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음악 속에 담긴 도시의 모습과 분위기는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
나에게 일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는 홋카이도(북해도)였다. 차가운 겨울 풍경 속에서도 따뜻한 로맨스와 애정이 스며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영화 <러브레터>, 영화 <철도원>, 그리고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세 작품이 지닌 로맨틱한 분위기와 감성적인 음악은 나로 하여금 훗카이도를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영화 <러브레터>의 OST인 < A Winter Story >, 영화 <철도원>의 OST이자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철도원( Railroad Man )>은 겨울이 되면 매년 빠짐없이 듣는 음악이 되었다.
또한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는 그녀의 대표곡 < First Love >를 다시 한번 많은 대중들에게 주목받게 해주었으며, 나 역시도 이 곡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 드라마와 우타다 히카루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악은 또 다른 삽입곡인 <하츠코이( 初恋, 첫사랑 )>이다. 이 곡은 어린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일본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후속작 <꽃보다 맑음 ~꽃남 넥스트 시즌~>의 OST로 사용되었는데, 당시에는 드라마보다 음악에 더 빠져 한동안 즐겨 들었다.
이처럼 일본 영화와 드라마, 음악은 나에게 홋카이도를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로 각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겨울의 홋카이도는 여행 경비가 비쌌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여행지였다. 게다가 나의 겨울 일정도 확실하지 않아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끝에 이번 여름, 마침내 꿈에 그리던 홋카이도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새벽 7시, 졸린 눈을 비비며 비행기에 올랐다.
약 2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드디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비행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유명한 오타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오타루로 향하는 열차 창밖으로는 영화 속에서 보던 일본 시골 풍경이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나는 연신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타루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맡긴 뒤 사카이마치도리 상점가로 향했다.
삿포로의 유명 디저트 브랜드인 르타오에서 케이크와 차를 즐기고, 오르골당 앞에 있는 증기시계를 구경했다. 매 15분마다 울리는 증기시계의 종소리는 연기와 함께 약 1분 동안 이어졌다.
조율이 덜 된 악기처럼 다소 투박하고 하찮은 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듣고있으면 절로 웃음이 났다.
증기시계를 본 뒤에는 본관 오르골당으로 들어가 구경을 시작했다. 이어 건너편 별관 오르골당까지 둘러보던 중 우연히 파이프오르간과 대형 오르골의 연주를 감상하게 되었다.
오래된 대형 오르골이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소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저녁 메뉴는 스시로 정했다. 오타루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등장할 정도로 스시가 유명한 도시였다. 유명한 스시 맛집도 많았지만, 내가 선택한 곳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현지 스시집이었다.
초밥을 기다리며 가게 한쪽 벽을 둘러보니 부부의 손주로 보이는 아이들이 성장할 때마다 같은 포즈로 찍은사진들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귀엽고 정겨워, 마치 집에서 대접받는 듯한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오타루 운하를 걸었다. 오타루 운하는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지만, 여름이라 해가 쉽게 지지 않았다. 게다가 일교차가 큰 홋카이도답게 날씨가 점점 쌀쌀해져 결국 숙소로 돌아왔다.
둘째 날 오전에는 전날 다 둘러보지 못했던 사카이마치도리 상점가를 다시 찾았다. 유리공예 공방과 스누피 상점 등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유리공예 공방에는 작은 유리 비즈를 만드는 체험을 하러 갔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체험을 신청했다.
유리를 계속 돌려가며 비즈를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결과물은 조금 비뚤어졌지만, 원하는 디자인과는 꽤 비슷하게 완성되었다. 조금은 서툰 모양이었지만, 오히려 독특한 매력이 있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체험이었다.
점심은 원래 소바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가게가 휴무라 근처 가정식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다음 목적지인 아사히카와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