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필연적으로 작가가 될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1978년 4월의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지며 문득 생각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아무런 맥락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때의 감각을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다고.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가 탄생했고, 이듬해 《군조》 신인상을 받았다.
하루키는 '갑자기' 무언가를 쓰고 싶어졌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
사실 하루키는 틈만 나면 책을 읽는 다독자였다.
활자를 좋아하여 계속 읽다 보면 그것이 안에 쌓여가고, 언젠가 작품을 만들어낼 준비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뜨개질을 할 때, 재료인 실이 충분해지면 어떤 작품을 만들어봐야겠거니 머릿속에 그려보는 때가 오는 것처럼.
아마 하루키가 야구 경기를 보던 그때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실이 충분히 준비되었던 시점이 아니었을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예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내가 소설을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어진 순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꿈을 다채롭게 꾸는 편이고, 그날도 어김없이 엉뚱하고 맥락 없는 꿈속에 흠뻑 빠져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흰 커튼을 통과해 방 안으로 은은하게 들어왔다. 마치 어렸을 때 살던 집에서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자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빛을 받아 반쯤 뒤가 비치는 커튼 뒤로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났고, 약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면서 커텐이 고양이의 앞발을 간지럽히듯 스치고 또 스쳤다.
그와 동시에 잠에서 깼고, 비몽사몽인 와중에 이 장면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꼭 소설로 이 장면을 그려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창작'을 위해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고양이 발등을 덮은 흰 천'
'꿈속에서도 꿈을 잃어버렸어 (혹은 잊어버렸어)'
타이핑을 마치고,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강렬한 감각은 이미 사라진 뒤였고, 휴대폰 메모장에 그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소망이 의지가 된 순간
출판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책 『출판하는 마음』을 읽고 나서,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글을 쓰던, 편집을 하던, 표지 디자인을 하던, 홍보를 하던.... 그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이때는 단지 소망이었다. 왜 책을 만들고 싶은지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소망'이 아니다. 소망이라고 하면 수동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두 손 모아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언제 떨어질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소녀의 이미지가 떠오른달까.
나는 언젠가 소설을 쓸 것이다. 그 언젠가는 머지않은 가까운 미래가 될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일상과 꿈 사이에서 어떤 힘에 의해 소망은 의지가 되었다.
그 어떤 힘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읽었던 활자들은 내 안에 실이 되어 쌓였고, 향유해온 문화예술은 실에 색을 입혔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실이 충분해졌을 때, 이제는 어떤 작품을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난정은 우윤이 보고 싶어 내내 우는 대신 계속 읽었다. 읽고 읽었다. 소원을 비는 사람처럼 책 탑을 쌓았다. 딸이 남기고 간 빈 공간을 책으로 채웠다.
"너같이 많이 읽는 애는 언젠가 쓰게 된다." 어느 날, 어쩌다가 그런 생각에 다다랐는지 심시선 여사가 난정에게 말했던 것이다.
"아뇨. 전 그런 욕구는 없는데요."
"넌 나보다도 많이 읽잖니? 아인가베Engabe가 있으면 아우스가베Ausgabe도 있기 마련이야."
"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다고. 그게 자연스럽지."
(중략)
"어머님...... 저는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벌써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왜 그렇게 제 말을 튕겨내세요? 우윤이 아팠을 때 저희 경제적으로 지탱해주셨던 거 감사하게 생각해요. 제가 일하러 돌아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신경써주시는 거 알고요. 그런데 전 읽는 걸 좋아하는 거지 쓰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저는 어머님이 아니에요."
"그렇게 많이 읽는데? 별의별 것에 대해 읽는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애벌레…."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난정의 입장에 가까웠다. 그냥 읽는 걸 좋아하는 거지, 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고 단정 짓는 시선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책을 가끔 읽었고, 그러다가 꽤 자주 읽었다. 지금은 이북 리더기를 사서 가지고 다니며 빼곡히 읽는다. 아트인사이트를 만나게 되었고, 내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보게 되었다. 결국 소설을 쓰고 싶어졌고, 쓰게 될 것이다.
『시선으로부터,』의 어디에도 난정이 무언가를 쓰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 무언가를 쓰게 된 난정이 시선의 말을 비로소 받아들이는 세계도 존재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