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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들으셨죠?”
“네……”
수화기 너머 들린 짧은 질문에 나는 북적한 지하철 안 임에도 통화를 이어갔다. 평소 같으면 잠시 뒤 다시 전화 드리겠다며 통화를 정리했을테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잠시간의 통화를 끊은 뒤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에 대한 막막함이라기 보다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뒤에 만난 친구에게 괜시리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뀌는 것은 없을테지만 이 상황이 얼마나 황당한지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해야 내 마음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대화 내내 친구에게 나는 계속 이 말을 반복했다. 왜 하필!
미국과 이란이 전쟁에 돌입했다. 어지러운 국제정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에 바짝 귀를 기울인 건 단지 내가 이 지구촌의 한 시민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나의 온 관심은 하늘 길에 집중되었다. 이란 근처의 항공 운항은 어떻게 되는지, 아직 사람들이 오고 가는지 말이다. 그러던 중, 결국 뜨고 만 뉴스 기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정말 실감이 났다. ‘두바이 공항 폐쇄’. 이 일곱 글자에 내 신혼여행이 달렸다는 사실이 말이다.
신혼여행지를 정한 것은 작년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며 단연 결혼의 꽃이라고 생각한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아주 중대한 일이었다. 낭만적인 유럽, 드넓은 미국 등등 다양한 곳을 떠올렸다. 나에게 신혼여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는 긴 비행시간이 있었다. 굳이 힘들게 비행기 타는 것을 왜 하려하냐 말하면 할 말은 없다. 다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눈치보지 않고 합법적(?)으로 장기간 떠날 수 있을 때, 인생에 단 한 번일 이 때, 남은 인생에서 갈 일이 없을 법한 장소로 떠나고 싶었다. 그 어떤 고난도 ‘신혼여행이니까!’ 한마디로 모두 가능해질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떠오른 최적의 신혼여행지는 바로 ‘모리셔스’였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옆 인도양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한국인에게 그리 널리 알려진 나라는 아니었지만, 최근엔 꽤 많은 신혼부부들이 여행지로 선택하고 있다. 모리셔스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다. 때문에 가장 많이 선택하는 루트는 두바이를 경유하여 가는 길이다. 한국에서 두바이까지 대략 10시간, 두바이에서 모리셔스까지 약 6시간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순수 비행 시간만 16시간 가까이 되는 멀고 먼 나라다. 또한 관광과 휴양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밸런스도 괜찮은 여행지기도 하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나에게 모리셔스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나의 신혼여행지는 두바이와 모리셔스로 정해졌다.
아마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제 눈치를 챘을 것이다. 내 신혼여행의 경유지였던 두바이, 사막 투어를 한껏 기대하고 있던 두바이, 화려한 건물과 차들로 가득 차 있었을 두바이, 그런 두바이의 하늘길이 막혀버렸다. 페르시아 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두바이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뉴스 기사를 찾아보며 하루하루 걱정하던 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리조트와 항공을 예약했던 여행사였다. 다행히 선택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두바이는 포기하는 대신, 쿠알라룸프를 경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래, 갈 수 있다는게 어디냐 싶다가도 두바이도 꼭 가고 싶었기에 마음이 쓰려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전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일텐데 나는 이런 걱정으로 투덜대는 것이 맞을까 하는 미묘한 죄책감도 스쳐 지나갔다. 쿠알라룸프를 통하더라도 비행 일정이 죄다 바뀌기에 리조트 일정은 물론 모리셔스에서의 여러 액티비티도 조정해야 한다. 결혼을 코 앞에 두고 떨어진 발등의 불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마음은 오락가락 했다.
한참 속상해하다가 내린 결론은 결국 이 또한 이야깃거리와 추억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지구 반대편의 끔찍한 일들을 추억이라는 말로 치부하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면서도, 내 일은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직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흘러갈지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떠나기까지 남아있는 약간의 시간 동안 상황이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인생은 역시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이젠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그러려니 생각하겠다고 마음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