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영원할 것만 같은 친구와의 사이, 단란한 나의 가정의 불화 등은 평범하고 사회의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나에게 머나먼 영화나 드라마, 혹은 썰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은 생각보다 드라마 같았고, 시트콤처럼 희로애락을 넘나든다. 그러한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다.


최근 몇 년간 범죄 하나 일어나지 않는 호킨스라는 동네에서 윌이라는 아이 하나 사라진다. 경찰서장인 호퍼는 이러한 조용한 마을에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면서 홀대했다. 하지만 가장 평범한 마을에서야말로 세상의 균열이 열리고, ‘세상의 종말’이 달린 사건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결국 위기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건 초능력이나 거대한 무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다. 친구의 사랑, 가족의 사랑, 그리고 끝내는 ‘내가 나를 놓지 않는 믿음’이 그들을 지키고 앞으로 밀어준다.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2개의 장면들을 꼽아, 그들의 10년이 내게 남긴 의미를 정리해두고 싶다.

 

 

 

Season 2 Episode 8: "H.E.R.E" -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기 있어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던 윌은 시즌 1에서 친구들과 가족의 도움으로 뒤집힌 세계(Upside Down)에서 구출된다. 하지만 데모고르곤이 남긴 그림자는 윌 안에 잔류했고, 결국 윌은 ‘마인드 플레이어’에게 잠식되어 주변 사람들을 속이게 된다.

 

 

[크기변환]strangerthings12_trans_NvBQzQNjv4Bqo9sHGjUH69EfqDUH0eiON6kssF5zxfwUwhh2UUYi0kQ.jpg

 

 

호킨스의 사람들은 해답이 윌에게 있다고 믿고, 모든 통신이 차단된 곳에서 윌을 심문하듯 붙잡아 둔다. 하지만 이미 잠식된 윌에게서 ‘정답’을 얻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엄마와 친구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윌은 윌이 아닌 것처럼 굳어 있다. 그때 윌의 엄마 조이스가 묻는다.

 

“Do you know what March 22nd is?”

 

그건 윌의 생일이다. 조이스는 윌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120색 크레용을 사줬던 날, 윌이 그 크레용으로 우주선을 그리며 자랑하던 순간을 들려준다. 이어서 형 조나단은 아버지가 집을 떠나던 날 함께 만들었던 나무 성을, 가장 친한 친구 마이크는 처음 만난 날을 꺼내놓는다. 마치 “너를 기억하는 사람,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윌의 이름을, 윌의 시간을, 윌의 존재를 다시 불러온다.


그러자 무표정하던 윌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손끝이 모스 부호처럼 알파벳을 가리킨다.


H, E, R, E.


깊은 곳에서 윌이, ‘여기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윌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윌과 함께한 순간들을 차례로 되짚으며 마인드 플레이어를 몰아낼 실마리를 찾아낸다.


나는 이 장면이 ‘구출’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정말 힘든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잃기도 한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흐려진다. 그런데도 우리가 끝내 우리로 남을 수 있는 건,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기억 그리고 깊은 곳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순수한 나’가 서로를 붙잡아주기 때문 아닐까. 아무리 힘든 날이 나를 덮쳐도, 나를 사랑해준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면 나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여기”라고 불러줄 테니까.

 

 


Season 3 Episode 8: “Hurt is good, but please keep the door open 3 inches”

- 변화는 아프지만, 사랑은 남겨놔줘


 

사춘기가 시작되며 주인공 일레븐의 세계도 달라진다. 가족보다 남자친구 마이크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방문은 닫힌다. 지나치게 붙어 있는 시간, 늘어나는 스킨십, 둘만의 공기. 호퍼는 화가 나지만, 어른스럽게 해결하고 싶어 조이스에게 조언을 구한다. 조이스는 “Heart to Heart” 방식으로 솔직한 대화를 준비해보라고 말한다. 호퍼는 종이에 ‘잘 지낼 방법’을 적어, 그럴듯하게 준비한 채 일레븐과 마이크 앞에 선다.


하지만 진지한 호퍼와 달리, 일레븐과 마이크는 그 상황을 장난처럼 받아들이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 순간 호퍼는 준비한 종이를 덮어버리고, 결국 둘을 강제로 떼어놓는다.


그리고 다시 호킨스는 악의 무리와 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호퍼는 사라진다. 시간이 흐른 뒤, 호퍼를 잃은 일레븐과 조이스 가족은 호킨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삿짐을 싸던 중, 일레븐은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그날 끝내 전하지 못했던 호퍼의 진심이다.


편지는 처음엔 ‘어른스러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불편하지만 감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말. 그런데 호퍼는 한 단어에서 멈춰 선다. ‘감정’. 그는 멋진 말 대신, 그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적는다.


“요즘 너한테서 느낀 건 거리감이었어. 마치 네가 나를 떠나려는 것처럼… 매일 밤 보드게임하던 날이 그립고, 해 뜨는 걸 보며 3단 에고 와플을 만들던 것도 그립다.”


딸을 떠나보낸 뒤, 우연히 일레븐을 기르게 되며 호퍼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다시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행복이 멀어지는 느낌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또 한 번 상실을 맞닥뜨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퍼는 결국 말한다.

 

"너도 자라고 변하겠지.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난 그게 겁나. 변하는 게 싫어서, 그 변화를 막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너가 삶을 통해서 실수하고 배우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변화된 삶이 널 아프게 하면 그 아픔을 기억해."

 

"Hurt is good. It means you're out of the cave."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호퍼는 순진한 감정을 일레븐에게 남긴다.

 

“But please keep the door open 3 inches.”

 

 

[크기변환]FT5PSCQWIAAe0gU.jpg

 

 

이 장면은 성장의 필연을 인정하면서도, 사랑이 붙잡고 싶은 시간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성장은 멈출 수 없고, 관계는 변하고, 기묘한 삶은 앞으로 다양하게 발생하겠지만,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순진한 마음을 끝내 놓지 못하는 따뜻한 모순을 갖고 산다.

 

 

※ 이후의 내용은 기묘한 이야기 시즌 5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시리즈답게, 인물들의 성장으로 인해 바뀌는 삶은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종종 겹쳐 보인다. 주변 사람을 잊은 채, 나 자신도 잊은 채 살아갈 때가 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관계가 변했을 때, 그제야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말한다. 아프고 변화하기 싫은 순간들은 끝장나는 어둠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그 어둠은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고.


기묘한 이야기의 기나긴 10년의 마지막도 그렇게 끝난다. 결국 다 같이 서로가 서로를 믿는 믿음으로 나의 확신을 갖게 되고 베크나를 물리치며 호킨스의 평화를 되찾는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히 이 기묘한 호킨스에 머물 것만 같던 호킨스의 아이들 모두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밤을 새도 모를 정도로 했던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끝으로, 각자의 여정을 응원한 채, 많은 일들이 있었던 지하실을 뒤로한다.

 

나 또한 이 이야기의 끝을 조용히 뒤로하려 한다. 시리즈의 마지막과 함께 나도 지난 시간을 한 장씩 덮고 앞으로 나아가겠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소중한 기억, 변치 않았으면 좋겠는 순간만은 꼭 안고 살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그 기억과 이 장면들을 꺼내어 다시 읽으며, 나에게 펼쳐질 기묘한 이야기에 마주할 용기를 얻고 싶다.

 

 

[크기변환]KakaoTalk_20260107_233802410.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