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면서 길가에 보이는 초록색이 눈에 띄게 많아진 걸 느낀다.
여름이 다가온다. 여름은 다른 계절들에 비해 미화의 특성이 강하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계절과 함께라면 머리가 아프도록 더웠던 날씨도 땀을 잔뜩 흘려 찝찝했던 기억도 다 아름답게 남곤 한다. 개인적으로 비와 더위를 정말 싫어해서 여름을 그닥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첩을 보면 초록색이 가득한 게 신기할 정도이다.
여름은 어떻게 우리를 속이는 것일까?
여름은 강하다
먼저, 여름을 생각해보면 다른 계절들에 비해 강렬한 느낌이 든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과 뜨겁게 익은 볼, 그리고 선명한 감각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모든 걸 반짝이게 만든다.
빛나는 순간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누구나 찬란하게 빛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니까. 선명한 냄새와 색채들은 더 강한 자극과 기억을 남기고, 채도와 명도가 높은 색깔들 사이에서 우리도 자연스럽게 명랑해진다. 싱그럽고 다채로운 색조로 가득한 계절이기 때문일까, 여름만 되면 소녀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무섭도록 더운 낮과 달리 여름밤은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다. 낮에는 모든 게 분명하고 선명하다. 빛이 강한 만큼 그늘도 선명하고, 모든 윤곽이 뚜렷하다. 그에 비해 여름밤은 조금 모호하다. 조용한 사이에 들리는 벌레 울음소리들은 완전한 무음 상태를 방지하면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도록 만들어주고, 찝찝한 등에 티셔츠가 붙은 채로 걷는 것은 의도치 않은 여유를 자연스레 만들어준다.
땀을 잔뜩 흘린 뒤에 맞는 바람만큼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런 밤은 모든 것을 느리게 가게 만든다. 완벽히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은 상태에서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것. 그 애매함과 찝찝함이 여름밤에 더 머물고 싶게 만든다.
춥지 않은 밤은 소중하다. 늦은 밤에도 얇은 외투 하나 걸치고 무작정 뛰어나갈 수 있는 계절이 좋다. 밤을 밤답게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름은 충분히 특별하다.

청춘을 닮은 여름
이러한 여름의 특성들은 청춘을 닮아 있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청춘을 여름 시절의 모습으로 연출하는 것도 이런 이유 아닐까.
청춘들의 불안함, 찝찝함, 강한 에너지 등은 여름을 쏙 빼닮았다. 낮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고 과감한 동시에, 밤처럼 아직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어렵고 미완성인 상태 그 사이 어딘가에 청춘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힘들고 불편했던 기억은 없애고 그때의 강렬했던 색만 남겨둔다.
그래서 힘들었던 청춘 시절이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찬란하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꼽히는 것처럼, 여름도 다시 되돌아봤을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꼭 지나고 나서야만 비로소 빛나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여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땀을 나누며 같이 먹었던 수박과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쐤던 선풍기 바람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부셨던 바다와 하늘을, 초록 나뭇잎과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사랑했을 것이다. 여름이라는 계절 자체보다, 그 계절이 붙들어 둔 순간들과 사람들을. 그래서 나는 여름이 다가오면 콩을 싫어하지만 콩국수가 생각나고, 벌레를 싫어하지만 벌레소리들이 듣고 싶어진다. 싫어하는 것들조차 여름 안에 들어오면 반갑다.
모든 것을 아련하게 만드는 계절이 또 다가온다. 내가 늘 속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또 어김없이 무더위 속에서 힘겨울 게 뻔하지만, 어김없이 또 기대해보려 한다. 초록빛이 모든 걸 무마해주겠지. 우리는 그러한 계절 아래에서 또 다시 한 번 청춘일 것이고 풋풋한 시절을 만끽할 수 있겠지.
4계절이 있는 덕에 여름이 찰나인 것이 감사하다. 원래 빛나는 것들은 찰나의 순간일수록 더 반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