 리듬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게 했다. ‘Hollow - 기생충 - 믿어선 안될 말’ 순서로 이어지는 셋리스트는 짜릿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흥분감에 휩싸여 다음 준비 시간까지 남은 1시간을 보냈다. 동행인과 함께 넬의 노래와 무대와 연출을 찬양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다시 생각해도 노을 진 하늘 아래 적당히 선선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노래마다 제 색을 찾아가는 조명은 그야말로 완벽했기 때문이다.
Nothing But Thieves를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 에디터 본인 직접 촬영
시간이 금방 흘러 어느덧 마지막 밴드의 순서가 왔다. 이쯤 되니 아쉬움 반, 지침 반이었다. 그렇다고 무대가 끝나기를 바란 것은 절대 아니었다. "NBT(Nothing But Thieves)!"를 연호하며 함께한 80분은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몇 개의 대표곡을 예습하고 간 덕분에 기꺼이 마이크를 넘겨주는 그들에게 떼창으로 어느 정도 응할 수 있었다. 실제로 듣고 싶다고 생각했던 곡 'Stray Dogs'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뛰어놀도록 몰아붙이는 힘이 있었다. 기타, 드럼, 보컬 전부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한 완급조절을 통해 빛을 발했다.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촬영은 포기한 지 오래였으며, 심지어 발은 쥐가 나기도 했더라. NELL의 뜨거운 저녁에 이어 NBT의 뜨거운 밤이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있기
<렛츠락 페스티벌>을 즐기는 방식은 단순히 스탠딩을 하며 밴드를 보는 것만 있지 않다. 영상을 찍으며 볼 수도 있지만, 보지 않고 슬램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피크닉 존에 누워 혼자 혹은 함께 무대를 누릴 수도 있다. 먹을거리를 먹으며, 혹은 책을 가져와 독서를 하며 귀와 눈으로 락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렛츠락 페스티벌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어쩐지 편안해졌다. 동시에 영상으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조차 희미해졌다. 정말 ’락‘ 자체를 느끼기 위해 온 사람들의 각기 다른 속도 속에서 ’나만의 심장박동’을 찾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객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오른 가수, 밴드의 심장박동도 모두 달랐다. 그들은 느리기도, 빠르기도, 규칙적이기도, 불규칙적이기도 했다. 일관된 속도로 스며드는 사람이 있는 한편,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압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므로 재차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실 하나, 라이브 공연의 매력은 각기 다른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무대 위의 존재도, 무대 아래의 존재도 무언가를 얻거나 남기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있기를 택한 사람들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따로 또 같이 호흡했다.
공연이 다 끝나고 아쉬운 마음으로 "안녕, 렛츠락!", 에디터 본인 직접 촬영
일제히 한 곳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며, 제 속도를 잃어버리게 되는 도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락을 듣고 페스티벌을 즐기다 보면 그 도심의 속도가 아닌 ’나‘의 속도로 초점이 옮겨간다. 우리는 각자 어떤 리듬과 박자를 가진 심장박동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렛츠락은 그것을 물었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일, ‘공연을 본다’라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우리가 공연을, 렛츠락 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이유다. 나로 살아가는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불편함을 잊은 듯이 다시 공연장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