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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누가 이 바다를 붉게 만들었나 - 영화 '지느러미' [영화]

스크린 위로 번져가는 넥스트 시네아스트 박세영 감독의 붉은 바다

by 김정현 에디터
2026.07.18 13:28

 

 

디스토피아를 만든 건 다름 아닌 인간이 아닐까. 그 사실이 불쾌하면서도 못내 서글프다.

 


*

해당 리뷰는

영화 <지느러미>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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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푸른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빗방울이 입 안으로 떨어졌다. 뚝. 뚝. 뚝.”

 

   

영화는 오메가인 '미아'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푸른 바다를 본 적 없이, 온 세상이 붉게 물든 채로 살아온 존재의 목소리다. 그 독백과 함께 처음 마주하는 건 기름에 뒤덮인 듯한 붉은 바닷가인데, 언뜻 바다조차 없는 미지의 화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배경인 통일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인 만큼 자유는 있다고 말하지만, 오염된 바다를 막은 장벽 안에서만 이루어지며 그 자유는 지느러미를 가진 존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한 장벽 밖 공간은 유전적 돌연변이로 지느러미가 생긴 '오메가'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고, 오직 그들만이 오염된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붉은 바다 한가운데 얼룩진 오메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예전 서해안 기름 유출 사건이 연상되기도 했다. 그때도 검게 뒤덮인 바다를 보며 다시는 저 자리에 푸른 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느러미>가 그리는 세계는 그 두려움이 실제로 현실이 되어버린 미래처럼 느껴졌다. 8명이었던 돌연변이 중 한 명이 죽고 화면 속에서 숫자를 세어보니 남은 건 여섯인데, 나머지 하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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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안쪽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사람들은 검은 물로 몸을 씻고 빨래를 하기 때문에 곳곳이 검게 얼룩져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건 오직 돌연변이를 향한 경고와 주의뿐이어서 마치 공산주의 사회의 감시와 통제를 연상시킨다. 도망친 돌연변이는 한 인물을 찾아 '황금소망낚시터'에 도착하는데,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하염없이 낚싯줄을 드리운 채 무언가 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감독은 이 낚시터가 1990년대 경제개발기에 낚시 갈 시간이 없던 회사원들이 건물 지하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던 실내 낚시터에서 착안됐다고 밝혔는데, 시간이 멈춘 듯한 노스탤지어를 오히려 가장 화려한 공간으로 뒤집어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얼룩진 건 몸과 공간만이 아니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 역시 서로에 대한 의심으로 얼룩져 있다. 공무원 수진(김푸름)이 탈출한 돌연변이 오메가(고우)를 쫓다가 미스터리한 소녀 미아(연예지)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오메가가 오메가를 쫓고, 오메가를 처단해야 할 공무원조차 자신이 좇는 대상이 인간인지 오메가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뒤쫓으며, 서로를 쫓는 이 여정 끝에서 결국 드러나는 건 이들 모두가 같은 붉은 하늘과 같은 오염된 바다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잡으려는 자와 쫓기는 자가 실은 같은 하늘 아래 갇혀 있었다는 이 현실이 이 영화의 가장 짙은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은, 지느러미는 과연 위험한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방사능이 나온다는 이유로 오메가가 죽으면 특수처리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영화가 실제로 보여주는 건 다르다. 죽은 오메가는 그저 호일 같은 것에 감싸여 바다에 던져지는 게 전부다. 오메가가 왜 유전자 변형이 되었는지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그들의 생김새 역시 정부가 발표한 것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격리하고 두려워한 것은 정말로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박세영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코로나19 시기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오직 감각에만 의존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과 팬데믹 시기의 정서가 함께 이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감염 위험을 안고 사람을 만나야 했던 그 시기, 대면 관계는 더 개인주의적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감독은 이 변화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고 회고했고, 그 절망과 불안, 공포가 고스란히 영화의 색채와 서사 구조에 반영됐다. 실제로 감독은 이 영화가 쫓고, 의심하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가 결국 비극에 이르는 구조라는 점에서 코로나19의 잔상과 직접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바다를 붉게 만든 게 정말 인간뿐이었는지 단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인간도, 오메가도 이 바다를 붉게 만든 데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붉은 바다 위에서 자라난 건 서로에 대한 의심과 혐오, 그리고 서서히 굳어버린 단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황망하게 이어지는 노스탤지어들, 낚싯줄을 드리운 채 오지 않을 바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대리만족으로 채워진 낡은 공간들은 우리가 푸른 바다를 실제로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서서히 잊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인간과 오메가, 그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일까. 누가 이 바다를 붉게 만들었는지 명확히 가를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오래 곱씹게 만든다. 지나온 디스토피아의 시대 속에서, 다시 다가올 두려운 미래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다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는 관계로 돌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파도가 서서히 줌 되며 마치 화형되는 듯한 이미지로 마무리되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저 붉은 바다 속에서 조금씩 화형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푸른 바다와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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